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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흔적/숫자로 본 한 주간

수수료율 인하, ‘분배 정의’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숫자로 본 한 주간] 정부의 ‘급한 불 끄고 보자’식 대응은 안 된다

이번 한 주는 ‘200’을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숫자로 뽑아 봤습니다.

최근 수수료를 두고 논란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지나친 수수료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면서 수수료 인하 요구가 급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금융당국과 정치권은 물론 카드사와 은행권도 수수료 인하에 착수하면서 수수료 논란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습니다. ‘200’은 금융권의 수수료 종류를 말하는데요, 오늘은 수수료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얘기해 보고자 합니다. 

사실 이번에 불거진 수수료 논란은 카드사나 금융회사들이 너무 쉽게 돈을 벌고 있다는 서민들의 불만이 밑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서민들이나 자영업자들 생활이 점점 팍팍해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카드사나 금융회사들은 지금 성과급 잔치를 벌이고 있거든요. 그 성과의 상당 부분이 수수료를 통한 수익이었습니다.

카드사․금융회사, 그들은 너무 쉽게 돈을 번다

앞서 언급한 금융권의 수수료 종류만 200여개라고 말씀을 드렸는데요, 금융권이 수수료로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지 이 숫자가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서민들과 자영업자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국내 18개 은행들은 상반기에만 수수료로 2조2500억 원을 벌어들였습니다. 카드사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올해 상반기 카드수수료 수입만 4조원입니다. 작년에 비해서 약 18%가 늘었습니다. 순이익만 상반기에 대략 8000억 정도 되니까 엄청난 수익이죠. 음식점이나 영세 자영업자들은 이를 근거로 카드사들이 자영업자들을 상대로 수수료 장사를 했다고 비난합니다. 자신들의 카드 수수료율이 대형 마트나 백화점, 골프장보다 높다면서 부당성을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백화점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백화점들은 수수료율이 업종에 따라 40%가 넘어서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나친 수수료율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특히 백화점들이 해외명품업체들에게는 낮은 수수료를 책정하고 온갖 혜택까지 제공한 반면 국내업체들에게는 높은 수수료를 매겨서 차별 대우 논란까지 불러 일으켰습니다. 은행과 카드사, 백화점들이 서민과 영세업자들 호주머니 털어서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주장이 폭넓게 공감을 얻는 이유입니다.

수수료율 인하는 ‘분배 정의’와도 관련이 있다

사실 이렇게 수수료 논란이 화두로 떠오른 것 자체가 상당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저는 세계적으로 경기둔화, 저성장이 장기화되고 있는데 따른 현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내는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경기회복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안감이 깊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서민과 자영업자들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죠.

경제가 호황이면 서민과 자영업자들이 카드 수수료 문제에 대해 지금처럼 인하 요구를 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경기침체는 계속되는데 은행권은 수수료를 바탕으로 한 최대이익을 누리고 있습니다. 카드사들과 백화점들도 수수료 인하에 소극적입니다. 그러니 서민들이나 자영업자들 반감이 커질 수밖에 없죠. 일각에선 수수료율 인하를 ‘분배 정의’와 연결시키기도 합니다.

지금이 선거를 앞둔 시점이라는 것도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10․26 서울시장 선거, 내년 총선과 대선까지 앞으로 선거일정이 계속 예정돼 있습니다. 표 계산을 해야 하는 정치권 입장에선 수수료율에 대한 자영업자들의 조직적인 반발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죠.

또 하나 고려해야 할 게 있습니다. 최근 미국 월가에서 금융회사들의 과도한 탐욕을 비난하는 시위가 벌어지지 않았습니까. 카드사나 은행, 백화점 등에 대한 반감이 높은 상황에서 이런 국제적인 시위가 국내에서 벌어지지 말란 법이 없습니다. 자칫 정부가 미온적으로 대처할 경우 대규모 시위로 확산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정부의 ‘급한 불 끄고 보자’ 식 대응을 막기 위해서는

어쨌든 여론의 압박이 커지니까 금융사와 카드사들이 대책 마련에 들어갔습니다. 신용카드사들은 수수료율을 2.1%대에서 1.8%대로 낮추고, 중소 가맹점 범위를 연매출 2억원 이하로 확대하는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은행들은 수수료 50% 일괄인하, 취약계층 수수료 면제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수수료와 관련해 무엇이 근본 문제인지 따져서 개선책을 마련하는 게 아니라 ‘급한 불 끄고 보자는 식’의 대응책에 치중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식이면 비슷한 문제가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죠.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원가분석을 통한 합리적이고 투명한 수수료 체계를 금융당국 주도로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진(위)=경향신문 2011년 10월17일자 1면>
<사진(중간)=경향신문 2011년 10월17일자 5면>
<사진(아래)=중앙일보 2011년 10월21일 E2면>

※ 이 글은 2011년 10월22일 오전 6시10분부터 7시 사이에 CBS FM(98.1MHz) ‘좋은 아침 최정원입니다’에서 방송된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