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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흔적/핫이슈

‘친MB’ 한국일보의 커밍아웃

이명박 대통령이 24일 친인척·측근 비리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했습니다. 여섯 번째 대국민 사과입니다. 길지 않은 사과문이라 전문을 인용할 수도 있지만 ‘그럴 사안’은 아닌 것 같고 … 핵심만 몇 가지 추리면 이렇습니다.

“제 가까이에서 참으로 실망을 금치 못하는 일들이 일어났으니 생각할수록 억장이 무너져 내리고 차마 고개를 들 수 없다. 이제 와 누구를 탓할 수 있겠나. 모두가 제 불찰이다. 어떤 질책도 달게 받아들이겠다.”

“제 자신이 처음부터 깨끗한 정치를 하겠다는 확고한 결심을 갖고 출발해,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월급을 기부하면서 나름대로 노력했다.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자부해 왔다.”

“개탄과 자책을 하고 있기엔 나라 안팎의 상황이 너무 긴박하다. 대통령으로서의 책무를 잠시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점점 이상하게 변해가는 한국일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MB의 사과문이지만 신문들이 전하는 온도차는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근본적 자기성찰이 없다’며 강하게 질타하는 신문이 있는가 하면, ‘국민이 듣고 싶어 하던 말은 거의 다했다’고 평가하는 신문이 있습니다. 극과 극으로 나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오늘 뉴스브리핑은 그 ‘풍경’에 대한 기록입니다.

오늘 조간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는 신문은 한국일보입니다. 한국일보는 1면과 3면, 사설에서 MB사과를 다뤘는데 전반적인 기조는 ‘긍정 평가’입니다. MB의 대국민 사과를 ‘대선 공정관리 및 경제 챙기기 의지를 보인 것’(3면)으로 평가한 한국일보는 사설에서 “이 대통령이 겪었을 고심에 비추어 대국민 사과와 국민의 기대 수준을 견줄 이유는 없을 듯하다. 길지 않은 사과였지만, 이 대통령은 국민이 듣고 싶어하던 말은 거의 다 했다”고 적극적으로 MB를 ‘방어’하고 나섭니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일보의 기사와 논조가 예전과 달리 조금씩 변해간다는 느낌을 받고 있는데 오늘 한국일보가 전한 기사와 사설을 보면 단순한 ‘느낌’ 정도가 아니라 ‘한국일보의 완벽한 커밍아웃’으로 받아들여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올해 대선에서 한국일보가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 우려되는 부분이기도 하구요.

2% 부족한 한겨레의 ‘MB사과’ 보도

한겨레의 ‘MB사과’ 보도 역시 충분치 않습니다. 적어도 오늘 신문을 기준으로 했을 경우 비판의 날이나 강도 면에서 조선일보보다 부족하지 않나 싶습니다.

한겨레는 1면 사진과 6면 관련기사에서 MB사과를 다뤘는데 ‘진정성이 없었다’며 비판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날 선 비판’은 아니었습니다. 오늘 한겨레 기사에서 비판적인 부분은 단 한 군데였는데 그 부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이상득 전 의원 등 친인척·측근의 이름과 비리 내용은 전혀 언급하지 않는 등 ‘2%’ 부족한 태도를 보였다. 청와대 안에서도 ‘다소 일방적인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과연 MB사과가 ‘2%만 부족한’ 것이었을까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경향신문이 오늘자 사설에서 지적했듯이 이명박 대통령의 가장 큰 문제는 “근본적 원인에 대한 자기성찰이 여전히 미흡하다”는 것이고 “자신이야말로 현 사태를 초래한 몸통”임에도 거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도 없다는 점입니다.

