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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흔적/여성신문

성폭행 사건에 대한 우리의 ‘이중적 태도’

[미디어곰의 세상읽기] 한국이 ‘성희롱․성폭행 공화국’ 오명에서 벗어나려면

요즘 이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 사회는 여성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사회인가. 이 질문에 대한 제 대답은 ‘아니다’로 귀결됩니다. 사례가 너무 많아 일일이 거론할 순 없지만 최근 경기도 동두천에서 발생한 주한미군 성폭행 사건만 봐도 그렇습니다.

성폭행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이후 주한미군은 이례적으로 ‘유감’ ‘협조’라는 입장을 발표하면서 반미감정 차단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 문제에 적극 대처해야 할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 별다른 조처를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동두천에서 발생한 성폭행 사건은 죄질로 따졌을 때 흉악범죄에 속합니다. 고시텔에 잠입해 10대 소녀를 4시간 동안 성폭행하면서 변태적인 행위까지 서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미국에서 미성년자를 상대로 성폭행을 하고 고문에 가까운 변태적 성행위를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온 사회가 들끓었을 테고, 언론과 시민단체들이 정부로 하여금 재발방지와 대책마련을 촉구했을 겁니다.

주한미군 범죄에 둔감한 한국 정부와 언론

그런데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요. 조용합니다. 조용해도 너무 조용합니다. 혹자는 정부의 미온적 대처와 언론의 소극적 보도를 지적합니다. 맞습니다. 일리 있는 지적입니다. 정부는 이번 주한미군 성폭행 사건과 관련해 미국 정부의 확실한 사과를 요구하면서 동시에 불평등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소파) 개정에 나서야 합니다. 상식을 가진 정부라면 그렇게 하는 게 온당한 태도지요.

그런데 ‘우리’ 정부는 미온적입니다. 그냥 미온적인 게 아니라 너무나도 미온적입니다. 미국 정부의 사과도 요구하지 않고, 불평등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소파) 개정에 나설 의지도 없습니다. 재발방지는 고사하고 피해 학생을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도 알려진 게 없는 상황입니다. 10대 여학생이 ‘다른 나라’ 군인에 의해 고문에 가까운 변태적 성폭행을 당했는데도 ‘우리’ 정부의 태도를 보면 방관자에 가깝습니다.

언론 역시 정부와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직후 관련 내용이 언론을 통해 보도됐지만 대부분 ‘사건 사고’ 중심의 단순 보도에 그쳤습니다. 주한미군에 의한 성폭행 사건이 계속 발생하는 ‘구조적인 이유’와 한국 정부의 미온적 태도 등을 질타할 법도 한데 언론은 ‘구조적 이유’는 외면하고, 한국 정부의 미온적 태도에 대한 비판은 생략한 채 슬쩍 넘어갔습니다. 일부 보수언론은 오히려 이번 사건에 대한 주한미군의 ‘적극 대응’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이번 사건을 대하는 정부와 언론의 태도에서 피해학생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와 재발방지 대책은 찾아볼 수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여성 인권’에 대한 한국 정부와 언론의 수준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셈입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이 정도로 ‘수준 이하’일 거라곤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는 정부와 언론이 지금과 같은 태도를 보인다면 한국 사회에서 여성인권 신장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한미군의 성폭행 못지않게 한국 정부의 무대응과 언론의 무관심을 심각하게 바라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성폭행 사건에 대한 우리의 이중적 태도

그런데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더군요. 성폭행․성희롱사건에 미온적인 게 과연 ‘우리’ 정부와 언론뿐일까 하는 생각.

정부나 언론 못지않게 ‘우리 자신’도 성폭행 사건에 관대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건 아닐까. 성폭행 사건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한쪽에선 성을 사고파는 문화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러면서 점점 무감각해지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사실 성희롱이나 성폭행 사건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은 관대한 편입니다. 주한미군 성폭행 사건처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사안에 대해선 많은 사람들이 ‘가해자 처벌’과 정부의 적극적인 대처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그런 큰 이슈가 아니라 우리네 일상에서 발생하는 성희롱․성폭력 사건이라면?

