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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흔적/숫자로 본 한 주간

한진중공업 사태, 언론 책임이 더 크다

[숫자로 본 한 주간] ‘171일 고공농성’이 의미하는 것

이번 한 주는 ‘171’을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숫자로 뽑아 봤습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부 지도위원이 35미터 높이의 타워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항의하는 차원인데요, ‘171’은 김진숙 위원이 지난 1월부터 오늘(6월25일)까지 농성을 벌인 기간을 말합니다. 오늘은 ‘한진중공업 사태’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농성 기간이 오래된 만큼 ‘한진중공업 사태’가 발생한 지도 오래됐습니다. 지난해 12월 한진중공업이 생산직 400명의 희망퇴직을 노조에 통보하고, 지난 2월 희망퇴직을 거부한 170명을 정리해고하면서 ‘한진중공업 사태’는 시작됐습니다.

정리해고 다음날 주주들에게 174억원 배당한 한진중공업

회사 쪽은 ‘긴박한 경영상의 위기 해소 및 수주 경쟁력 확보’를 명분으로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한진중공업은 정리해고를 통보한 다음날 주주들에게 174억 원을 배당했습니다. 경영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정리해고를 했다는 설명과는 배치되는 것이죠. 김황식 국무총리가 “배당금을 나눠 가지는 회사에서 정리해고를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을 정도였습니다.

6개월 동안 상황이 계속 악화됐는데, 결국 경영진이 사태해결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노조가 정리해고에 반발해 공장 점거를 하니까 한진중공업이 직장 폐쇄로 맞섰는데요 이후 제대로 된 대화가 없었습니다. 일각에서 조남호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이 사태 해결을 위한 노력은 하지 않고 공권력 투입만 기대를 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 이유입니다.

조남호 회장은 애초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가 이를 번복했는데요, 이런 태도가 청문회 개최에 미온적이었던 한나라당이 입장을 바꾸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동안 침묵하던 정치권이 한진중공업 사태해결에 나서고 있다는 겁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지난 22일 전체회의에서 오는 29일 ‘한진중공업 문제 해결을 위한 청문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환노위는 29일 청문회를 열되 도피성 출국 의혹을 사고 있는 조남호 회장이 불출석할 경우 귀국 이후 다시 청문회 일정을 잡기로 했습니다. 국회가 일정을 변경하면서까지 증인을 부르기로 한 것은 이례적입니다. 그만큼 여론이 좋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도 ‘무시한’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

하지만 재계의 반발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를 비롯해 재계는 “국회가 경영진을 압박하기 위해 국회 출석을 요청하는 것은 월권”이라면서 “부적절한 개입”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한마디로 왜 정치권이 사기업의 일에 개입하느냐는 겁니다. 하지만 한진중공업 사태가 청문회까지 확대된 데에는 경영진에 상당부분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정리해고 명분도 타당하지 못했고, 노조와 사태해결을 위해 제대로 된 대화도 부족했습니다. 조남호 회장은 국회에 출석하겠다고 했다가 이것도 번복을 했습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조 회장에게 수 십차례 대화를 요구했지만, 만나기는커녕 전화 연결조차 거부했다”고 밝혔습니다. 너무 무대응으로 일관한 것 아니냐는 것이죠. 조남호 회장이 지금이라도 국회에 출석해 책임 있는 경영자로서의 태도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사실 한진중공업 사태는 트위터를 통해 전국에서 모인 시민 700여명이 ‘희망버스’를 타고 한진중공업을 방문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정리해고가 발생한 지 몇 달이 지났고, 김진숙 위원이 타워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었지만 언론은 거의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대체 언론은 지금까지 무엇을 했나

경영진이 사태해결에 미온적이었던 것처럼 언론 역시 제 역할을 못한 측면이 많습니다. 국회 청문회가 예정된 만큼 지금이라도 한진중공업 경영진은 물론이고 정치권과 언론이 뜻을 모아 합리적인 해결책 마련을 위해 노력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진(위)=한겨레 6월13일자 1면>
<사진(아래)=경향신문 6월25일자 1면>

※ 이 글은 2011년 6월25일 오전 6시10분부터 7시 사이에 CBS FM(98.1MHz) ‘좋은 아침 최정원입니다’에서 방송된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