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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흔적/키워드로 본 미디어

‘조중동 종편’에 조중동이 침묵하는 이유

[키워드로 본 미디어] 1월3일 ∼1월7일

이번 한 주 미디어 쪽에선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핫이슈는 역시 ‘조중동 종편’이었습니다. 종편이 워낙 큰 이슈이기 때문에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긴 했지만 KBS와 SBS에서도 주목할 만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김인규 사장 이름이 여러 번 거론이 됐고, 연관검색어로 고대영 신임 KBS 보도본부장 이름도 언급이 됐습니다. SBS에선 윤세영 회장과 윤석민 SBS미디어홀딩스 부회장 이름이 주목을 받았네요. 이외에도 <추적60분>과 연합뉴스, 제약업계와 을지병원도 이번 한 주 미디어를 뜨겁게 달군 키워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조중동 방송’과 조중동의 침묵

방송통신위원회가 종합편성 및 보도전문 채널사업자를 선정, 발표한 것은 지난해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조중동은 이를 새해 첫 날 ‘방대한 지면’을 할애하면서 대서특필 했죠. 종편을 도입하면 마치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처럼 ‘장밋빛 미래’를 지면 가득히 펼쳐 놓았습니다. 향후 조중동의 ‘종편 보도’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알 수 있는 보도 행태였습니다.


대대적인 지면홍보를 펼치지 않을까, 이런 예상을 했는데 이번 한 주 조중동의 반응은 의외였습니다. 조용했습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를 필두로 ‘비조중동’ 신문들이 지난 3일부터 ‘조중동 종편’의 문제점을 집중 해부했던 것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침묵이었습니다. 새해 첫 날 ‘종편의 새 세상’을 열창하던 포부는 어디로 간 것일까요.

조중동의 ‘조중동 종편’ 침묵은 일단 여론의 화살을 피하고 보자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조중동 종편’에 대한 ‘비조중동 신문’의 부정적 평가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조중동이 여론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긴 합니다만, 적어도 지금 한국에서 종편과 관련해서 조중동에 우호적인 매체는 거의 없습니다.

특정 사안이 불거지면 통상 진보적 매체와 보수적 매체로 양분되곤 했는데, 종편은 진보-보수 구분이 없습니다. 국민일보와 세계일보도 ‘조중동 종편’에 날선 비판을 가하고 있습니다. 종편 전선이 조중동과 ‘비조중동 신문’으로 양분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게다가 언론학자들의 상당수도 조중동 종편에 부정적입니다.

종편, 조중동 vs 비조중동 대결 양상

인터넷과 트위터, 페이스북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한마디로 조중동과 MB정부를 제외하고 우호적인 여론이 별로 없다는 얘기죠. 이런 상황에서 조중동이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은 어떤 것일까요. 침묵이죠.


사실 조중동 입장에서 딱히 할 말도 별로 없을 것 같긴 합니다. 적당하게 포장을 하고 있지만 거품 걷어내고 핵심을 추리면 “MB정부, 조중동 종편에 특혜 좀 더 달라!” 이거니까요. 이 문제 가지고 논리적 토론을 벌이면 조중동은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겼던 자유시장 원리에도 어긋나는 주장 아닙니까.

사업자로 선정된 기쁨은 잠시라는 얘기죠. 이 기쁨이 지속되려면 정부를 좀 더 압박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감시의 눈’이 너무 많습니다. 지금으로선 이래 저래 불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거죠. 이럴 땐 조용히 가만히 있는 게 최선입니다. 지금 조중동은 최선의 길을 걷고 있는 중입니다.

제약업계와 을지병원

종편과 관련해서 이번 한 주 주목할 만한 키워드는 제약업계입니다. 경향신문이 지난 7일 보도하면서 알려진 내용이죠. 지난해 말 선정된 종합편성 방송채널에 국내 제약회사와 대학이 지분투자를 했다는 건데, 조선일보 종편에는 동아제약과 녹십자가 그리고 중앙일보 종편에는 일동제약이 지분참여를 했다고 합니다.

