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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흔적/핫이슈

중앙일보의 민주노총 비판은 ‘옳다’

[핫이슈] 진영논리와 자격론 비판에서 벗어나자

<남의 혼사 재 뿌리는 노동운동>. 11일 중앙일보 사설 제목입니다. 제목에서 짐작하셨겠지만 노동계를 비판하는 내용입니다. ‘재벌신문’으로 분류되는 중앙일보의 노동계 비판이기 때문에 선입관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만, 저는 그렇게만 볼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는 말입니다.

지난 9일 서울의 한 결혼식장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집회를 열었습니다. 이날 오후 2시부터 김완주 전북도지사의 딸 결혼식이 있었는데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오후 1시30분부터 2시간 동안 집회를 연 것이죠.

답답한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요구는 “전북지사는 버스파업을 해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절박했으면 결혼식장까지 찾아와서 이렇게 집회를 개최했을까 - 저도 처음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그렇다고 민주노총의 이날 집회방식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가 없더군요. ‘재벌신문’인 중앙일보가 민주노총을 비판한 사설이 내용적으로 충분한 합리성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제가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지만 민주노총을 비판하는 것 자체가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한국 사회 전체 판에서 민주노총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 때문입니다. 한국에선 민주노총에 대한 비판이 보수진영에 대한 지지로 해석되는 이상한 분위기가 있습니다. 운동방식에 대한 비판이 민주노총 전체를 부정하는 식으로 연결되는 것도 조심스러움을 더하는 요인입니다.

물론 이해합니다.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신문들은 걸핏하면 민주노총을 악의적으로 비난하는 기사를 많이 내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국내 대기업들의 노동계에 대한 조직적인 탄압 또한 교묘하게 진행이 되고 있죠.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에 대한 비판이 어떤 식으로 여론시장에서 유통이 될 지를 그려보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결혼식 집회 건은 민주노총이 비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12월 8일부터 시작한 전주시내 버스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조합원들이 절박감을 느껴 나온 행동”이라는 점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딸 결혼식장까지 가서 집회를 여는 방식은 아니라고 봅니다. “일부 노조원들은 예식장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과 충돌을 빚었고, 하객들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고 하니 당시 상황이 어땠을 지는 충분히 짐작이 갑니다.

버스파업 해결에 미온적인 전북도의 행태는 비난받아야 하지만

물론 지난해 12월 8일부터 시작한 전주시내 버스 파업이 지금까지 장기화된 데에는 회사 측 못지 않게 김완주 전북도지사의 책임이 상당 부분 있다고 보여집니다. 사태해결을 위한 모색보다는 사실상 방관하는 듯한 태도를 취해왔고, 이 와중에 시민들의 불편은 극대화됐죠. 파업 노동자들도 극한 상황에 몰리면서 점점 투쟁 강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태를 이 지경으로까지 몰고 온 전북도에 일차적 책임이 있는 걸 부인할 순 없습니다.

이런 측면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운동과 집회에 있어 최소한의 원칙이라는 게 있습니다. 김완주 지사의 딸 결혼식과 이번 파업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버스 파업참가 노동자들의 절박한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딸 결혼식장에 와서 이런 식으로 집회를 개최하는 건, 적절한 방식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날 집회로 버스파업 노동자들에 대한 여론이 더 악화됐으면 됐지, 좋아질 리는 없다고 봅니다. 이런 상황 자체가 버스파업 해결은커녕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이른바 ‘서울 지역 언론들’이 전주 버스파업을 제대로 보도한 적이 있냐고. 이번에 사설을 게재한 중앙일보 역시 ‘가끔씩’ 관련기사를 썼지만 노동계에 우호적인 논조는 아니었습니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되도록 제대로 된 기사 한번 내보내지 않은 언론이 막상 ‘이런 사태’가 발생하니 노동계에 대한 비난을 쏟아낸다는 식이죠. 이런 지적도 충분히 일리는 있습니다. ‘재벌신문’인 중앙일보가 과연 노동계를 비판할 자격이 있느냐 하는 부분은 생각해 볼 여지가 있으니까요.

진영 논리와 자격론을 벗어나자

하지만 이런 식의 ‘자격론’으로 논의가 진행이 되면 곤란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민주노총의 이번 집회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중앙일보 사설이 논리적으로 그리고 내용적으로 문제가 많을 경우 그 논리적 허점과 내용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는 식으로 가야지 “너 노동계 비판할 자격 있어”라는 식으로 가면 곤란하다는 거죠.

저는 민주노총의 이번 집회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한 중앙일보의 사설을 내용적으로 생각해 볼 여지가 많다고 봅니다. 물론 이런 ‘칭찬’이 전주 버스파업과 관련한 중앙일보의 보도나 논조에 대한 지지를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적어도 이번 ‘결혼식 집회’에 대해선 중앙일보의 지적은 내용적으로 충분히 설득력을 가진다는 얘기입니다.

<사진(위)=중앙일보 2011년 4월11일자 사설>
<사진(아래)=경향신문 2011년 4월7일자 1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