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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흔적/숫자로 본 한 주간

신정아 파문에서 ‘신정아 목소리’는 없었다

[숫자로 본 한 주간] ‘신정아 열풍’에 대한 삐딱한 단상

이번 한 주는 ‘4001’을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숫자로 한번 뽑아 봤습니다.

많은 분들이 듣는 순간 짐작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학력위조 파문과 공금횡령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던 신정아 씨가 자전 에세이집 ‘4001’을 출간했죠. ‘4001’은 신정아 씨가 구속 기소돼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할 당시 수감번호입니다. 신 씨의 책은 초판 5만부가 하루 만에 다 판매가 될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언론의 관심도 높았습니다. 오늘은 신정아 씨의 자전적 에세이 ‘4001’ 열풍 현상에 대해서 얘기해 보고자 합니다.

‘신정아 파문’에서 ‘신정아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된 적이 있었나

신정아 씨의 책이 이렇게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는 원인에 대해 많은 전문가와 분석가들이 여러 측면에서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비판도 있고, 우리 사회 ‘엿보기 심리’가 반영된 현상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관음증을 노린’ 출판전략과 ‘관음증을 기대한’ 독자들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현상이라는 지적도 있죠. 언론의 ‘황색 저널리즘’이 이런 현상을 부추겼다는 비난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신정아 현상’을 하나로 정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일단 먼저 전제돼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신정아 씨가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내용의 사실 관계는 검증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신정아 현상’을 분석하는 것과 책에 담긴 내용의 진실성 여부를 따지는 건 별개 사안이라는 거죠. 그런 점을 전제로 했을 때, 저는 ‘신정아 현상’을 좀 다른 시각에서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몇 년 전 ‘신정아 파문’이 발생했을 때 사회적 분위기를 한번 떠올려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때 신 씨는 ‘사회적 단죄’의 대상이었습니다. ‘주홍글씨’를 가슴에 새긴 ‘범죄자’였을 뿐이죠. 그녀의 해명이나 항변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그녀’가 지은 죄 이상으로 언론과 사회로부터 ‘마녀사냥’을 당한다는 항변이 나왔을 정도니까 당시 분위기가 어땠는지 대략 짐작이 가죠.

저는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상기해야 할 것이 있다고 봅니다. ‘신정아 파문’과 관련해 우리는 신정아 씨의 입장을 한 번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겁니다. 당시 언론 보도를 한번 찾아보시면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충분히 짐작하실 겁니다.

신정아, ‘신정아 파문’에 대해 입을 열다

그런데 이번에 일방적인 주장이긴 하지만 책을 통해 당시 상황에 대한 신정아 ‘자신의 의견과 억울함’을 호소했죠. 그동안 접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공개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관심을 보였습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유명인사들의 추문과 같은, 잘 드러나지 않았던 이면이 실명과 함께 언급이 되면서 예상외의 폭발력을 가지고 왔던 거죠.

제가 마치 ‘신정아를 위한 변명’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런 건 아닙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신정아 씨가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내용이 ‘일방적’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검증돼야 할 부분이 많다는 얘기입니다. 특히 다른 건 논외로 하더라도 ‘타인’의 사적인 생활을 ‘동의 없이’ 공개한 부분에 대해선 비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신정아 현상’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부분은 없나 - 이런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봤습니다. ‘사실 확인’ 작업이 필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저는 ‘신정아 현상’에는 우리 사회 지도층, 유명인사들, 권력자들의 감춰진 ‘또 다른 모습’이 드러난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이런 점들에 대한 일반인들의 통쾌함 같은 것이 반영이 돼 있다고 보거든요. 우리 사회 ‘공적 영역’과 사회 지도층에 대한 불신이 어느 정도로 팽배한 지를 ‘신정아 현상’이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말입니다. 사생활과 같은 자극적인 내용을 일방적인 방식으로 폭로한 것은 동의할 수 없지만, 무조건 ‘노이즈 마케팅’이나 ‘관음증 현상’이라는 식으로 비난만 할 일은 아니라고 겁니다.

‘공적 영역’과 사회 지도층에 대한 불신을 역설적으로 보여준 사건

저는 그래서 ‘신정아 현상’을 과도기적인 현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신정아 씨의 주장이 완전 허구일 가능성도 있지만, 일정 부분 사실이 포함됐을 개연성도 부정할 수 없죠. 아직 단정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때문에 사실 여부를 가리는 작업이 우선돼야 할 것 같습니다.

일각에선 감옥생활까지 했던 신 씨가 아무런 근거 없이 이런 책을 썼겠느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거든요. 신 씨의 주장 가운데 일부가 사실로 확인되면 파장이 클 수밖에 없죠. 많은 언론들이 신 씨의 책을 자극적이고 일방적이라고 비난하고 있는데 아이러니한 것은, 언론보도 역시 선정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겁니다. 지금은 ‘실체적 진실’을 가려내는 작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사진(위)=신정아 자전적에세이 '4001'>
<사진(아래)=2011년 3월23일 경향신문 2면>

※ 이 글은 2011년 3월25일 오전 6시10분부터 7시 사이에 CBS FM(98.1MHz) ‘좋은 아침 최정원입니다’에서 방송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