이들 제약회사의 지분은 1% 미만이기 때문에 종편사업자 선정결과 발표 당시엔 주주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사실은 ‘조중동 종편’과 관련해 몇 가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지금 조중동은 의약품·생수 광고의 경우 종편에만 우선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이상한(?) 주장을 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제약회사가 지분투자까지 했다면 어떻게 될까요. 앞으로 조중동 종편에서 제약업계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프로그램이 방영될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죠.


‘조중동 종편’ 때문에 상대적으로 여론의 관심을 덜 받긴 했지만 을지병원도 이번 한 주 미디어 쪽 주요 키워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을지병원이 보도전문채널 연합뉴스TV(가칭)에 주주로 참여했는데 이것이 ‘의료법 위반’이라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죠. 의료재단은 비영리재단으로 준용하기 때문에 영리목적으로 투자할 수 없고, 때문에 보도전문채널에 투자한 을지병원은 의료법을 위반했다는 것이죠.

언론보도를 종합해 보면 보도채널 심사 당시에도 심사위원 사이에서 이 부분이 쟁점이 됐다고 합니다. 만약 의료법상 하자가 있는 것으로 결론이 날 경우 연합뉴스TV의 보도채널 승인이 취소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보도전문채널에 신청했다 탈락한 일부 사업자들도 심사의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며 방송통신위원회에 상세 심사내역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하고 나선 상황입니다.

‘조중동 종편’과 보도채널 선정을 둘러싼 논란이 점점 확산되는 양상인데, 이거 하나는 인정을 해야 할 듯 합니다. 이 모든 걸 감수하고라도 일정 추진을 감행한 방송통신위원회와 MB정부의 ‘저돌적 추진력’ 말이죠.

고대영과 KBS 그리고 청와대

KBS에선 인사가 논란이 됐습니다. 김인규 KBS 사장이 지난해 12월 31일 신임 보도본부장에 고대영 해설위원장을 임명했는데 내부 반발이 거셉니다.

고대영 신임 본부장을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잠깐 소개를 해드릴까 합니다. 일단 고 본부장이 지난 2009년 보도국장을 하고 있었는데, 이때 KBS 기자협회가 실시한 신임투표에서 93.5%라는 압도적인 ‘불신임’을 받은 기록이 눈에 띕니다. 93.5%라 … 정말 놀라운 기록 아닙니까. 북한 김정일·김정은 부자에 대한 지지도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KBS 기자들의 보도국장 불신임 수치가 이랬다는 말입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위원장 엄경철)가 지난 3일 성명을 냈군요. 핵심만 추리면 이렇습니다. “고대영 씨는 KBS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을 불공정과 편파의 나락으로 떨어뜨린 인물”이다.

이렇게 기자들로부터 신임을 얻지 못하고,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이라면 본부장으로 발탁하지 않을 법도 한데 김인규 사장은 왜 이런 사람을 보도본부장으로 승진을 시켰을까요. KBS 일각에서는 고 본부장이 “청와대와 줄이 닿아 있다”는 의혹을 제기합니다. 그러니까 이번 KBS인사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주장인 셈입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지금 KBS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조금 더 ‘입맛’에 맞는 사람을 보도본부장으로 기용하려 한 것이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김인규 사장은, KBS사장임에도 보도본부장 인사를 자신의 의도대로 하지 못했다는 얘기가 됩니다. 물론 KBS는 “일부의 주장일 뿐”이라며 반박하고 있습니다. 양쪽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지만 이걸 판단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앞으로 KBS보도를 유심히 살펴보면 됩니다. 청와대 입맛에 맞는 쪽으로 보도가 많으면 의혹을 제기한 쪽의 입장이 설득력을 가질 것이고, 정반대라면 의혹을 제기한 쪽이 아마 ‘쪽팔림’을 당할 겁니다. 앞으로 한번 지켜봅시다.

윤세영과 SBS 그리고 윤석민

한국의 방송계에도 ‘부자세습 체제’가 탄생할 것인가. SBS 윤세영 회장이 지난 3일 일선 경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힌 이후 이런 얘기가 회자가 되고 있습니다.