말 나온 김에 경향신문 사설을 조금만 더 인용해 보겠습니다. 경향은 사설에서 “개탄과 자책만 하고 있기에는 온 나라 안팎 상황이 너무 긴박하고 현안 과제들이 너무나 엄중하고 막중하다”는 대목이 거슬린다고 지적했습니다. 저 역시 이 지적에 전폭 공감합니다. 이 대통령의 이 말은 이제 사과했으니 그만 묻고 가자는 오만으로 읽힐 수 있는 데다 국민에게 사과하는 대통령이 직접 할 소리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겨레는 이런 MB사과가 2% 부족하다고 지적합니다. 제가 보기엔 98%가 부족한데 한겨레는 저와는 생각이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특히 거의 모든 신문들이 온도차는 있을망정 오늘 MB 대국민사과와 관련한 사설을 게재했는데 한겨레만 관련 사설이 없는 것도 조금 거슬립니다.

MB 대국민 사과 일제히 비판한 조중동 그런데 조중동의 자기반성은?

조중동의 MB 대국민 사과와 관련한 보도는 조금 자세히 살펴봐야 합니다. 일단 ‘MB사과’를 전하는 조중동의 공통점은 기사와 사설이 ‘엇박자’라는 점입니다. 기사에서는 최대한 MB의 심정을 이해하는 듯한 보도태도를 보이다가 사설에선 MB비판에 나섭니다. 물론 MB비판을 하더라도 온도차는 있습니다.

조중동 가운데 가장 날선 비판을 가한 곳은 조선일보입니다. 조선일보는 8면에서 2단으로 ‘짧게’ MB의 대국민사과를 전했습니다. 축소보도하려는 것일까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 조선일보의 사설을 읽어보면 축소하려는 의도보다는 ‘길게 보도할 필요가 없는’ 대국민 사과라는 판단을 한 것 같습니다. 일부를 인용합니다.

“이 대통령 사과를 듣다 보면 이 대통령은 가족과 측근들이 저지른 ‘불미스러운 일들’을 요즘에야 알게 된 것처럼 느껴진다 … 5년 전 대선을 앞두고 이 대통령의 당선을 돕겠다는 명목 아래 이 대통령의 수족(手足)에게 줄줄이 검은돈이 건네졌는데 이 대통령만 모르고 있었다는 얘기다 … 이런 자신의 잘못에 대한 대통령의 자성(自省)이 없는 것이 아쉽다.”

동아일보는 1면과 4면, 사설에서 MB사과를 전했습니다. 기사를 짧게 보도한 조선일보와는 달리 동아는 4면에서 MB사과를 길게 보도했는데 전반적인 기조는 이명박 대통령의 심정을 설명해주는 양상입니다.

그런데 사설에서 동아일보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일부를 인용합니다.

“사과문이 나온 과정을 보면 진정성에 의구심이 든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이 대통령의 사과문 발표가 통보된 것은 이날 오후 1시 40분이었다. 이런 중요 사안이라면 며칠 전, 최소한 몇 시간 전에라도 예고하는 것이 상식이다 … 이 대통령의 사과문 발표는 TV 화면에 자막으로 간단하게 처리됐다. 국민의 관심이 쏠린 친인척 및 측근 비리와 관련한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 일각에서 기록용으로 남기거나 사과하는 모양새만 갖추려고 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가장 비중 있게 보도한 중앙일보 하지만 ‘알맹이’가 없다

중앙일보는 오늘 조간들 가운데 관련 소식을 가장 크게 보도했지만 정작 내용은 ‘별 볼일’이 없습니다. 4단 크기의 1면 머리기사는 MB의 사과문을 단순 요약하는 정도였고, 사설에서도 이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비판했지만 MB의 근본적 문제와 한계를 지적하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중앙은 사설에서 “대통령이 형님의 총선 출마를 막고, 측근들에게 엄한 비리 단속 경고를 내리고, 사정기관을 동원해 감시체제를 가동했다면 이런 사태의 상당 부분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비판했는데 사실 이런 비판은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언론 자신에게 먼저 적용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네요. 정권 초기 MB측근 비리가 터져 나올 때 조중동이 어떻게 보도했는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기에 하는 얘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