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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흔적/핫이슈

‘정수장학회 파문’에서 벗어나기 위한 조중동의 안간힘

공동 편집회의라도 한 듯 ‘판박이 보도’ … 의제 전환 위해 필사(?)의 노력

이 정도면 필사적입니다. 오늘자(23일) 조중동 지면을 보고 하는 얘기입니다. 대다수 신문이 1면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정수장학회 파문을 얘기하고 있는데 이들 세 신문만 딴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세계일보는 ‘정수장학회 파문’을 1면이 아닌 4면에 배치했지만 포인트는 조중동과 전혀 다릅니다. ‘박근혜 후보의 독단과 불통’을 질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제(22일) 지면과 사설에서 박 후보에게 ‘날선 비판’을 가했던 조선·중앙일보는 오늘(23일)자에선 ‘순한 양’이 돼 버렸습니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박 후보의 정수장학회  기자회견에 대한 비판여론이 제기되고 있고, 기자회견 한 지 하루 만에 갑자기 태도를 바꿔 “언론사 지분매각(정수장학회의 MBC·부산일보 주식) 의혹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갈팡질팡 행보를 보이는 데도 이에 대한 지적은 자취를 감췄습니다. 오늘자(23일) 정수장학회 파문을 신문들이 어떻게 보도했는지 한번 보시죠.

조중동, 공동편집회의 한 듯 제목까지 엇비슷하게 보도

먼저 조중동을 제외한 신문들이 보도한 정수장학회 관련 기사들입니다.



<정수장학회, 박정희 미화사업 해왔다> (경향신문 1면)
: 2-3-4면에 ‘정수장학회 논란’ 집중 배치
<“거부한다고 해결될 일 아니다” 박, 최필립 사퇴 직접 촉구> (국민일보 1면)
: 4-5면에 관련기사 배치 / 박근혜 독불장군식 결정 비판
<박 ‘정수 오발탄’ … 대선 중반 판세 뒤흔든다> (서울신문 1면)
: 관련기사 3면에 배치
<박 회견내용 핵심 참모조차 몰라 … ‘독단·불통’ 다시 도마 위> (세계일보 4면)
<박근혜 하룻만에 … “언론사 지분매각 의혹 밝혀야> (한겨레 1면)
: 관련기사 3-4면에 배치 / 사설에서 박근혜 후보 비판
<‘정수장학회 박 회견’ 여도 비판론> (한국일보 1면)
: 관련기사 3-4면에 배치

언론사마다 지면배치나 논조가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박근혜 후보의 정수장학회 기자회견을 비판하는 쪽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특히 독단과 불통을 질타하는 지면배치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오늘자(23일) 조중동은 마치 공동 편집회의라도 한 듯이 판박이 보도를 하고 있습니다. 1면에서 관련 기사가 없는 것도 거의 똑같고, 기사배치와 제목까지 엇비슷합니다. 더 이상 정수장학회 논란이 확산되지 않기를 바란다고나 할까요. 한번 보시죠.

<박 “최필립 사퇴 거부로 해결될 일 아니다”> (동아일보 4면)
<박근혜 “사퇴 거부한다고 해결될 일 아니다”> (조선일보 4면)
<박근혜 “사퇴 거부로 해결될 일 아니다” … 최필립 압박> (중앙일보 5면)

오늘자(23일) 조중동의 지면이 흥미로운 건 어제(22일)와는 너무 다른 논조 때문입니다. <박측, 최필립 1주일 설득 실패 … 발빼려다 더 꼬였다>(조선일보 10월22일자 3면) <박 후보 참석한 당 공식회의에서 장학회 문제 결판내라>(조선일보 10월22일자 사설) <과거사 지탄, 사과는 없었다>(중앙일보 10월22일자 1면) <박근혜의 정수장학회 설명 논란만 키웠다>(중앙일보 10월22일자 사설) 등 하루 전만 해도 박 후보에게 ‘날선 비판’을 가했던 조선과 중앙일보가 오늘은 갑자기 엉뚱한 소릴 합니다.

