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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흔적/여성신문

‘도가니’ 열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

[미디어곰의 세상보기] ‘큰’ 분노 못지않게 ‘작은’ 실천도 중요하다

창피한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지난 주 영화 <도가니>를 보러 갔습니다. 미리 영화를 본 지인들이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를 전한 터라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보러 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예매한 표를 발급받고 주차권을 받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글자막’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도가니> 상영관과 시간표를 알리는 한 귀퉁이에 ‘한글자막’ <도가니>를 상영한다는 표시였습니다. 한글자막? 옆에 있던 ‘삶의 동반자’에게 물었습니다. “‘도가니’가 한국영화인데 한글자막이 왜 필요하지?”

‘삶의 동반자’가 약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더군요. 솔직히 말해 그때까지도 ‘한글자막’ 의미를 몰랐습니다. 제 옆 다른 줄에 서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청각장애인을 보고서야 의미를 파악했습니다. 장애아동의 인권유린을 다룬 영화를 관람하러 왔다면서 정작 일상생활에서 장애인들의 권리침해 문제에 둔감했던 겁니다. 얼굴이 화끈거렸고 부끄러웠습니다.

영화 ‘도가니’ 열풍과 비장애인의 한계

제가 본 영화관에는 한글자막이 없었습니다. 당연히(!) 청각장애인들도 보이지 않았지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전체 <도가니> 상영관 수에 비해 한글자막 상영관 수가 너무 적다는 생각. <도가니>를 보고 싶어 하는 장애인들도 많을 텐데 그 분들은 그런 권리마저 제약을 받겠구나…. 편하게 앉아서 영화를 볼 수 있는 저의 작은 행복이 참 크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저는 김철환(장애인정보문화누리 활동가)씨가 쓴 <장애인도 ‘도가니’를 관람하고 싶다>(한겨레 10월4일자 29면)는 칼럼을 여러 번 읽었습니다. 이 칼럼은 <도가니>를 보러갔을 때 저의 ‘행적’을 다시 한번 생각나게 만들더군요. 현재 불고 있는 ‘도가니’ 열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건 없는지 - 이런 점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일부를 인용합니다.

“청각장애인 몇이 영화 <도가니>를 보러 갔다. 자신들과 같은 장애인들의 인권유린 문제가 사회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영화를 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들은 매표소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영화에 한글자막이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한글자막을 제공하고 있거나 이를 준비 중인 영화관이 있기는 하지만 <도가니>가 상영되는 전국 509개 스크린 가운데 20개 정도뿐이다.(9월 말 현재) 자막을 입히는 상영관 대부분도 도시 중심에 있고, 상영 횟수도 하루 1회 정도라 청각장애인들이 <도가니>를 자유롭게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청각장애인이 이 정도면 시각장애인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한마디로 장애인 문제를 다룬 영화를 정작 장애인이 보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죠. 아니 정확히 말해 지금까지 그런 일이 벌어져 왔고,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상적인 영역에서 장애인 권리 찾기에 관심을 기울여야

제가 했던 ‘창피한 행동’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영화 내용 못지않게 영화 외적인 요소에 자꾸 눈길이 갔습니다. 영화 속 가해자들의 장애아동에 대한 인권유린과 침해에 분노하면서도 한편으론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 사회가 어쩌면 장애인들의 행복추구권을 원천봉쇄하는 사회일 수도 있다는 생각. 장애인들이 인간으로서 생활할 수 있는 기본적인 생존권을 보장하지 않는 사회일 수도 있다는 생각. 그리고 그런 폭력적인 상황에 대해 저와 같은 많은 비장애인들이 제대로 인식조차 못하면서 살고 있는 그런 사회일 수도 있다는 생각.

그래서였을까요. 영화관 이곳저곳을 살피며 지금까지 잘 보이지 않았던 여러 문제점들이 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휠체어 이용하시는 분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보는 걸까’ ‘일부 장애인 좌석이 있긴 하지만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 같은데…’ ‘한글자막이 나오는 상영관 수를 더 늘일 수는 없는 걸까’ ‘시각장애인들도 영화를 볼 수 있도록 정책적 배려가 필요한 것 같다’ ‘한글자막 상영관이 매진되면 이 영화를 보고 싶은 장애인들은 볼 수 없다는 건가’ ‘대체 장애인들은 지금까지 영화를 어떻게 봤던 것일까’ ‘기본적인 문화생활을 제대로 누릴 수나 있었던 걸까’ 등등 … 이런 저런 의문점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도가니> 열풍이 불면서 많은 사람들이 광주 인화학교에서 벌어진 장애아동 성폭행 가해자들에 대해 분노하고 있습니다. 당시 인화학교 파문을 제대로 관리감독 하지 못했던 관할 교육청은 물론이고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던 경찰, 가해자들에게 가벼운 판결을 내렸던 사법부,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 처리에 미온적이었던 한나라당과 정치권, 이 모든 것들에 무관심했던 언론까지 시민들의 분노를 피해갈 수는 없었습니다.

분노, 필요하죠. <도가니>를 보면서 분노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분노는 순간일 뿐입니다.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정책과 제도적인 틀을 정비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 지금의 ‘도가니 열풍’이 정책·제도적인 정비로 연결되지 못하고 분노로만 끝난다면 이 열풍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전국적인 ‘도가니 열풍’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이 없는 지 살펴야 하는 이유입니다.

분노보다 중요한 정책, 정책만큼 중요한 ‘인간의 권리’

그런데 저는 정책․제도적인 정비만큼 중요한 ‘무엇’이 있다고 봅니다. 장애인 인권과 권리에 대한 비장애인들의 인식 전환입니다. 영화 관람만 해도 김철환 씨가 한겨레에서 언급한 것처럼 “초청행사나 영화제와 같은 이벤트 차원이 아닌, 비장애인들과 같은 장소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권리가 장애인들에게 주어질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생각해보세요. 비장애인들은 영화 <도가니>를 보면서 분노하는데 정작 장애인들은 그 분노를 느낄 기회조차 박탈당하는 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장애인 권리와 인권문제에 대한 비장애인들의 ‘인식 전환’이 없다면 현재 불고 있는 ‘도가니 열풍’은 모래성과 같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분노보다 중요한 것이 정책이고 정책만큼 중요한 게 장애인 인권입니다. <도가니>를 보고 가해자들에게 분노하는 것도 중요하죠. 하지만 일상적인 영역에서 장애인 권리 찾기에 관심을 기울이는 작업이 더 의미를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큰’ 분노 못지않게 ‘작은’ 실천도 중요한 법이니까요. <도가니>를 보면서 제가 얻은 가장 큰 교훈입니다.

* 이 글은 여성신문 온라인판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