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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흔적/매체기고

조중동 ‘괴담 프레임’ 올인은 한국 보수의 퇴행이다

* 이 글은 <시사IN> 219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조선·중앙·동아일보(조중동)가 ‘괴담론’을 들고 나왔다. 진부하다. 새로운 프레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괴담론’은 2008년 미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 때부터 조중동이 사용한 프레임이다. 광우병에 대한 염려, 천안함 사건 정부 발표에 대한 비판,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 대한 우려를 조중동은 모두 ‘괴담’으로 치부했다. ‘한미FTA 괴담론’ 역시 이런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언론비평지 <미디어오늘>이 10월 27일부터 11월 12일까지 전국단위 종합일간지 11곳에 실린 ‘괴담’ 관련 보도를 세어 보니 모두 142건이었다. 조선일보가 37건으로 가장 많았고, 동아일보 22건, 문화일보 14건, 중앙일보 12건이었다.

조중동이 새로울 것 없는 ‘괴담 프레임’에 올인하는 이유가 뭘까. 불안하기 때문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표를 몰아준 ‘2040’ 세대와 이들이 주축이 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영향력 확대가 두렵기 때문이다. 젊은층의 불만이 SNS를 통한 투표참여와 결합했을 때 어떤 힘을 보여줄 수 있는가. 그것은 10·26 재보선 결과가 증명하고 있다.

조중동의 ‘괴담 보도’가 ‘2040’ 세대와 SNS를 주 타깃으로 설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괴담론’을 본격화 한 조선일보 11월10일자 1면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조선일보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9일 전국의 20~40대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휴대전화 여론조사에서 우리나라 20~40대의 절반가량인 49.0%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시행되면 우리나라는 미국의 경제 식민지가 된다’는 일부의 주장을 ‘사실로 믿는다’고 대답했다.”

설문 문항과 조사방식에 문제가 많지만 조선일보 여론조사에서 최소 두 가지는 확인된다. ‘2040’ 세대를 특화한 여론조사를 실시할 만큼 ‘SNS세대’ 영향력이 커졌다는 점. 조중동이 ‘괴담’으로 생각하고 있는 주장에 대해 이들이 많은 부분 공감을 표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한미FTA 비준동의안 처리 문제는 사안 자체의 논란과는 별개로 향후 정국 주도권 싸움에서도 매우 중요한 키(Key) 포인트다. MB정부와 한나라당이 이 싸움에서 밀리면 급격한 레임덕은 물론 내년 총선까지 어렵게 된다는 얘기다. 여권이 FTA에 올인하는 이유다.

문제는 한미FTA 강행처리에 대한 여론이 우호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SNS 여론은 압도적인 한나라당 비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권 입장에서 한미FTA에 대한 SNS의 부정적 여론을 차단시키지 않으면 향후 여론지형에서 우위를 점하는 건 불가능하다. 조중동이 괴담론을 띄우고, 정치권이 이를 확산시키는 것도 여론전에서 우위를 확보하려는 전략의 일환이다.

관건은 조중동 ‘괴담 프레임’의 성공 여부다. 사견이지만 가능성이 희박한 것 같다. 조중동 ‘괴담 프레임’에 말려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이 ‘괴담’에 불과했구나 하고 반성할 ‘2040’ 세대가 있을까. 없다. 이들은 합리적 비판과 의심, 우려를 일단 괴담으로 치부하는 ‘조중동+한나라당·MB정부’ 행태를 2008년부터 목도해 왔다. ‘괴담 프레임’은 박원순 서울시장을 만들어내고 안철수에 열광하는 ‘2040’ 세대들에게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그런 점에서 조중동의 ‘괴담 프레임’은 한국 보수의 게으름과 무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난해 6·2 지방선거부터 프레임 전쟁에서 계속 실패하고 있지만 구태의연한 전략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정부 여당은 ‘천안함 북풍’과 ‘전교조 색깔론’을 끊임없이 제기했다. 조중동은 이를 확대 재생산하며 의제설정을 주도했다. 하지만 결과는 한나라당 참패·민주당 완승이었다.

지난 8월 24일 무상급식 주민투표 때도 마찬가지. 조중동은 복지병 만연·재정부담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무상급식 반대여론을 조성했다. 하지만 결과는 오세훈 사퇴로 귀결됐다. 10·26 서울시장 재보선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조중동은 선거 기간 내내 한나라당의 네거티브 선거운동을 지면으로 생중계했다. 하지만 결과는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이었다.

한 가지 특징적인 건, 선거 패배 직후 조선일보가 ‘성찰적 프레임’으로 바뀔 가능성을 조금씩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6·2 지방선거 직후 조선일보(6월3일자)는 △천안함과 선거는 별개이며 △여당의 일방독주가 선거 패배의 원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 직후인 지난 10월28일에도 조선일보는 ‘20~40대의 불안 심리와 현 정권에 대한 불만이 서울시장을 만들었다’고 진단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진단은 제대로 하고 있는데 새로운 ‘보도 프레임’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게 문제다.

한미FTA 정국에서 진부한 ‘괴담 프레임’을 다시 꺼내든 조중동에 실망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세련되지도, 새롭게 업그레이드 된 것도 아닌 2008년 ‘광우병 버전’ 그대로의 프레임을 가지고 ‘2040’ 세대의 지지와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면 한국 보수의 미래는 절망적일 수밖에 없다. 조중동의 ‘괴담 프레임’ 올인은 한국 보수의 시계가 2008년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은 채 그대로 정지돼 있다는 걸 보여준다. 한국 보수, 특히 조중동의 분발이 필요한 시기다.

<사진(위)=중앙일보 2011년 11월7일자 1면>
<사진(중간)=조선일보 2011년 11월10일자 1면>
<사진(아래)=조선일보 2011년 11월10일자 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