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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흔적/매체기고

‘스폰서 기자’는 ‘스폰서 언론’의 초상이다

이 글은 시사IN 212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스폰서를 대중에게 알린 주역은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다. 그는 스폰서 의혹 때문에 청문회에서 낙마했다. 이후 ‘스폰서 검사’라는 말이 회자됐다. 한동안 포털에서 스폰서의 연관검색어는 검사였다. 스폰서는 검찰을 상징하는 단어가 됐다. 

그런데 최근 스폰서 연관검색어로 기자가 추가됐다. 정확히 말해 스폰서 기자다. 기자와 스폰서를 결합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 일등공신은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다. 그는 기자시절이던 지난 2002년부터 최근까지 이국철 SLS그룹 회장으로부터 수억 원을 받은 의혹을 받고 있다. ‘폴리널리스트’에 이어 ‘스폰서 기자’까지. 그가 한국 언론에 새긴 주홍글씨는 생각보다 크다.

‘스폰서 기자’는 신 전 차관을 계기로 불거졌다. 그러나 스폰서 논란을 ‘그’의 개인 문제로 보긴 어렵다. 월 500∼1000만 원씩 돈을 받은 신 전 차관 사례가 특수한 건 분명하지만 언론계에도 스폰서는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부산에서 10년 정도 기자생활을 했던 전직 기자의 증언이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로비의혹 사건이 불거질 때 가장 긴장했던 곳이 부산 경남지역 언론계였다고 말했다. 박 회장이 이 일대 언론계 스폰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실제 이 전직 기자는 박 회장으로부터 ‘스폰서’ 제안을 받은 적도 있다. 기자실 각종 경비부터 향응접대에 이르기까지 박 회장은 스폰서 역할을 하겠다고 제안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전직 기자는 말했다. “형편이 어려운 지역 언론 입장에서 이런 제안을 거부하기가 쉽진 않다.”

서울지역 언론도 예외는 아니다. 2009년 3월30일. 당시 강희락 경찰청장이 기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내가 공보관 끝나고 미국에 연수 준비하면서 기자들이 세게 한 번 사라고 해서 기자들 데리고 2차를 가는데, 모텔에서 기자들 열쇠 나눠주면서 ‘내가 참, 이 나이에 이런 거 하게 생겼나’ 별 생각이 다 들더라.”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나도 공보관 하면서 기자 접대 많이 해봤다.”

공보관 시절 출입기자들 스폰서 역할을 했다는 얘기다. ‘강희락 공보관’만 그랬을까. 궁금해서 20년 정도 기자생활을 한 중견기자에게 물었다. “정부 부처는 물론 대기업이나 유력 정치인이 기자들의 스폰서가 되는 경우가 있다. 지금은 많이 개선됐지만 그래도 ‘전혀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에둘러 표현했지만 곁가지 치고 핵심만 추리면 이렇다. “언론계에도 스폰서는 있다.”

스폰서 문화가 가장 활발한 곳은 역시 경제부다. 그 중에서 특히 산업부나 유통부가 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9년 11월1일 삼성테스코홈플러스는 20여명의 유통담당기자들과 일주일 일정으로 본사가 있는 영국으로 떠났다. 테스코의 해외투자전략을 듣는 취지였다.  항공료와 체재비 등 개인당 수백만 원씩 들어가는 비용을 영국 테스코 그룹에서 부담했다.

실제 어느 정도일까. 궁금해서 또 물었다. 경제지에서 근무하고 있는 10년차 되는 기자가 말했다. “기업체가 주관하는 해외 행사에 동행할 경우 경비 대부분을 기업체가 부담한다. 자고 먹는 것까지. 과거에 비해 진일보되긴 했지만 아직도 2차를 요구하는 일부 기자들이 있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하지만 기업체 홍보팀에서 기자들 관리나 접대는 여전히 주된 업무 가운데 하나다. 스폰서 역할 비중이 여전히 높다는 얘기다.

최근 언론계에 주류로 떠오르고 있는 스폰서 문화는 골프다. 언론사에서 국장급 이상 보직을 맡고 있는 간부들은 ‘대내 활동’보다 ‘대외 활동’ 하느라 더 바쁘다. ‘대외 활동’의 상당 부분은 기업체 임원, 정치인, 지역유지, 정부부처 관계자들과 골프 모임을 갖는 것이다.

이들이 취미 삼아 골프를 치는 건 아니다. 골프모임을 통해 서로의 이해관계를 조율한다. 그래서 골프치지 못하는 기자는 승진이 어렵다는 말까지 나온다. 비용은 누가 부담할까. 기자들이 부담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기업체 임원, 정치인, 지역유지, 정부부처 관계자들이 기자들의 스폰서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한 기자의 전언에 따르면 지역 언론사 일부 간부는 한 달에 2∼3번 씩 해외골프 여행을 나간다고 한다. 지역 언론사 경영상황이나 월급 등을 고려했을 때 가능한 일일까. 스폰서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이 간부의 사례를 일반화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스폰서 기자가 생각보다 많을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하긴 어렵다.

부산저축은행 로비스트 박태규 씨만 해도 주로 언론인들을 관리해왔다. 박태규 씨가 관리했거나 자주 통화한 언론사 간부만 수십여 명에 이른다. 기자출신인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과 신재민 전 문화부 차관 외에 드러나지 않은 스폰서 기자들이 많다는 얘기다. 이쯤 되면 언론계가 대대적인 자정운동을 벌여야 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성찰하는 목소리나 반성하는 움직임이 뚜렷이 감지되진 않는다.

허긴 스폰서 기자들만 비난할 일은 아니다. 한국 언론은 ‘스폰서 언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이 ‘공식 스폰서’인 삼성을 제대로 비판한 적이 있던가. 김두우·신재민으로 상징되는 스폰서 기자는 그런 점에서 ‘스폰서 한국 언론’의 또 다른 자화상인 셈이다.

<사진(위)=경향신문 2011년 9월22일자 1면>
<사진(중간)=한국일보 2011년 9월23일자 3면>
<사진(아래)=경향신문 2011년 10월6일자 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