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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흔적/숫자로 본 한 주간

강남 수해? 강남 서민들의 수해!

[숫자로 본 한 주간] 서초구 특별재난지역을 둘러싼 논란

이번 한 주는 ‘95억’을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숫자로 뽑아 봤습니다.

정부가 폭우 피해를 입은 경기 광주시 동두천시 등 9곳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특별재난지역은 피해규모와 기초자치단체의 재정 규모에 따라 지정이 됩니다. 다른 곳은 별 문제가 없는데 서울 서초구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서울 서초구는 재정 규모가 850억 원 이상이기 때문에 피해액이 95억 원 이상이 돼야 특별재난지역으로 분류가 됩니다. 오늘은 서초구의 특별재난지역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 얘기해 보고자 합니다.

강남 수해에 대한 우리 사회의 ‘엇갈린’ 시선

이번 폭우로 서울 서초구 피해가 상당히 컸습니다. 서울 서초구는 이번 폭우로 1000억 원이 넘는 재산피해가 발생했다며 정부가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해줄 것을 요청한 상태입니다. 정부는 오는 17일 재난지역을 최종 확정해 통보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일부 서초구민들이 특별재난지역 지정에 반대하고 있는 데다, 일각에선 ‘부자동네’에 굳이 정부 지원금을 보내야 하냐면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어 논란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일부 주민들이 집값 하락 때문에 반대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반대를 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그 이유가 조금씩 다릅니다. 그런데 이 같은 차이점이 이번 강남지역 집중 호우 피해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복잡하고 미묘한 시선을 파악해 볼 수가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강남 수해’를 바라보는 시각이 크게 다르다는 겁니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되면 공공시설을 복구하는 비용의 75~90%를 중앙정부가 지원합니다. 그만큼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거죠. 하지만 일부 주민들은 동네 이미지가 나빠지고 집값에도 영향을 준다며 반대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은 집주인들의 시각이 많이 반영돼 있습니다.

집이 없는 ‘강남 주민들’의 생각은 어떨까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서초구청과 집을 가진 사람들에겐 득이 될지 몰라도 ‘강남서민들’에겐 별 혜택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단순 침수 피해를 입은 경우 주민들이 보상받는 돈은 100만원입니다. 그런데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되더라도 보상금을 더 받을 수 없습니다. 집주인은 취득세와 자동차 등록세를 감면받지만, 세입자들에게는 이마저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특별재난지역 지정이 ‘강남 서민들’과는 상관없는 얘기라는 겁니다.

강남에 집중된 수해를 곱지 않게 보는 ‘제3의 시선’도 있습니다. 이들은 서울 서초구는 재정자립도가 79.8%로 전국에서 최고 부자동네라는 점을 주목합니다. 자체 예산으로 충분히 복구가 가능하지 않냐는 의견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의 이면에는 ‘강남=부자’라는 인식이 반영돼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폭우로 인한 피해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개포동 구룡마을 판자촌과 방배동 전원마을 반지하방 세입자들입니다. 대치동 아파트와 건물 지하에서 숨진 사람도 청소노동자들이었습니다. ‘강남서민’들이 피해를 많이 당했다는 얘기입니다.

극소수 ‘강남 사람들’에게 갖고 있던 상대적 박탈감이 왜곡된 형태로 표출이 된 셈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같은 논란이 정부의 복지나 분배정책에 얼마나 문제가 많은 지 역설적으로 드러냈다고 보고 있습니다.

특별재난지역보다 더 중요한 ‘주민을 위한 배려’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이 되면 정부의 막대한 지원금이 들어오는데도 집 주인은 집값 하락 때문에 반대하고, ‘강남 서민’들은 별 혜택이 없다며 시큰둥한 반응입니다. ‘비강남지역 주민들’은 “부자동네에 웬 세금?”이냐며 부정적이죠. 이런 반응들은 세금이나 정부 지원금이 주민들에게 제대로 분배가 되지 않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부나 서초구청 등 공공기관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팽배해 있다는 얘기죠.

피해주민들이 좌절감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같은 경우 무허가 판자촌인 탓에 다른 지역보다 침수 피해가 컸지만 이 지역은 관 주도의 복구 작업에서 소외됐습니다. 서초구도 고급 주택가 지역 복구에만 신경 쓰고 비닐하우스 가옥 등 빈민촌 피해지역은 상대적으로 신경을 쓰지 않아서 논란을 빚었습니다.

때문에 저는 특별재난지역 지정보다 더 시급한 일이 주민들의 불신을 해소할 수 있는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주민들을 배려하는 기초자치단체들이 아직 잘 보이지가 않는다는 건데요 ‘피해주민들’을 두 번 울리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사진(위)=경향신문 2011년 7월28일자 1면>
<사진(아래)=경향신문 2011년 8월3일자 11면>

※ 이 글은 2011년 8월6일 오전 6시10분부터 7시 사이에 CBS FM(98.1MHz) ‘좋은 아침 최정원입니다’에서 방송된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