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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흔적/숫자로 본 한 주간

25.7%가 아니라 74.3%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

[숫자로 본 한 주간]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산이 의미하는 것

이번 한 주는 ‘74.3’을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숫자로 뽑아 봤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시장직을 걸고 추진한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무산됐습니다. 유권자 838만7278명 가운데 215만7744명이 투표해 25.7%의 투표율을 기록했는데요, 74.3은 25.7%의 반대편 즉 이번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유권자 비율을 말합니다. 오늘은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불참한 유권자 74.3%의 의미에 대해서 얘기해 보고자 합니다.

25.7%의 투표율을 둘러싸고 여야가 엇갈리는 해석을 내놓았죠.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내용상으로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승리”라고 주장했고, 민주당은 “서울시민의 뜻을 무시한 궤변”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사실 25.7% 투표율을 해석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20% 미만으로 나왔거나, 아예 30%를 넘었다면 해석도 명확해질 수 있지만 25.7%는 상당히 애매한 수치이기 때문입니다.

투표율 25.7%를 둘러싼 논란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일각에선 투표율을 오세훈 시장에 대한 지지로 곧바로 연결해도 되는 것이 온당한 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유효투표율(33.3%) 미달로 개표를 하지 못했고 따라서 민심을 정확히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번 주민투표가 ‘특수’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투표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오세훈 시장에 대한 지지로 해석될 만큼 투표율이 가진 의미가 컸다는 얘기입니다. 그런 점에서 투표율을 오 시장에 대한 ‘지지’로 해석해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25.7% 투표율에 대한 해석을 두고 여러 논란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지만 상당히 애매한 수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분명한 건 있습니다. 주민투표가 무산됐다는 건, 서울 시민들이 오세훈 시장의 단계적 무상급식을 외면했다는 겁니다. 유효투표율에 미달했다는 사실 자체가 오 시장 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반대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사실상 오세훈 시장의 승리”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민심을 정확히 읽지 못한 ‘아전인수’에 가깝습니다. 이번 주민투표 무산은 야당이 주장해온 보편적 무상급식을 서울시민들이 새로운 정책 방향으로 선택했다는 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번 주민투표 무산에서 또 한 가지 확인할 수 있었던 건,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 또한 만만치 않았다는 점입니다. 비록 무산되긴 했지만 25.7% 투표율은 지난해 6·2지방선거 때 오세훈 시장의 득표율(25.4%)보다 0.3% 많은 수치입니다. 야당의 집중적인 투표거부 운동에도 25.7% 투표율을 기록했다는 건, 보수세력의 일정한 결집력을 확인했다는 의미도 됩니다. 향후 보궐선거나 내년 총선에서 서울시민 유권자의 25% 정도는 한나라당에 대해 ‘적극적인 지지’를 보낼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인데요, 이 수치는 결코 적은 비율이 아닙니다.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74.3%의 민심을 주목해야 한다

이번 주민투표 무산을 야당의 ‘완벽한 승리’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25.7% 투표율을 둘러싼 논란도 그래서 이어지고 있는 건데요, 저는 그런 점 때문에 투표율보다 투표하지 않은 74.3%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무상급식 문제에선 유권자들이 야당의 손을 들어준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의료나 교육 등 다른 분야에 대한 전면 무상복지까지 유권자들이 동의한 건 아니라고 봅니다.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74.3%의 ‘민심’을 확대해석하는 건 경계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민주당이 지나치게 ‘승리’에 도취해선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민주당의 확대해석도 경계해야 하지만 한나라당도 태도변화를 요구받고 있습니다. 이번에 한나라당이 25% 안팎의 보수세력 결집력을 확인했지만, 이 정도 지지만으로는 향후 재보선과 총선은 물론 대선에서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74.3% 유권자들 가운데 지지층을 끌어 모아야 한다는 얘긴데요, ‘복지’에 대한 기존 한나라당 입장만을 고집할 경우 지지층 확대는 쉽지 않습니다. 민심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통해 전향적인 정책변화가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정부와 한나라당, ‘전향적인 정책 수정’ 없다면 …

사실 투표율 해석을 두고 논란이 벌어졌지만, 이번 주민투표에서 확인된 민심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현재 우리 사회가 처한 양극화와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선 ‘어떤 식으로든’ 복지 확대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앞으로 ‘보편적 복지 의제’를 어떻게 생산적으로 확산시켜 나갈 것인가가 정치권의 주된 과제가 돼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런 점에서 그동안 불필요한 ‘복지논쟁’을 촉발시켰던 청와대와 정부 또한 상당한 태도변화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사진(위)=한겨레 2011년 8월25일자 1면>
<사진(중간)=한국일보 2011년 8월25일자 3면>
<사진(아래)=중앙일보 2011년 8월25일자 사설>

※ 이 글은 2011년 8월27일 오전 6시10분부터 7시 사이에 CBS FM(98.1MHz) ‘좋은 아침 최정원입니다’에서 방송된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