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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흔적/곰돌카페

드라마에 등장한 책이 많이 팔리면 '나쁜' 것일까

[곰돌카페] 드라마 ‘책 협찬’ 적극 권장해야 한다

책이 드라마에 ‘소품’으로 나왔습니다. ‘멋진’ 주인공 서재에 꽂혀 있기도 하고, 가끔 주인공 대화에 인용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책을 본 시청자들이 드라마 방영 이후 서점에서 책을 사기 시작합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오늘(20일) 경향신문 22면 ‘문화수첩’에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한 출판계의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요즘 장안의 화제작이죠? SBS 드라마 <시크릿 가든>. 시청률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는 이 드라마 덕분에 책을 ‘협찬’했던 민음사의 책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답니다.

드라마 통해 책에 관심을 갖는 게 문제일까


주인공 김주원(현빈)의 서재에 꽂혀 있거나 <시크릿 가든>에 나온 책을 시청자들이 유심히 보고 주문을 하고 있는 거죠. 일부 인터넷 서점에선 ‘김주원의 서재’라는 이름으로 이벤트를 진행할 정도니 특수라는 말이 그렇게 과언이 아닌 듯 합니다.

이런 특수라면 출판계가 미소를 지어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나 봅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출판사는 ‘즐거운 비명’을 지르면서도 씁쓸한 표정”이라고 합니다. 한 마디로 책이 많이 팔려 기분은 좋지만, “드라마에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팔리지 않던 책이 팔리는 ‘현실’이  씁쓸하다는 거지요.

공감이 갑니다. 책 자체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드라마 열풍에 따른 부수적인 현상으로 책이 팔리는 걸 긍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경향신문에 언급된 “특정 출판사의 책이 화면에 잡히면서 상업적 이익으로 이어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한 출판계 관계자의 논평엔 동의를 못하겠더군요. 이런 비판은 지나치게 원칙론적인 입장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요즘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지적엔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겁니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아서 출판계는 몇 년 째 불황을 겪고 있습니다. 수능이나 논술에 필요하거나 처세술이나 실용 서적 등을 제외하고, 사람들이 요즘 서점에서 책을 별로 사지 않습니다. 출판계도 ‘돈이 되는 책만’ 찾는 양극화가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드라마나 예능에 대한 ‘은근한 무시’가 배어 있는 건 아닐까

이게 현실입니다. 현실이 이런 상황인데 드라마를 매개로 책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는 걸 탓할 수가 있을까요. SBS <시크릿 가든>의 주인공인 재벌2세 김주원이 ‘가난한’ 길라임을 이해하기 위해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장 지글러 저, 유영미 역 / 갈라파고스)라는 책을 집어드는 걸 마냥 ‘패션’으로만 봐야 할까요.

출간 이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소설이 <시크릿 가든> 방송 이후 팔려 나가고, 드라마 초반에 모습을 비췄던 시집이 수천부가 팔리는 현상도 그냥 ‘대중의 저급한 관심’ 정도로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요. 요즘 거의 찾지 않는 시집이 5~6천부 씩 판매될 정도면 오히려 출판계가 ‘드라마 마케팅’을 강화해야 한다고 보는데 출판계 일각에선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봅니다.

저는 이런 지적엔 드라마나 예능에 대한 은근한(?) 무시가 깔려 있다고 봅니다. 신문 등을 통해 책이나 독서에 관심을 가지는 건 당연한(?) 것이고 TV나 예능 프로그램, 드라마를 통해 책에 관심을 가지는 건 이보다 한 단계 낮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걸 아닐까. 저는 그런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

책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만드는 경로는 다양해야

사실 이 같은 비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과거 ‘공익적 오락프로그램’을 표방했던 MBC <느낌표>에서 ‘책을 읽읍시다’ 같은 코너가 호평을 받을 때, 신문․출판계 쪽에선 ‘문화권력’이니 하면서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봤던 적이 있습니다. 신문․출판계 일각의 ‘삐딱한 시선’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드라마가 됐든 영화가 됐든 사람들이 책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하게 만드는 ‘매개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물론 출판사가 책을 드라마에 협찬하는 데 따른 부작용과 부정적인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지금처럼 사람들이 책을 외면하는 상황에서 드라마를 통해 책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요. 그것만으로도 ‘책 협찬’에 따른 부정적인 면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소설과 시집을 수천 부씩 주문하게 만드는 드라마라면 오히려 출판계가 이런 드라마를 적극 활용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들을 타깃으로 하는 출판사라면 더더욱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올드 세대’는 신문의 신간소개를 보면서 책을 보지만, ‘스마트 세대’는 <시크릿 가든>과 같은 드라마를 통해 책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죠.

책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경로는 되도록 다양한 게 좋습니다.

<이미지=경향신문 12월20일자 2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