윤세영 회장이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어떤 발언을 한 건 아닙니다. 윤 회장은 “미디어 생태계 변화가 SBS의 리더십에도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면서 “SBS가 더욱 젊고 혁신적인 모습을 갖추고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는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한 마디로 변화가 필요해서 자신은 ‘2선’으로 퇴진한다는 얘기인데, 아들 이재용을 사장으로 승진시키기 전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했던 발언과 맥락이 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이런 해석을 하는 이유와 배경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포스트 윤세영’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SBS에서 윤세영 회장 다음으로 경영을 맡을 사람이 누군인가? 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 떠오르는 후보는 딱 한 명밖에 없습니다. 윤세영 회장 아들 윤석민 SBS 미디어홀딩스 부회장. 혹시 다른 후보 있나요? 없습니다. SBS에서 공식적으로 언급만 하지 않았을 뿐 ‘정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다만 시기와 방법이 문제일 뿐이죠.

윤세영 회장의 ‘2선 후퇴’ 발언을 두고 ‘윤석민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를 시사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인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SBS는 오는 27일 이사회와 다음달 22일 주주총회를 통해 차기 회장을 선임할 예정인데 이때 결과를 보면 알 수 있겠지요.

재계와 드라마에선 ‘재벌3세’ 경영이 화두이고 방송계에선 ‘2세 경영’이 화두로 떠오르네요. 갑자기 SBS 주말드라마 <시크릿가든>의 김주원이 생각납니다. “SBS! 이게 정말 최선입니까? 후회 안 할 자신 있어요?”

KBS ‘추적60분’과 천안함 그리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심의위)는 역시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지난 5일 심의위가 KBS의 <추적 60분> ‘천안함 편’(2010년 11월17일 방송)에 대해 경고 결정을내렸습니다. 경고는 심의위 징계 가운데 중징계에 해당합니다.

심의위는 <추적60분> ‘천안함 편’이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9조(공정성 관련) 2항과 3항, 14조(객관성 관련) 조항에 위배된다고 판단을 했더군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공정성’ ‘객관성’ 조항이 또 다시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논란이 되고 있는 9조 2항은 ‘방송은 사회적 쟁점이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사안을 다룰 때에는 공정성과 균형성을 유지하여야 한다’고 돼 있습니다.


좋은 말만 가득한 이 조항은 하지만 문제가 많습니다. 너무 포괄적이기 때문입니다. ‘방송은 사회적 쟁점이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사안을 다룰 때에는 공정성과 균형성을 유지하여야 한다’는 이 조항을 실제 방송 프로그램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요? 악용될 소지가 많습니다.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린 전기통신기본법의 ‘공익을 해할 목적’이라는 조항과 똑같다는 말이죠. 아니 ‘공익을 해할 목적’의 그 공익을 어떻게 판단하고 규정한다는 건가요? 헌재도 이런 모호함 때문에 위헌 결정을 내렸는데, 심의위의 ‘공정성과 균형성, 객관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애매모호한 말이 어디 있나요. 이런 모호한 규정은 시사고발프로그램을 옥죄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게 여러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자칫 방송심의 규정이 헌법적 권리인 언론자유를 침해하는 ‘웃기는 상황’이 된다는 거죠.

그런데 이 ‘웃기는 상황’을 심의위가 ‘근엄한 표정’으로 결정을 했습니다. 심의위 의결과정에서 9명의 위원 중 야당 추천의 엄주웅 상임위원과 백미숙 위원은 ‘문제없음’과 ‘의견제시’를 주장했지만 정부여당이 추천한 6명의 위원들은 전원 법정제재를 요구했다고 합니다.

뭐 심의위가 어차피 결정을 했으니 더 이상 토는 달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청와대 청부 심의 방통심의위는 해체하라”는 비난이 왜 나오는지에 대해선 한번쯤 생각을 해보셨으면 합니다. 특히 정부여당이 추천한 6명의 위원들 말이죠.

<사진 설명 : 고대영 KBS 보도본부장 ©KBS>
<사진 설명 : 윤석민 SBS미디어홀딩스 부회장 ©SBS>
<사진 설명 : KBS '추적60분' 천안함 편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