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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흔적/핫이슈

‘서태지-이지아’ 관련 진상 보도 베스트3

[핫이슈] 정론지 간판 내리고 타블로이드로 가라

‘서태지-이지아 이혼’ 파문과 관련해 모 케이블 방송사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 참여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해 ‘내 입장이 정리되지 않았다’고 제작진에게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비겁했던 것 같다.

가수나 배우, 탤런트는 공인이 아니며 그들의 활동과 사생활은 별개라는 게 지금까지 내가 가진 입장이었다. 그들이 결혼을 하건, 이혼을 하건 아님 바람을 피우건 그건 그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그들 외의 다른 누군가가’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라는 거다. 표절이나 반사회적 범죄를 저지른 게 아니라면 서태지와 이지아 씨의 사적인 영역은 보장해줘야 한다 - 이게 내가 가진 생각이었다.

그런데 ‘서태지-이지아 파문’이 불거졌을 때 좀 멈칫했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서태지가 가진 영향력과 파급력 때문이었을까. 아님 눈치를 본 걸까. 모르겠다. ‘다르게 볼 여지’는 없는 것일까 - 이런 부분을 계속 고민했던 것 같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비겁했다. 다르게 볼 여지는 없었기 때문이다.

‘미친 척 날뛰는 언론보도’ 이제 그만 중단해라

어차피 이런 사건이 터지면 인터넷과 스포츠신문은 미친 척 날뛰기 마련이다. 표현이 좀 심한 것 같은가. 아니다. 미친 척 날뛴다는 표현은 오히려 좀 완화시킨 것이다. 더 심한 표현을 쓴다 해도 그들의 보도행태를 제대로 묘사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이 글에서 종종 거친 표현이 등장할 지도 모른다. 양해 바란다.)

일부 인터넷매체와 연예매체 그리고 스포츠신문들은 포털에 빌붙어 이참에 조회수나 늘려보자 - 이런 계산을 했을 것이다. 이해도 못하겠고, 공감도 하기 어렵지만 ‘원래 그런 매체들’이니 일단 논의대상에서 제외로 해두자. 쓰레기는 휴지통에 버리고 내다 버려야지, 진지하게 대해주면 쓰레기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론지를 지향한다는 매체들까지 이번 광풍에 미쳐 날뛰는 것을 보는 것은 역겨운 일이다. 아니 짜증난다. 내용적으론 ‘쓰레기 매체’가 쏟아내는 수준의 기사를 내보내면서 뭔가 심오한 의미가 있는 것처럼, 자못 심각한 척 온갖 고상한 폼을 잡고 있는 걸 보면 … 이들 보도와 예능 프로그램의 블랙 코미디가 대체 뭐가 다른가 - 의문을 가지게 된다. 비싼 월급 주면서 고작 이런 ‘짓’이나 시키고 있는 언론사들의 행태도 짜증나는 건 마찬가지다. 진상도 이런 진상들이 없다. ‘서태지-이지아 관련 진상 보도 베스트3’을 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진상 1위 : 중앙일보 ‘톱스타들 사로잡은 이지아 … 그녀는 별들의 블랙홀?’

지난 23일 중앙일보 3면을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톱스타들 사로잡은 이지아 … 그녀는 별들의 블랙홀?>이라는 기사가 3면 가득히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뭐라 그럴까 … 부끄러웠다. 아니 중앙일보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도 빅3 안에 꼽히는 언론사인데 … ‘남자스타를 사로잡은 이지아의 매력이 뭘까’ 따위의 기사를 종합면 그것도 1면 다음으로 비중이 큰 3면에 내보내다니 … 정말 제정신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랬다. 온 나라가 ‘서태지-이지아 파문’에 미쳐 돌아가고 있었다.

고백하나 하자면, 나도 이런 종류의 얘기를 주변 사람들과 한 적이 있다. 개인적 호기심과 가십거리에 대한 일종의 수다떨기였다. 그것도 남들이 들을까봐 주변사람들과 소곤대며 조심스럽게 했다. 그런데 중앙일보는 ‘이런 가십거리’를 거의 한 면을 털어서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기사로 내보냈다. 정말이지 개그 프로그램에서 한때 유행했던 말이 저절로 튀어 나왔다. “이거 정말 미친 거 아냐?” 대한민국 정론지를 표방하는 매체의 수준이 이거밖에 안 된다. 비극이다.

진상 2위 : ‘서태지-이지아’ 보도 위해 LA 특파원 동원한 MBC

지난 24일 MBC <뉴스데스크>는 재보궐 선거 관련 리포트 2개를 내보내더니 ‘서태지-이지아’ 관련 소식을 두 꼭지 연속 배치했다. “재보궐 선거 못지 않게 관심 끄는 뉴스가 서태지 이지아 씨 소식이죠”라는 앵커 멘트와 함께.

이로써 MBC는 4·27 재보궐 선거와 ‘서태지-이지아’ 파문을 거의 동급으로 여기고 있음을 세상에 고백했다. ‘서태지-이지아’ 파문이 머리뉴스 다음 꼭지로 보도될 만한 사안인지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더 가관인 건, 이지아 씨가 5년 전에 이미 미국에서 재산권을 포기했다는 리포트를 한 당사자가 LA 특파원이었다는 점이다. 미주 한국일보가 제공한 이혼 판결문을 바탕으로 그 내용을 상세히 해설해주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대체 언제부터 특파원들이 <섹션TV 연예통신> 리포터들과 경쟁을 했을까 - 이런 의문이 들었다.

아니 특파원들만 경쟁을 하는 게 아니다. 지금 <뉴스데스크>는 <섹션TV 연예통신>과 경쟁을 하고 있다.

진상 3위 : 서태지 결혼 보도, 15년 만에 ‘특종’ 확인한 KBS

공영방송 KBS는 지난 23일 <뉴스9>에서 15년 전에 서태지 결혼을 특종 보도한 기자를 인터뷰해서 내보냈다. “결혼 사실이 이미 15년 전 보도됐었지만 ‘오보 소동’으로 끝났던 일이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면서 “15년 만에 특종으로 밝혀진 기사를 썼던 당시의 기자”를 KBS가 만난 거다.

만약 이 내용을 KBS <연예가 중계>에서 내보냈다면 그냥 ‘재미있게’ 보고 지나쳤을 것이다. 그런데 KBS는 <연예가 중계>가 아니라 <뉴스9>에서 기자 리포트로 처리했다. KBS가 앞으로 톱스타들 결혼 소식을 <뉴스9>에서 비중 있게 처리하려나보다. 스포츠신문의 과거 특종까지 꼼꼼히 챙기면서 <뉴스9>에서 별도 리포트로 처리하는 걸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MBC는 LA 특파원이 <섹션TV 연예통신> 리포터와 경쟁을 하더니, KBS는 보도본부 기자들이 <연예가 중계> 리포터들과 경쟁을 하려고 한다. 종편 출범을 앞두고 연예뉴스가 언론계의 ‘킬러 콘텐츠’로 떠오르고 있는 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은데 … 문제는 기존 관습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 말은 정론을 표방하는 언론의 비슷한 ‘진상 짓’이 앞으로도 상당기간 계속될 거라는 걸 의미한다.

<사진(위)=경향신문 2011년 4월25일자 2면>
<사진(두번째)=중앙일보 2011년 4월23일자 3면>
<사진(세번째)=2011년 4월24일 MBC '뉴스데스크'>
<사진(마지막)=2011년 4월23일 KBS '뉴스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