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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흔적/숫자로 본 한 주간

22명의 한나라당 의원이 출마한다고 한들…

[숫자로 본 한 주간] 출마한다고 한들 과연 당선될 수 있을까

이번 한 주는 ‘22’를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숫자로 뽑아 봤습니다.

지난해 국회폭력 추방을 위해 의원직을 걸었던 한나라당 의원수를 말합니다. 지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를 둘러싼 여야의 대치가 계속되고 있죠. 지난 3일 국회 본회의가 취소되면서 여야의 물리적 충돌사태는 일단 넘겼습니다. 하지만 물리적 충돌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한미FTA 직권상정과 22명 의원들의 ‘운명’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22명의 의원들이 성명서를 발표한 것은 지난해 연말이었습니다. 정확히 지난해 12월 16일이었죠. 황우여ㆍ남경필ㆍ이한구ㆍ권영세ㆍ홍정욱 의원 등 한나라당 소속 의원 22명은 ‘국회 바로 세우기 모임’을 결성하고 ‘자성과 결의’라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이들 의원들은 “앞으로 우리는 의원직을 걸고 물리력에 의한 의사진행에 동참하지 않을 것임을 말씀드리며 이를 지키지 못할 때에는 19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임을 국민 앞에 약속드린다”라고 밝혔습니다.

여론 악화 때문에 성명서 발표한 22명의 한나라당 의원들

당시 22명의 의원들이 이런 성명을 낸 배경은 여론악화 때문이었습니다. 지난해 한나라당이 예산안을 단독 강행처리했는데요, 후폭풍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단독 강행처리한 예산안에 문제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대통령의 ‘형님 예산’이었습니다.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의 지역구 관련 예산이 대폭 증액된 반면 저소득층, 노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 예산은 삭감되면서 비판 여론이 급등했습니다. 특히 예산 부수법안 및 4대강 주변 막개발을 가능케 하는 친수구역특별법과 같은 쟁점법안도 함께 ‘날치기’로 처리해서 비난을 샀습니다. 급기야 22명의 한나라당 의원들이 ‘의원직을 걸겠다’면서 기자회견을 자청했고 성명서가 나오게 된 겁니다.

그런데 22명의 한나라당 의원들이 지금은 좀 다른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한 언론사가 22명의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FTA 직권상정 하면 어떻게 할 거냐.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많은 의원들이 “바로 세우기 모임에 한 번도 참석한 적도 없고 불출마한다고 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며 “한ㆍ미 FTA는 직권상정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습니다. 간단히 말해 ‘난 모르는 일이다’라는 거죠.

역시 정치인들 약속은 믿을 게 못되지요. 일각에선 한미FTA 비준안이 직권상정 되면 한나라당 22명 의원들이 19대 총선 불출마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저는 22명 의원들이 19대 총선에 출마한다고 한들, 과연 당선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정치권 물갈이’ 요구가 비등하고 있는 상황에서 ‘구태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한 의원들. 게다가 약속까지 팽개친 의원들이 과연 19대 총선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저는 회의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나라당 22명의 의원들, 출마한다고 한들 당선될 수 있을까

한나라당은 오바마 대통령이 제출한 한미FTA 이행법률안을 회기일 기준으로 6일 만에 미 의회가 통과시킨 점을 거론하며 야당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미 의회도 빨리 통과시켰으니 우리 국회도 가능한 빨리 통과시켜야 한다는 얘기죠. 그런데 속내를 들여다보면 미 의회와 우리 국회는 비교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미 의회는 지난 2007년 4월 한미 FTA협상이 최초 타결된 뒤부터 무역위원회(ITC) 산하 30여 곳의 자문위원회 보고서 등을 토대로 협정 내용을 꼼꼼하게 검토해왔습니다. 반면 우리 국회는 협상 타결 전은 물론 이후에도 외교통상부에 계속 끌려 다녔습니다. 외교부가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지도 않았고, 불리한 내용을 허위보고 해도 국회가 이를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일각에선 정부의 ‘밀실행정’에 가장 큰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고 지적합니다. 맞습니다. 정부의 무능과 ‘대미 사대주의’ 그리고 밀실행정이 한미FTA의 정상적인 논의를 왜곡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국회 책임론이 지워지는 건 아닙니다. FTA와 관련해선 민주당의 책임도 상당히 크죠. 하지만 현재 집권여당인 한나라당 책임이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단적인 예를 하나 들면, 2008년 4월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는 협정문 한글본이 번역오류투성이었는데 한나라당은 단독으로 이를 통과시켰습니다. 협정 내용을 꼼꼼하게 분석하기보다는 통과시키는데 급급했다는 얘기죠. 게다가 한미FTA 협정이 발효되면 국내 농어민과 영세상인, 중소기업은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규모의 피해가 예상되는지 구체적인 규모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한마디로 한미FTA와 관련해 협정 내용을 꼼꼼하게 점검하지도 않았고 제대로 된 논의도 하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직권상정 전문 국회 … 직권상정 전문 한나라당?

한미FTA 협정문이 1259쪽입니다. 제대로 심의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협정 내용에 투자자-국가 소송제(ISD)와 같은 우리의 사법주권까지 흔드는 조항도 포함돼 있습니다. 이런 중대한 내용을 우리 국회가 내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처리하려 한다는 데 문제의 핵심이 있습니다. 빨리 처리하는 게 핵심이 아니라는 겁니다.

만약 한나라당이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국회 본회의에 직권상정 해 처리하게 되면, MB정부 들어 미디어법, 예산안 등에 이어 5번째로 직권상정 처리한 법안이 됩니다.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변화기류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정치인의 운명이 어떻게 됐는가. 최근 선거결과가 정확히 말해주고 있으니까 새삼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22명의 한나라당 의원들은 물론이고 제발 다른 의원들도 미국을 보지 말고 한국 서민들의 아픔을 직시하길 부탁드립니다.

<사진(위)=경향신문 2011년 11월4일자 5면>
<사진(중간)=경향신문 2011년 11월5일자 4면>
<사진(아래)=한국일보 2011년 11월5일자 3면>

※ 이 글은 2011년 11월5일 오전 6시10분부터 7시 사이에 CBS FM(98.1MHz) ‘좋은 아침 최정원입니다’에서 방송된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