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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흔적/숫자로 본 한 주간

한국IT 위기, 주범은 대기업과 정부 그리고 언론이다

[숫자로 본 한 주간] ‘125억 달러’ 그리고 한국 IT의 미래

이번 한 주는 ‘125억’을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숫자로 뽑아 봤습니다.

세계 최대 인터넷 검색 업체인 구글이 지난 15일 휴대전화 제조사인 모토로라 모빌리티를 인수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인수금액이 현금 125억 달러(한화로 약 13조 5,125억)인데요, 오늘은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금액 125억 달러와 한국 IT의 미래에 대해서 얘기해 보고자 합니다.

구글은 지금까지 스마트폰과 태블릿 PC의 기본 운영체제(OS)인 안드로이드를 개발해 전 세계 휴대용기기 제조업체에 무료로 제공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젠 소프트웨어 개발에만 국한하지 않고 직접 하드웨어 시장에까지 뛰어들었습니다. 모토로라는 세계 최초로 상업용 휴대전화를 만든 저력을 가지고 있고, 17000여건에 달하는 무선통신 관련 특허도 가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는 스마트폰 시장에 상당한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보입니다.

하드웨어에만 집중한 국내 대기업들의 자업자득

국내 기업에 미치는 영향도 그만큼 클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동안 한국의 대기업들은 소프트웨어보다는 하드웨어 중심의 개발전략에 치중해 왔습니다. 뛰어난 제조기술을 바탕으로 스마트폰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냈죠. 특히 삼성전자는 애플에 이어 스마트폰 시장에서 세계 2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건, 구글의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삼성전자 제조기술에 의지해왔던 구글이 모토로라를 인수하면서 직접 휴대전화 생산이 가능해졌습니다. 삼성의 스마트폰 점유율이 지금보다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죠.

소프트웨어를 등한시 해 온 것에 대한 부메랑이라는 지적도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입니다. 아마 국내 대기업들이 소프트웨어를 홀대해 왔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많은 언론과 전문가들이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 발표 이후 한국 IT산업의 미래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세계 주요 산업경쟁력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쪽으로 옮겨갔는데 국내 기업들이 이런 흐름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등한시 했다는 거죠.

문제는 지금 언론이 제기하는 걱정과 우려, 이미 예전부터 제기돼 온 문제라는 거죠. 이른바 ‘구글 쿠데타’ 이후 많은 언론이 지금 국내 대기업들의 소프트웨어 홀대를 집중 거론하고 있지만 ‘뒷북 성격’이 짙습니다. IT전문가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국내 대기업들이 하드웨어에만 집중을 하고 소프트웨어를 홀대하는 것에 우려를 표명해 왔기 때문입니다.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대표적인데요, 안 교수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내 대기업들이 빵집, 밥집까지 계열사로 거느리면서도 소프트웨어 회사를 계열사로 둔 곳은 한 곳도 없다”고 질타했습니다. 안 교수를 비롯해 많은 전문가들이 수년 전부터 이런 지적을 해왔지만 당시 대기업은 물론이고 정부와 언론, 어느 누구도 이런 우려에 제대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대기업 뿐만 아니라 정부와 언론도 소프트웨어 중요성 거론 안했다

사실 지금 위기와 우려는 소프트웨어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하드웨어에만 치중한 국내 대기업들의 자업자득 성격이 강합니다. 그런데 대기업 뿐만 아니라 정부와 언론 책임도 상당히 큽니다. 소프트웨어 업체나 인력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은 90년 초반 전후를 제외하곤 거의 없었습니다. 대기업들이 중소 소프트웨어 업체들의 오랜 연구결과를 부당하게 침해했을 때도 정부는 제대로 감시하지 않았습니다. 언론 역시 이런 문제들이 불거졌을 때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파헤치고 대안을 고민하기보다는 성장이 우선이라는 쪽에 비중을 실었습니다. 대기업들의 ‘편’을 들었다는 얘기입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소프트웨어 인력을 확보하라’고 지시하는 등 뒤늦게 소프트웨어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건 긍정적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우려되는 측면이 많습니다. 지금까지 대기업들은 자체적으로 ‘소프트웨어 인력’을 키우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소프트웨어 인력을 확보한다’는 얘기는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 직원들을 빼내온다는 걸 의미합니다. 소프트웨어 업체 입장에선 장시간 투자해서 키운 직원들을 삼성과 같은 대기업에 고스란히 뺏기게 된다는 얘기죠.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지금 대기업들이 외치고 있는 ‘소프트웨어 경쟁력 강화’가 자칫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들을 초토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지금 대기업들이 고민해야 하는 건, 급한 불을 끄는 임시방편적인 대책이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고 자체적인 소프트웨어 인력을 키우는 일입니다. 아울러 현재 위기를 초래한 원인에 대해서도 반성과 성찰이 필요합니다. 이 반성과 성찰은 정부와 언론도 예외가 아닙니다.

<사진(위)=한겨레 2011년 8월17일자 2면>
<사진(아래)=조선일보 2011년 8월17일자 3면>

※ 이 글은 2011년 8월20일 오전 6시10분부터 7시 사이에 CBS FM(98.1MHz) ‘좋은 아침 최정원입니다’에서 방송된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