학교를 한번 볼까요. 교사가 학생들을 상대로, 교장․교감이 여교사를 상대로, 교수가 제자를 상대로 성희롱과 성폭행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나라가 ‘우리 사회’입니다. 직장상사가 부하 여직원을 상대로 성희롱․성폭행 하는 사건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곳도 한국입니다. 가출 여중생 등을 상대로 성을 사려는 남성들이 줄을 잇고, 각종 성매매 관련 산업들이 번창하는 곳 역시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입니다. 지하철 타보셨나요.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나타난 풍경만을 전제로 한다면 한국은 ‘성희롱 공화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주변에서 발생하는 성희롱․성폭행 사건 … 우리는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나

그래서 이런 질문을 던져 봅니다. 자신의 주변에서 성희롱․성폭행 사건이 발생할 때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직장에서, 회식자리에서, 친구들이나 동문들과의 모임에서, 지인들과의 자리에서 성희롱․성폭력 사건이 일어난다면? 만약 가해자가 ‘나’와 아는 사람 혹은 여러 가지 사회적인 관계망 속에 얽혀 있는 사람이라면? 그때도 우린 원칙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을까요.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여러분의 인사고과를 담당하는 간부가,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물론 재발방지 등의 조치 없이 사태를 조용히 넘기려 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태도를 보이겠습니까. 부조리에 당당히 맞서겠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최근까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고대 의대생 성추행 사건만 해도 그렇습니다. 언론의 집중조명과 여론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고려대 측의 초기 대응은 ‘반인권적’이었습니다. 피해자 인권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고대 측의 미온적인 조치도 문제였지만, 당시 저를 씁쓸하게 만들었던 건 고려대 의대생들이 보인 ‘조용한’ 반응이었습니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들더군요. 물론 내부 상황이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당시 고려대 의대생들이 보인 반응과 고려대 의대 밖 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온도차가 확연히 달랐습니다.

만약 저를 비롯해서 여러분이 ‘고려대 의대 밖 사람들’이 아니라 고려대 의대생들이었다면 어떤 입장을 보였을까요. 고려대와 의대 측의 미온적 조치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면서 시정을 요구할 수 있었을까요. 솔직히 저는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 ‘여성인권’이 신장되려면 일상적인 실천이 중요하다

앞에서 언급한 주한미군 성폭행 사건으로 다시 돌아가 보죠. 우리 정부와 언론이 주한미군에 성폭행 당한 10대 여학생의 ‘인권’에 무관심한 이유가 뭘까요.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일만한 인권의식과 감수성이 그만큼 부족하다는 걸 보여줍니다. 그리고 인권침해보다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현실적인 요소들이 많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일상적인 영역에서 발생하는 성희롱․성폭행 사건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나를 제가 주목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나’와 관계없는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원칙을 얘기하지만, 정작 가해자가 ‘나’와 아는 사람이거나 사회적인 관계망 속에 얽혀 있는 사람이라면? 우린 전혀 다른 태도를 취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 점에서 주한미군 성폭행 사건에 미온적인 정부와 언론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 자신의 자화상인지도 모릅니다. 원칙적인 대응보다는 ‘한미 동맹’을 먼저 생각하는 정부․언론의 태도나, ‘사회적인 네트워크’에 얽혀 주변에서 발생하는 성희롱․성폭력에 미온적인 우리 자신의 모습이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진 않는다는 말입니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써 성폭행 사건에 미온적인 정부의 태도를 비판하는 것도 필요하고, 주한미군 성범죄 근절을 위한 근본대책을 요구하는 것도 필요하죠. 그런데 그것 못지않게 ‘성희롱․성폭행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이중적 태도’를 성찰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 이중성을 극복해 나갈 때 주한미군 성범죄 근절을 요구하는 ‘우리’의 목소리가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법이니까요. 제도적인 변화만큼 중요한 게 일상의 부조리를 개선하는 일입니다. 저부터 그걸 실천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진(위)=한겨레 2011년 9월30일 3면>
<사진(두번째)=동아일보 2011년 10월7일자 12면>
<사진(세번째)=세계일보 2011년 10월14일자 1면>
<사진(마지막)=한국일보 2011년 9월28일자 8면>

이 글은 여성신문 온라인판(2011.10.17)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