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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흔적/여성신문

‘장애인 목욕’, 정동영-나경원 의원의 같은 점과 다른 점

장애인을 공개적으로 목욕시키는 건 봉사활동이 아니다
[미디어곰의 세상보기] 선거기간 정치인의 ‘장애인 봉사활동’ 거부해야

“(알몸으로 목욕할 수밖에 없었던) 장애인이 자신의 가족이었다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가벗으라고 했겠느냐. 장애인은 정치인의 인기몰이에 동원되는 소품이 아니다.”

성명서 가운데 일부를 인용했다. 질문 하나. 떠오르는 정치인이 있다면? 열에 아홉은 한나라당 나경원 최고위원이라고 답할 것이다. 장애아동 목욕과 관련해 최근 구설에 오른 정치인이 나경원 의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틀렸다. 정답은 정동영 민주당 의원이다.

언급한 성명은 지난 2004년에 발표됐다.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과 정화원(시각장애인) 당시 17대 총선 비례대표 당선자가 낸 공동성명 가운데 일부다. 누구를 향한 성명인가. 정동영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을 타깃으로 삼았다.

장애인을 독립적인 인격체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

당시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내용이라 지금도 기억하는 분들이 많다. 정확히 2004년 5월 2일이었다. 당시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경기 일산의 한 복지타운을 방문했고, 그곳에서 30세 지체장애인을 알몸상태로 목욕시켰다. 그것도 취재진 앞에서 공개적으로. 비장애인들의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고스란히 드러낸 이 장면은 많은 장애인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유력 정치인의 소수자 인권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인지를 단적으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 의장보다 당시 현장에 있던 최성 당선자(경기 고양 덕양을)의 발언이 훨씬 더 심각했다. 지금도 ‘장애인 알몸목욕’ 하면, 나는 정동영이라는 이름보다 최성이라는 이름이 먼저 떠오른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정확히 드러냈기 때문이다. ‘공개적으로 강제목욕을 당하던’ 30세 지체장애인에게 당시 최성 당선자는 이렇게 얘기 했다. “제일 유명한 분한테 너 머리 감는다.”

‘제일 유명한 분’이 공개적으로 목욕을 시켜주니 감사한 마음이라도 가져야 한다는 걸까. 30세 성인에게 대놓고 반말을 하는 ‘저급한 인식’은 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장애인은 비장애인이 발가벗고 공개적으로 목욕시켜도 된다는 인식. 장애인은 연령을 불문하고 ‘어린아이’ 취급하려는 사고방식. 둘 다 구제불능에 가깝다. 이들은 장애인도 성욕을 가지고 있다는 ‘상식’을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2004년 ‘정동영 사태’와 2011년 ‘나경원 사태’ - 비슷한 점 

2011년 9월. ‘제2의 정동영 사태’가 터졌다. 이번엔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로 확정된 나경원 최고위원이 주인공이다. 나 위원은 9월26일 중증장애아동 시설인 서울시 용산구 후암동 가브리엘의 집을 찾아 봉사활동에 나섰다가 인권침해 논란에 휩싸였다. 거동이 불편한 12세 남자아이를 ‘공개적으로’ 발가벗긴 채 목욕을 시켰기 때문이다.

이벤트 정치를 위해 유력 정치인이 장애인의 인권을 무시했다는 점에서 두 사건은 닮았다. 해명도 묘하게 일치한다. 지난 2004년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의 항의방문을 받은 열린우리당은 “보도진을 통제하지 못해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런데 최근 논란을 빚은 나경원 최고위원 측도 비슷한 해명을 했다. “기자들이 통제가 안 된 상태에서 들어온 것이다.”

통제 못한 보도진과, 통제 못한 기자들이 ‘문제의 공간’에 들어왔다면 정중히 설득해서 기자들을 내보내는 게 책임 있는 정치인의 태도 아닐까. 기자들을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후 상황에 대해서 나는 모르겠고, 언론 잘못이다? 무책임하고 비겁한 변명이다.

나 의원은 9월28일 YTN FM과의 인터뷰에서 “장애인의 인권에 대해서 저만큼 생각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런 논란이 벌어져 안타깝다”고 얘기했다. 나야말로 ‘장애인의 인권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실 분이 왜 그런 논란을 자초했는지’ 묻고 싶은 심정이다.

