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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흔적/숫자로 본 한 주간

KBS파문과 한국 언론의 ‘동업자 의식’

[숫자로 본 한 주간] ‘1000원’과 기자의 윤리문제를 생각한다

이번 한 주는 ‘1000’을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숫자로 뽑아 봤습니다.

이번 한 주 최대 핫이슈 가운데 하나가 KBS수신료 인상 문제였습니다. 한나라당이 현행 2500원인 수신료를 3500원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했죠. 민주당 의원들이 반대하면서 6월 임시국회 처리가 무산됐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오늘은 KBS수신료 ‘1000원 인상’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 얘기해 보고자 합니다.

하지만 ‘1000원 인상’ 자체보다는 도청 파문이 더 주목을 받았습니다. ‘민주당 대표실 도청 의혹’과 관련해 민주당과 여권 관계자 등에 의해 KBS 연루가능성이 계속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일단 수사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도청 파문 못지 않게 심각한 기자의 취재윤리 문제

하지만 KBS가, 다른 문제도 아니고, 자신들과 밀접한 이해관계가 있는 수신료 문제를 두고 이런 논란에 휩싸였다는 자체만으로도 반성과 성찰의 여지를 남기고 있습니다. KBS는 도청 의혹을 부인했지만, 언론계와 정치권에서는 계속해서 진실규명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실 도청문제 못지 않게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게 KBS 기자들의 취재윤리 문제입니다. 수신료 인상에 반대하는 민주당 의원들을 KBS 기자들이 지나치게 압박했다는 겁니다. KBS는 취재기자 5~6명과 방송 카메라 6대를 국회 문방위 회의장 등에 배치를 했는데, 취재라기보다는 민주당 의원들 ‘겁박용’이라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KBS가 언론 본연의 자세보다는 ‘이해관계자’로서 처신을 한 것 아니냐는 비난이 제기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민주당 의원들이 국회 문방위 회의실을 점거한 직후 문방위원장인 한나라당 전재희 의원이 KBS기자에게 “(민주당 의원들) 설득 다 했다면서 어떻게 설득을 했기에 이런 것이냐”라고 말했는데 이 발언이 특히 논란을 빚었습니다. 이 말은 KBS가 한나라당과 수신료 인상 문제를 놓고 물밑에서 협의를 해왔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입니다. 일각에선 이런 KBS 처신을 두고 ‘관계기관대책회의’ 멤버를 자처했다는 냉소적 평가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도청 파문, ‘KBS vs 민주당’ 대결구도는 곤란하다

일부 KBS 기자들의 부적절한 처신도 논란을 더 부채질 했습니다. KBS 한 기자는 인상안 처리를 막은 민주당 의원에게 “다음 총선에서 봅시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사실상 ‘협박성 발언’이라는 비난과 함께 KBS가 최소한의 상식마저 팽개쳤다는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일각에선 이런 행태를 보인 KBS가 어떻게 수 천 억 원의 국민부담을 전제로 하는 수신료 인상을 기대했는지 모르겠다며 혹평을 하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수신료 1000원이 오르면 국민 부담이 한 해 2200억 원 늘어나게 됩니다.

KBS 기자들은 정당한 취재행위였다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KBS 정치외교부 국회 출입 기자들이 6월30일 성명을 발표했는데 “정당한 취재활동을 폄하한데 대해 깊은 우려를 감출 수 없다”며 민주당의 공개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이들은 “다른 언론사 기자들이 질문하면 정상적인 질문이고 KBS 기자가 물어 보면 겁박성 질문이냐”며 반박하기도 했는데요, 민주당과 정면대결을 예고한 상황입니다.

상황을 보면 ‘KBS vs 민주당’ 대결구도로 가는 양상인데요,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도청의혹’은 수사결과를 지켜봐야 하지만, 적어도 ‘KBS기자들의 처신’과 관련해서는 KBS가 반성할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수신료 인상의 전제조건은 과연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느냐가 핵심입니다. 그런데 이번 ‘수신료 파문’에서 이 문제는 쏙 빠졌습니다. 대신 ‘도청파문’과 ‘기자들의 처신’ 문제가 그 자리를 차지했죠. KBS가 반성할 점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한국 기자들의 ‘동업자 의식’ … 강용석 의원 비판할 자격 있나

한국 기자들의 ‘동업자 의식’도 비판받아야 합니다. 파문이 이렇게 확산이 됐는데도 방송뉴스는 계속 이 문제를 소극적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도청 의혹’은 파문이 불거진 며칠이 지난 후에 양측의 공방을 전하는 수준으로 보도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KBS 기자들 행태’의 정당성을 다룬 뉴스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성희롱 파문을 일으킨 강용석 의원의 의원직 제명안이 이번에 무산됐죠. 이 소식을 전하면서 언론이 국회의원들의 동업자 의식을 비판했는데, 그 비판은 언론과 기자들에게 먼저 적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진(위)=경향신문 6월29일자 1면>
<사진(중간)=한겨레 6월29일자 3면>
<사진(아래)=경향신문 6월29일자 2면>

※ 이 글은 2011년 7월2일 오전 6시10분부터 7시 사이에 CBS FM(98.1MHz) ‘좋은 아침 최정원입니다’에서 방송된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