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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흔적/숫자로 본 한 주간

언론의 노동보도가 변해야 ‘제2의 김진숙’ 막는다

[숫자로 본 한 주간] 94명의 한진중 해고자, 그들의 복직이 의미를 가지려면

이번 한 주는 ‘94’를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숫자로 뽑아 봤습니다.

11개월 넘게 끌어온 한진중공업 사태가 지난 9일 정리해고자 94명을 1년 내 재고용한다는 노사 합의를 이뤘습니다. 경찰의 과잉대응으로 최종 타결을 위한 조합원 투표가 무산되는 진통을 겪기도 했지만, 10일 노조가 합의안을 가결하면서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오늘은 94명의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자 복직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 얘기해 보고자 합니다.

한진중공업 사태는 해결됐지만 언론의 ‘반노동 보도’는 여전

이번 합의안을 보면, 정리해고자 94명을 합의서 체결일로부터 1년 안에 재취업한다는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재취업 때 이전에 근무한 기간을 근속연수로 인정하고, 정리해고자 94명의 생계비 2000만원을 내년 11월까지 4차례 나눠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또 노사간 민형사 고소와 고발 및 진정을 모두 취하하고 손해배상청구 최소화 등에도 의견접근을 이뤘습니다. 일부 정리해고자들이 합의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발했지만 일단 한진중공업 사태가 해결 수순을 밟고 있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한 기업의 정리해고가 이토록 사회적 관심을 받은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죠. 한진중공업 사태 이전에도 다른 기업에서 규모가 훨씬 큰 정리해고가 있었습니다. 1998년 현대차가 8171명을 희망퇴직 시키고 277명을 정리해고 했습니다. 2001년에는 대우차가 6000여명을 희망퇴직 시켰고, 1750명을 정리해고 했습니다. 이때가 한진중공업 사태보다 정리해고 규모가 훨씬 컸는데도 사회적으로 파장은 그렇게 크지 않았습니다.

한진중공업 사태가 이렇게 관심을 받은 이유 -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영향력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노동문제가 사회이슈로 부각되려면 언론 보도가 필수적이었습니다. 그런데 98년 현대차나 2001년 대우차 정리해고는 언론이 적극적으로 보도하지 않았고, 노동계에 대한 시선도 우호적이지 않았습니다.

언론의 이런 태도는 한진중공업 사태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진중공업 사태 때는 트위터나 페이스북과 같은 SNS가 있었습니다. 언론은 외면했지만 SNS를 통해 시민들이 관련 내용을 알리기 시작했고, 여기에 영화배우 김여진 씨와 같은 소셜테이너들이 적극 참여하면서 사회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한진중공업 사태가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 남긴 과제가 적지 않습니다. 이 말은 앞으로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제2의 한진중공업 사태’는 얼마든지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우선 회사가 노조를 협상 파트너로 인정해야 노사갈등을 최소화 할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습니다. 한진중 사태가 악화된 데에는 노조를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은 경영진의 태도가 큰 역할을 했거든요.

재계의 일방적 정리해고 관행에 제동을 건 한진중공업 사태

해고를 회피하려는 노력보다는 ‘인력감축’ 카드를 쉽게 꺼내든 사측의 경영방식도 문제로 지적됐습니다. 이번 사태가 악화된 결정적 계기도 2007년 경영상 이유로 정리해고를 하지 않겠다는 노조와의 약속을 경영진이 어겼기 때문입니다. 노사간 신뢰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한진중공업 사태를 계기로 정리해고에 관한 사회적 합의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이게 쉽지가 않습니다. 지금도 경영상 정리해고를 허용하는 4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긴박성, 해고회피노력, 합리적인 대상선정, 노조와의 협의가 그것입니다. 문제는 법원도 이를 정확히 따지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뭔가 현실적인 방안을 찾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물론 가장 좋은 건, 정리해고 안 하는 거죠. 그런데 이걸 현실적으로 쉽지가 않습니다. ‘손쉽게’ 정리해고 하는 경영방식은 문제지만 ‘경영상’ 불가피하게 정리해고가 필요한 경우도 있거든요.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정리해고 회피절차를 명확히 하고, 해고자들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는 방식의 제도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무조건 정리해고를 막기보다 정리해고자들에 대한 다양한 재취업 통로를 확보하고, 여기에 기업이 일정한 책임을 지는 방식이 현실적이라는 거죠. 우리 사회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봅니다.

분명한 것은 이번 합의를 계기로 노사관계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한진중공업 사태는 정리해고를 남발하는 재계의 관행에 처음으로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물론 노사 합의안이 제대로 이행될지 여부에 대해 일부 조합원들은 여전히 의구심을 거두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의혹들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노사문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2의 한진중공업·제2의 김진숙 막기 위해선 언론 보도가 바뀌어야 한다

노사정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죠. 특히 언론의 노동관련 보도도 새롭게 바뀌어야 합니다. 언론의 ‘반노동 보도’가 여전했음에도 한진중공업 사태가 마무리될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요. 단순히 SNS 영향력이라고 얘기하가에는 무언가 찜찜한 구석이 있습니다. 그만큼 시민들의 언론에 대한 신뢰가 계속 하락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언론의 성찰과 자기반성이 절실하다는 얘기입니다.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309일 만에 타워크레인에서 내려오면서 한진중공업 사태는 마무리됐죠. 하지만 우리에겐 ‘제2·3의 김진숙’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숙제가 여전히 남겨져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진(위)=한겨레 2011년 11월11일 1면>
<사진(중간)=경향신문 2011년 11월11일 2면>
<사진(아래)=중앙일보 11월11일 사설>

※ 이 글은 2011년 11월12일 오전 6시10분부터 7시 사이에 CBS FM(98.1MHz) ‘좋은 아침 김윤주입니다’에서 방송된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