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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흔적/핫이슈

‘BBK 편지’는 죽이고 ‘장자연 편지’는 조작으로 키우고

[핫이슈] 조선일보 ‘장자연 보도’가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이유

조선일보가 ‘고 장자연 씨 편지 조작’ 주장에 힘을 싣고 있습니다. ‘고 장자연 편지’ 가운데 일부에서 조작 흔적이 발견됐다는 경찰 발표를 오늘(11일) 1면에 배치한 것이 이를 반증합니다. 그만큼 ‘조작설’에 비중을 두고 있는 거죠.

‘장자연 편지’를 단독 보도했던 SBS가 “편지 전체가 239쪽인데 위조가 가능하냐”고 의문을 제기했지만 조선일보는 이 ‘반론’을 기사에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SBS보다 경찰 발표를 더 신뢰한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힌 셈입니다.

‘조작설’에 힘 싣는 조선일보의 의도는 결국 ‘사주 구하기’

조선일보의 이 같은 편집에 반론을 제기할 수는 없습니다. 조선일보가 이번 사안을 그렇게 보고 있다는 나름의 판단이니까요. 정확한 사실여부는 따져봐야겠지만 ‘장자연 편지’를 두고 조작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일단 분명한 ‘팩트’니까요.

문제는 조선일보의 이런 편집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 아닐까요. 사견입니다만, 저는 조선일보 의도대로 독자들이 제대로 호응해 줄 가능성은 낮다고 봅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씩 살펴보죠.

우선 최근 ‘장자연 보도’에 대한 조선일보의 보도태도 - 지나치게 ‘정치적’입니다. 저는 이게 독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없는 첫 번째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장자연 관련’ 조선일보 최근 보도를 보면 목적은 하나입니다. ‘조선일보 사주 구하기.’ 한번 볼까요.

지난 9일 조선일보는 <장자연 소속사 대표 김모씨 평소 스포츠조선 前사장을 ‘조선일보 사장’으로 부른 게 오해 불러>라는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그리고 하루 뒤인 10일 <金씨(故장자연씨 소속사 사장) 스케줄표에 등장하는 ‘SBS사장’도 계열사 SBS프로덕션 대표를 잘못 쓴 것>이라는 기사도 실었죠. 두 기사가 의도하는 바는 제목만 얼핏 봐도 분명히 드러납니다.  ‘조선일보 사주 구하기.’

사안을 파헤치기보다 ‘조선일보 사주’ 혐의 없음에 방점 찍는 조선일보

두 사안을 집중 보도한 뒤 조선일보는 오늘(11일) ‘장자연 편지’ 조작 가능성을 주장하는 경찰 발표를 1면에 배치한 다음, 6면에 장자연 씨의 지인으로 알려진 전모 씨를 ‘정신병자이자 강간범’으로 보도했죠. 이 모든 ‘사실’은 조선일보의 ‘장자연 관련 보도’가 ‘사주 구하기’로 일관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장자연 파문’ 자체보다는 ‘조선일보 사주 구하기’에 올인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거 독자들이 모를 것 같나요? 요즘 독자들이 어떤 독자들인데요. 만약 조선일보가 이번에 불거진 ‘장자연 파문’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려는 노력을 하면서 한편으로 조선일보 사주의 부당성을 역설했다면 ‘많은 독자들’이 호응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전자는 생략한 채 후자에만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똑똑한 독자들’ 상대로 이렇게 노골적으로 ‘지면 장사’를 하면 곤란합니다. 역효과 부른다는 말입니다.


MB 가족 개입 불거진 ‘BBK 편지조작’은 아예 침묵

조선일보의 ‘장자연 관련 보도’가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오지 못하는 두 번째 이유는, 또 다른 편지조작 논란에 대해선 아예 침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제(10일) 세계일보와 경향신문이 보도한 내용인데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2007년 대선 직전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진영에서 김경준 씨의 ‘기획입국설’(참여정부의 청와대와 당시 여당인 민주당이 이명박 대선 후보에게 타격을 입히려는 목적으로 입국시켰다는 주장)을 폭로하며 물증으로 내세운 편지가 조작됐다는 겁니다. 세계일보는 검찰이 이런 정황을 포착해 내사하고도 형사처벌하지 않았다고 보도했죠.


경향신문은 김경준 씨의 ‘기획입국설’을 뒷받침한 수감 동료의 편지가 이명박 대통령 가족과 측근의 개입 하에 조작됐다는 주장이 나왔다고 보도했습니다. 편지의 원래 작성자로 알려진 신경화씨의 동생 신명씨(50·치과의사)가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했는데 “형이 보낸 것으로 알려진 편지는 사실 내가 작성한 것”이라며 이 같이 언급했습니다.

‘조작된 BBK 편지’는 보도 안하면서 ‘장자연 편지’ 조작설은 키운다?

이 사안은 이른바 ‘BBK 사건’을 원점으로 다시 되돌릴 수 있는 ‘메카톤급 사안’입니다. 핵심 증거인 당시 편지가 이명박 대통령 가족과 측근의 개입 하에 조작됐고, 검찰이 이를 알면서도 묵살했다는 게 무얼 의미하는 걸까요. 아마 모르는 독자들은 거의 없을 겁니다.


자 그런데 조선일보는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나요. 핵심증인이 ‘자신이 편지를 조작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이 사안을 지금까지 전혀 보도하지 않고 있습니다. (중앙과 동아일보 역시 보도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만약 조선일보가 ‘장자연 편지 조작설’을 ‘BBK 편지 조작논란’과 함께 비중 있게 보도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역시 사견입니다만 적어도 ‘장자연 편지 조작설’에 무게를 두는 조선일보의 보도태도를 ‘정치적’이라고 비난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사주 구하기’로만 일관하고 있다는 비난은 하지 않았을 거란 얘기죠.

‘장자연 파문’의 실체적 진실을 파헤치려는 노력까지 병행했다면 많은 독자들이 조선일보의 보도에 박수를 쳤을 지도 모를 일이죠. 그런데 조선일보는? ‘장자연 파문’은 ‘사주 구하기’로 일관하고 있고, ‘BBK 편지조작 논란’은 침묵으로 일관합니다.

‘이런 보도태도’를 보이면서 독자들에게 조선일보를 믿어달라고 하는 건 무리 아닐까요. ‘BBK 편지’는 죽이고 ‘장자연 편지’는 조작으로 키우는 식의 ‘정치적인 편집’으로는 요즘 독자들 공감을 얻기 힘듭니다. 신뢰를 얻고 싶다면 전략을 바꾸라는 얘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