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과거흔적/여성신문

동아일보가 ‘사과문 광고’를 내야 하는 이유

 [미디어곰의 세상읽기] ‘오보’에 대한 동아일보 기준을 자신들에게 적용시키면

지난 19일자 동아일보 2면에 ‘조그만’ 정정보도문이 실렸다. 다음과 같다.

“본보는 2008년 8월 2일 ‘7년 파업의 눈물’이라는 제목으로 ‘전국금속노동조합 인천지부 콜트악기지회의 잦은 파업으로 인해 콜트악기 부평공장이 폐업하게 됐다’는 취지의 보도를 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콜트악기 부평공장의 폐업은 노조의 파업 때문이라기보다는 사용자 측의 생산기지 해외 이전 등의 다른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고, 노조의 파업은 대부분 부분 파업이어서 회사 전체의 매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은 사실이 밝혀졌으므로 이를 바로잡습니다.”

‘1단 짜리’ 정정보도문이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은 ‘1면 머리기사’ 이상의 가치가 있다. 동아일보가 콜트악기 노조를 공장폐업의 ‘주범’으로 몰아세웠는데 3년 뒤 “노조가 범인이 아니고 진범은 따로 있어요”라고 말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보도를 경찰 수사에 적용시키면 이런 결론이 나온다. 부!실!수!사!

‘1단 짜리’ 정정보도문으로 매듭지을 사안이 아니다

동아일보의 양심선언인가? 그랬으면 그나마(?) 박수라도 쳐주고 싶은데 그렇지가 않다. 대법원이 지난 19일 동아일보 보도를 허위라고 최종 결정했고, 대법원의 이 같은 판결에 따라 동아일보는 정정보도문을 게재했다. 동아일보는 콜트악기 노조에 500만원의 위자료도 지급해야 한다. 부실한 수사에 책임이 뒤따르는 것처럼 언론의 부실한 취재와 보도에도 책임이 동반되는 법이다.

그런데 뭔가 불공평하다. 정정보도문 게재와 위자료 지급만으로 이 사건이 마무리되기에는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지금부터 하려는 얘기는 바로 그 ‘문제’에 관한 것이다.

무엇보다 3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한 콜트악기 노조입장에서 보면 동아일보의 정정보도문은 미흡한 곳이 많다. 문제의 동아일보 기사는 2008년 8월 2일 <7년 파업의 눈물>이라는 제목으로 사회면(11면) 머리기사로 보도됐다. 사진도 함께 실었기 때문에 단연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사안.

하지만 대법원에 의해 허위기사로 판명됐다는 내용을 전하는 동아일보의 ‘정정보도문’은 1단 짜리 ‘단신’으로 처리됐다. 정정보도문은 원래 그렇게 배치하는 것이라고, 그게 관행이라고 변명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세운 ‘가해자 언론’에게 부가한 책임치고는 ‘1단 짜리’ 정정보도문과 500만원 위자료는 너무 경량이다. 법적 의미는 있지만 제재수단이 미미해 실효성을 상실했다고나 할까. ‘저런 사고’를 치고도 ‘이 정도’ 제재에 그친다면 동아일보는 비슷한 사고를 다시 칠 가능성이 높다. 노동문제에 대한 보수신문의 기조가 ‘친자본 반노동’을 벗어난 적이 없다는 점도 이런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동아일보의 보도는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이었다 

또 다른 문제는 동아일보 보도를 단순 실수로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노조에게 공장폐업의 책임을 전가시키려는 의도성을 가지고 기사를 작성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는 동아일보 보도에 대한 법원의 판결문에서도 확인되는 내용이다. 일부를 소개한다. 

“경영 상태에 대한 자료들만이라도 객관적으로 인용했더라면 이 기사에 나타난 오류는 쉽게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피고가 콜트악기 회사 측의 진술을 듣기는 했으나 노동조합에는 사실관계 확인을 하지 않은 점 등을 봤을 때, 피고가 이 기사 내용을 진실이라고 믿은 데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정리를 하면 동아일보 기자는 기본적인 경영상태 자료들도 점검하지 않았고, 회사 측 입장에 대한 노조의 반론도 보장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기사로서 최소한의 기본요건을 갖추지 못한 문제의 이 기사를 동아일보는 사회면 머리기사로 내보냈다. 취재해서 기사를 작성한 기자 뿐만 아니라 이 기사를 ‘감수’한 간부들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경향신문이 지난 20일자 사설에서 지적한 것처럼 “(동아일보가) 처음부터 노조를 비판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면 나올 수 없는” 기사였다.