2004년 ‘정동영 사태’와 2011년 ‘나경원 사태’ - 다른 점

2011년 이른바 ‘나경원 사태’에서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건, 정치인 이벤트 행사에 언론이 부화뇌동하진 않았다는 점이다. 2004년 당시 기자들은, 발가벗긴 상태로 누워있는 장애인을 아니 ‘그’를 목욕시키는 정치인 정동영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바빴다. 주인공은 장애인이 아니라 정동영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어느 누구도 그 상황의 폭력성을 주목하지 않았다. 장애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에 정치인과 언론이 ‘공범’ 역할을 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다르다. 나경원 의원이 ‘기자들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지만 당시 현장에 있었던 기자들은 다르게 증언한다.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기자들은 현장에서 나 최고위원 측으로부터 비공개 요청을 받은 바 없고 △오히려 일부 카메라 기자들은 “문제될 소지가 있다”며 이의를 제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2004년 당시 언론보도와 비교했을 때 이번에 ‘알몸 상태의 장애인을 목욕시키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도한 언론은 없었다. 그것이 갖는 문제점을 최소한 인지하고 있었고, 그만큼 언론이 신중을 기했다는 얘기다. 정치인은 2004년이나 지금이나 장애인 인권에 대한 의식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언론은 조금이나마 진일보한 면이 있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을 준다.

하지만 언론에 대한 아쉬움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장애인을 목욕시키는 모습’을 내보내지 않은 점은 평가할 부분이지만, 나경원 의원 행태를 비판하는 보도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을 제외하곤 철저한 침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4년 당시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에게 적용시킨 비판 잣대와는 너무 현격한 차이가 난다.

그러고 보니 당시 정동영과 열린우리당을 향해 강도 높은 비난을 가했던 한나라당도 공식사과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언론의 침묵과 한나라당의 침묵 - 참 묘하게 닮았다.

변하지 않는 장애인 관련 시설 관계자들의 ‘인권의식’이 안타깝다

정치인이 이벤트를 위해 장애인 인권을 무시하는 것보다 그리고 언론이 이에 부화뇌동해 장애인을 두 번 죽이는 것보다 더 안타까운 게 있다. 장애인 관련 시설 관계자들의 ‘반인권의식’이다.

지난 2004년 정동영 의장이 경기 일산의 한 복지타운을 방문해서 지체장애인을 알몸상태로 목욕시킬 때 당시 복지타운 관계자들은 정 의장을 도우기에 바빴다. 언론에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연출하는데 적극 노력했다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장애인 인권보호를 위해 문제제기를 해야 할 당사자들이 장애인 인권을 무시하는데 ‘공범’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나경원 의원이 12세 남자아이를 발가벗긴 채 목욕시킨 욕실에 반사판과 조명장비 등 전문 촬영장비가 설치돼 있었는데, 가브리엘의 집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평소 아이들 사진을 찍어주는 전문 사진가가 이날 촬영을 위해 설치한 것이다.”

안타깝다. 장애아동 인권보호를 위해 촬영을 막아야 할 당사자들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저렇게 얘기를 하고 있는 현실이. 정치인과 언론의 의식변화 못지않게 장애인 관련 단체 관계자들의 인권교육이 더 절실하다고 생각한 것도 이 때문이다.

여성단체 관계자들이 여성인권에 무지하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 사회에서 여성 인권이 신장되길 기대하는 건 지난한 일이 될 것이다. 장애인 인권도 마찬가지다. 제 목소리를 내야 할 장애인 관련 시설 관계자들이 ‘비장애인 마인드’로 무장돼 있다면 장애인의 인권신장을 기대하긴 어렵다. 무엇보다 ‘장애 아동’을 공개적으로 목욕시키는 건 봉사활동이 아니라는 인식부터 가져야 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선거운동 기간 동안 정치인의 ‘장애인 봉사활동’ 거부를 선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장담하건데 정치인들은 불평할 지 몰라도 장애인들은 분명 환영할 것이다.

<이미지(위)=한겨레 2011년 9월29일 4면>
<이미지(중간)=조선일보 2011년 9월27일 5면>
<이미지(아래)=오마이뉴스 화면 캡쳐>

※ 이 글은 여성신문 인터넷 온라인판(2011년 10월1일)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