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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흔적/여성신문

보수진영의 ‘나꼼수’ 비판, 재앙일 수 있다

[미디어곰의 세상보기] 기성 언론의 자기반성이 우선이다

‘나는 꼼수다’(나꼼수)가 열풍입니다. 국내 팟캐스트 1위에 오르더니 미 뉴욕타임스에서도 ‘나꼼수’를 주목합니다. 혹자의 말대로 지금 한국에서 ‘나꼼수’를 모르면 거의 ‘간첩’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전문가와 미디어들이 ‘나꼼수’ 열풍의 원인에 대해 진단하고 논평합니다. 그런데 포인트와 방점이 다릅니다. 기성 언론, 특히 그 중에서 동아·조선일보 같은 보수신문은 ‘나꼼수’를 비판하는데 공을 들입니다. “나꼼수는 한나라당 지지층의 화병(火病)을 돋우기로 작심한 방송” “정권을 되찾아오겠다는 좌파의 수준이 딱 이 정도”라는 논평에서 알 수 있듯이 보수신문의 ‘나꼼수’ 비판은 ‘평가절하’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기성 언론, ‘나꼼수’ 비판하기 전에 반성이 우선

‘나꼼수’에 대한 평가는 자유지만 기성언론, 특히 동아·조선일보의 ‘나꼼수’ 비판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뭐랄까 … 제대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한나라당이 10·26 서울시장 재보선에서 패배한 이후 방향을 못 잡고 있는 것처럼 이들 보수신문 역시 왜 대중들이 ‘나꼼수’에 열광하는지 제대로 원인을 분석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들’은 기성언론을 위협하는 ‘나꼼수’의 파괴력만 주목합니다. 그러다보니 ‘나꼼수’의 파괴력과 영향력 확대만 눈에 보입니다. 그것을 가능케 한 대중들의 ‘기성언론에 대한 불만’과 ‘변화에 대한 욕구’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저주와 조롱 퍼붓는 인터넷 방송”이라는 식의 극단적인 비판만 양산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나꼼수 열풍’을 어떻게 볼 것인가 -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다양하게 나올 수 있습니다. 진중권 씨가 ‘나꼼수’를 비판한 것에 대해 ‘나꼼수’ 지지자들이 발끈했지만 저는 ‘나꼼수’가 그의 비판을 진지하게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일방적으로 비난만 할 일은 아니라는 겁니다. 이 문제는 별도로 논의를 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나꼼수 열풍’에 대한 진단은 다양하게 나올 수 있지만, 저는 기성언론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열풍의 원인을 진단하기 전에 우선해야 할 것이 있다고 봅니다. 바로 자기반성입니다. 

‘나꼼수 열풍’과 ‘기성언론의 역할’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기성언론이 자신이 맡은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면 지금과 같은 ‘나꼼수 열풍’이 가능했을까요. 저는 불가능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현재의 ‘나꼼수 열풍’은 MB정부에 대한 불만과 기성언론에 대한 불만이 결합되면서 폭발성을 가졌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는 얘기입니다.

‘나꼼수 열풍’ = ‘MB정부에 대한 불만+기성언론에 대한 불만의 합작품’

최근 사례만 봐도 그렇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 의혹이 불거졌을 때 기성언론은 무엇을 했나요. 조금 오버해서 말하면 아무 것도 한 게 없습니다. MB 내곡동 사저 의혹은 시사주간지 <시사IN>과 <시사저널>이 보도하면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청와대 출입기자가 없는 시사주간지가 대통령 사저와 관련한 의혹을 제기한 것 자체만으로도 기성언론이 부끄러워  해야 할 일이죠.

그런데 기성언론은 부끄러움은 고사하고, 후속보도도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KBS MBC 등은 기자 리포트인지 청와대 대변인 논평인지 구분되지 않을 정도의 이상한 보도가 나가는가 하면 경향신문과 한겨레 한국일보 등 일부 언론을 제외하곤 ‘공방 위주’ ‘따라가기’ 보도가 주를 이뤘습니다. 의혹 자체를 파헤치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서울시장 선거 과정에서도 당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의 1억 원 피부과 논란과 사학비리 연루 등이 계속해서 불거졌지만 기성언론은 이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기성언론이 외면한 이 의혹들을 ‘나꼼수’는 주목했고, 팟캐스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됐습니다. 언론이 외면한 사안을 ‘나꼼수’가 풍자와 조롱이라는 방법을 통해 적극 알리면서 의제설정에서 기성 언론을 앞섰다는 말입니다. 

‘나꼼수’의 일방적 폄하, 보수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아

기성언론의 자기반성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입니다. 왜 대중들이 기성언론에 등을 돌리고 ‘사적 방송’에 불과한 ‘나꼼수’에 열광하는지 성찰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나꼼수’ 폄하에 열을 올릴 게 아니라 자신들이 설정한 프레임과 주장들이 왜 젊은 세대에게 외면 받는지를 반성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동아·조선일보의 ‘나꼼수’ 비판은 문제가 심각합니다. 최근 선거에서 잇따라 패배한 보수진영이 자기반성을 통한 발전보다는 여전히 퇴행 쪽에 서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수가 발전하지 않고 퇴행한다는 것은 한국사회 전체를 놓고 봤을 때 불행한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중앙일보 오병상 수석논설위원의 다음과 같은 진단은 그나마 위안(?)을 좀 주고 있습니다.

“첨단기술과 감각의 나꼼수는 당분간 위력을 더할 것이다. 보수 입장에선 목구멍의 가시처럼 불편할 것이다. 그렇다고 욕만 할 수는 없다. 나꼼수 애청자들을 모두 적으로 돌려선 안 된다. 무엇보다 나꼼수에 조롱거리를 제공하지 않아야 한다. 그게 보수의 발전이다.”

<사진(위)=한겨레 2011년 11월7일자 22면>
<사진(중간)=경향신문 2011년 11월3일자 6면>
<사진(아래)=중앙일보 2011년 11월4일자 38면>

* 이 글은 <여성신문> 인터넷판에 기고한(2011.11.7)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