보도내용 만큼이나 악의적인 지면배치

동아일보의 악의성은 기사내용 뿐만 아니라 지면배치에서도 확인된다. 2008년 8월2일자 동아일보 11면을 보면 <인천 두 기업 엇갈린 운명>이라는 하나의 제목으로 두 개의 기사를 묶어 놓았는데, 누가 보더라도 콜트악기 노조를 비난하기 위한 의도적인 편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날 11면 왼쪽에는 <14년 무파업 ‘선물’>이라는 기사가 배치돼 있는데, 14년 무파업을 기록하고 있는 동국제강 인천제강소가 초고속 성장과 함께 성과급 잔치를 벌이고 있다는 내용이다. 오른쪽에 바로 문제의 <7년 파업의 ‘눈물’>이라는 기사가 있다. 을씨년스런 사진과 함께 ‘전기-통기타 매출 세계1위 흔들… 부평공장 문 닫기로’라는 소제목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동아일보가 두 기사를 하나의 큰 제목으로 묶고 비교할 수 있게 편집한 의도가 뭘까. 처음부터 콜트악기 노조를 비판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 말고는 달리 설명이 되지 않는다. 아니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회사 측의 입장을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해 온 관행대로 보도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노동계가 이번 대법원 판결을 “회사 측에 유리한 정보만 선택해 노조를 비판하는 보도에 경종을 울린 것”으로 평가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아는 독자들은 그리 많지 않다. 동아일보 보도의 허위성을 제대로 알린 곳이 경향신문이나 한겨레 등 극히 일부 언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세운 ‘가해자 언론’에게 지워진 책임치고는 동아일보는 너무 가벼운 제재만 받았다. 그냥 실수가 아니라 의도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 대해 제대로 책임을 묻지 않았다는 얘기다.

MBC ‘PD수첩’ 사과광고를 높이 평가한 동아일보

이 대목에서 <PD수첩> ‘광우병 편’에 대한 동아일보의 보도태도를 떠올리게 된다. 지난 2일 대법원은 2008년 4월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을 보도한 MBC <PD수첩> 제작진에 대해 원심대로 무죄를 확정했다.

대법원 판결의 기본 취지는 ‘보도내용에 일부 허위가 있다 해도 공공성에 입각한 보도인 만큼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손해배상 등 형사상 죄책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언론계와 학계에서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정부의 시도가 위법임을 분명히 한 점 △언론의 비판기능과 국민의 알권리를 폭넓게 인정한 점 △공익적 사안에서 언론의 자유가 공직자의 명예보다 우선한다는 원칙을 재확인시킨 대법원의 이번 판결을 환영한 것도 이런 취지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아일보를 비롯한 ‘조중동’ 등 보수언론은 대법원의 판결취지를 자의적으로 해석했다. 동아일보 지난 5일자 사설이 대표적이다. 동아일보는 “판결 내용은 ‘PD수첩 광우병 보도의 일부 내용은 분명한 허위지만 제작진의 악의적 의도가 명백하지 않아 처벌할 수 없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 이 프로그램의 대전제가 된 핵심 내용이 허위라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오보 확정’ 판결이었다”고 주장했다.

대법원 판결의 전체적인 취지와 부분적인 실수를 완전히 뒤바꿔 놓은 이상한 해석인데, 대법원이 정정보도를 청구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허위보도 한 동아일보는 사과문 광고 내고 해당 기자는 언론계를 떠나라

여기서 판결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동아일보가 <PD수첩> ‘광우병 편’에 적용한 잣대를 자신들의 ‘허위보도’에 적용시키면 어떻게 될까. 문득 이런 궁금증이 생겼고 그래서 실제로 한번 적용을 해봤다.

동아일보는 어떤 기준을 <PD수첩>‘광우병 편’에 적용했을까.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일부를 소개한다. 다시 9월5일자 동아일보 사설 가운데 일부분을 소개한다.

“언론은 사실보도가 생명이다. PD수첩 제작진이 형사처벌을 면했다는 이유만으로 면죄부라도 받은 듯이 행세한다면 직업의식은 물론이고 저널리스트의 영혼이 없음을 자인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미국 CBS TV 탐사보도 프로그램 ‘60분(sixty minutes)’은 조지 W 부시 대통령 관련 오보로 PD와 앵커까지 사직했다. 미국이었다면 PD수첩 광우병 편 같은 오보를 낸 기자나 PD는 언론계를 떠나야 했을 것이다.”

이 기준대로라면 ‘콜트악기 부평공장의 폐업’과 같은 완벽한(!) 오보를 낸 동아일보 기자는 물론 기사와 관련 있는 간부들도 언론계를 떠나야 한다. 개인적으로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동아일보가 자신들이 주장한 원칙을 지키고자 한다면 굳이 말릴 생각은 없다.

개인적으로는 동아일보가 MBC처럼 주요일간지에 사과광고문을 게재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대법원이 무죄판결을 내린 <PD수첩> ‘광우병 편’에 대해서도 ‘부분적인 실수’를 부각시키며 오보라 주장하는 동아일보이기 때문이다. 제작진과 노조의 반발에도 MBC가 ‘PD수첩’ 사과광고를 게재한 것을 높이 평가한 동아일보라면, 대법원이 ‘완벽한 허위보도’라고 인정한 자사 보도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충분히 알 거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 글을 마무리할 즈음, 인터넷에 기사가 떴다. MBC가 <PD수첩> ‘미국산 광우병 편’ 방송과 관련해 조능희 김보슬 PD에 정직 3개월, 송일준 이춘근 PD는 감봉 6개월, 정호식 PD에 감봉 3개월의 징계를 내렸다는 내용이다.

자 그럼, 동아일보는? 우리 모두 지켜보자. 동아일보가 완벽한(!) 오보를 낸 해당 기자와 간부들을 어떻게 조치하는지.

<사진(위)=동아일보 2008년 8월2일자 11면>
<사진(두번째)=경향신문 2011년 9월20일자 14면>
<사진(세번째)=경향신문 2011년 9월20일자 사설>
<사진(네번째)=경향신문 2011년 9월3일자 사설>
<사진(마지막)=동아일보 2011년 9월5일자 사설>

* 이 글은 9월23일 여성신문 온라인판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