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과거흔적/핫이슈

‘카이스트 자살 파문’에 카이스트 교수가 없다

[핫이슈] 카이스트 교수들의 목소리가 없는 이유는?

카이스트 학생이 또 자살했습니다. 올 들어 벌써 4번째입니다. 상황이 이 정도 되면 카이스트 학생 자살 문제는 더 이상 카이스트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한 언론이 지적한 것처럼 “국내 최고 과학기술인력을 키워내는 카이스트가 올해 들어 4명의 학생을 잃는 비극의 무대로 전락하고” 있다는 건, 이미 ‘카이스트 학생 자살’ 파문이 사회문제화 됐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잇단 ‘카이스트 학생 자살 파문’을 보면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이번 파문에 대해 많은 언론과 교수, 전문가들, 심지어 카이스트 학생들까지 1인 시위에 나서면서 원인을 진단하고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정작 카이스트 교수들의 목소리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카이스트 학생 자살’ 파문에 카이스트 교수들의 목소리가 없는 현상 - 이상하지 않으세요.

‘진정한 카이스트 개혁’은 교수들의 참여로 시작한다

카이스트 교수들의 ‘침묵’은 서울대 교수들이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더욱 도드라지는 양상입니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대표적입니다. 조 교수는 8일 자신의 트위터에 이번 사태를 초래한 장본인으로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을 지목하면서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날 것을 요구했습니다.

우희종 서울대 의과대학 수의학과 교수도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카이스트의 ‘징벌적 수업료’를 강하게 비판했고, 같은 날 김기석 서울대 사범대학 교육학과 교수 역시 페이스북을 통해 “세계 어느 대학이 학생을 죽음으로 몰아붙이며 최고 자리에 갈 수 있냐”며 서남표 총장의 ‘무한경쟁 방식’을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카이스트 교수들의 움직임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지난달 29일 카이스트의 정재승 교수가 자신의 트위터에 “학생들의 일탈과 실수에 돈을 매기는 부적절한 철학에 여러분을 내몰아 가슴이 참담하다”며 근본적인 대책마련을 촉구한 정도가 주목받았을 뿐입니다.

올 들어 학생 4명이 연이어 죽음을 선택하면서 사회적 이슈가 될 정도로 서남표 총장의 카이스트 교육방식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지만 사태 해결을 위한 카이스트 교수들의 조직적인 움직임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비관을 딛고 학생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카이스트 교수들이 이번 파문을 외면하고 있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학생들의 자살 소식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안타까워하는 교수들이 많습니다.

오늘(8일) 한겨레만 봐도 “김진형 카이스트 교수(전산학)는 수화기를 붙들고 펑펑 울음을 터뜨렸다”고 합니다. “이 상황에서… 교수로서… 정말 부끄러워서”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8일자 한겨레에는 학생들의 죽음을 아파하는 교수들의 이름(김동수 수리과학과 교수, 이승섭 학생처장)이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위로와 슬픔만으로는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의 무한경쟁이 빚어낸 교육참사를 막을 수 없습니다.

그동안 집단 행동에 소극적이었던 카이스트 학생들이 최근 학교를 비판하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이고 1인 시위에도 나서는 것처럼 카이스트 교수들도 이번 사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조직적인 목소리’를 내는 게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트위터에 개인 의견을 내거나 언론을 통해 학생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방식이 아니라 영재들을 데려다가 성적으로 줄을 세우는 카이스트의 교육 문화를 바꾸기 위한 내부 개혁에 나서야 한다는 그런 얘기입니다.

“카이스트는 거의 군대야”

오늘 오전에 카이스트에 재학 중인 아들을 두고 있는 한 언론계 선배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선배가 이런 얘길 하더군요. 지금 카이스트에서 집회나 대자보 등을 통해 총장이나 학교 방침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다는 건 거의 ‘목숨 걸고’ 하는 일이나 마찬가지라고.

이 선배의 얘기는 카이스트 내부 문화가 얼마나 관료조직처럼 경직돼 있는 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는 카이스트가 영재들의 창의성을 살리는 방식이 아니라 획일적인 교육방식을 통해 몰개성화시키고 있다는 지적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카이스트는 거의 군대야”라는 이 선배의 지적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카이스트 교수들이 이 문제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줬으면 좋겠습니다. 카이스트 교수들이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나서지 않으면 학생들의 잇단 죽음을 막을 수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카이스트 개혁’은 교수들의 참여로 시작된다는 걸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진(위)=한겨레 2011년 4월8일자 3면>
<사진(중간)=중앙일보 2011년 4월8일자 19면>
<사진(아래)=경향신문 2011년 4월8일자 1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