하루 간격에 지면배치가 극과 극인 조선과 중앙 … “달라도 너~~~무 달라”

정수장학회 파문으로 대선 정국이 계속 요동치면 새누리당의 대선 승리가 힘들겠다고 판단을 한 모양인지  조선일보는 ‘노무현 대통령이 주재회의에서 청와대 문건 목록을 없애기로 지시했다’는 내용을 1면에 올렸습니다. 또 중앙일보는 쌀쌀해진 날씨 관련 사진과 함께 ‘일하다 그만둔 전업주부가 다치거나 숨지면 연금이 0’이라는 기사를 톱기사로 배치합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한 마디 덧붙이면 중앙일보가 보도한 1면 톱기사가 의미 없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대다수 신문들이 1면에 기사를 배치할 만큼 정수장학회 문제가 여전히 핫이슈임에도 오늘자(23일) 조선과 중앙은 이를 외면하는 듯한 지면배치를 보였고, 저는 여기에 의문점을 찍고 있는 겁니다. 또 그런 지면배치의 배경에 ‘박근혜 정수장학회 파문’을 다른 의제로 돌리려는 의도가 있지 않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과 어제만 해도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정수장학회 기자회견을 비판했던 이들 신문이 이렇듯 하루 간격으로 갑작스럽게 ‘지면전환’에 나선 이유를 선뜻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이런 느낌입니다. ‘우리가 이 정도 비판하면 박 후보가 태도 변화를 보일 줄 알았는데’ 별다른 태도변화가 없으니까 포기하고(?) 대중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작전에 돌입했다고 할까.

아무튼 조선·중앙일보의 ‘박근혜 쿠데타’는 하루 만에 없던 일이 된 것 같습니다.

조선·중앙 따라하다 ‘머쓱해진’ 동아일보

사실 오늘(23일) 조중동 가운데 가장 ‘머쓱해진’ 신문은 동아일보입니다. 어제(22일) 다른 신문들과 달리 1면에서 “박(근혜) 후보는 이날 기자회견 내내 야당의 공세를 조목조목 반박하는 등 정수장학회 논란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와 같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친박 기사’를 선보인 동아일보가 오늘은 조금 다른 태도를 보였기 때문입니다.

어제(22일) 9개 전국단위종합일간지 중에서 유일하게 사설을 게재하지 않았다는 점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조선·중앙일보마저 어제(22일) 지면과 사설에서 박 후보를 강하게 질타하는 것을 보고 ‘방향을 잘못 잡았다’고 생각한 것일까요. 아무튼 동아일보는 오늘자(23일) 지면에서 갑자기(!) <인혁당과 정수장학회, 박 후보 법인식의 ‘방황’>이라는 사설을 게재합니다.

“정수장학회 문제는 형식적인 법 논리만으로 따질 일은 아니다. 5·16 군사정권이 부산의 사업가 김지태 씨의 부일장학회를 사실상 빼앗다시피 해 만든 정수장학회의 탄생배경이나 측근인 최필립 씨가 이사장을 맡고 있다는 점에서 본다면 박 후보와 결코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 박 후보가 기왕에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정적 유산을 털고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정수장학회 문제도 협소한 법적 논리를 넘어서 현실적 판단을 해야 한다.”

동아일보 사설 - 맞는 말이긴 합니다만 왠지 공허하게 울리는 것 같습니다. 어제(22일)는 ‘친박스러운 기사’를 내보내고 오늘자(23일) 사설에선 박근혜를 비판하는 모습에서 진정성을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이중적인 태도를 보일 거라면 조선·중앙일보처럼 ‘치고 빠지는’ 방식이 조금 낫지 않을까 싶네요. ‘타이밍’ 놓친 언론의 비판처럼 맥 빠지는 건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