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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흔적/숫자로 본 한 주간

한 달에 ‘200만원’ 받은 걸 가지고 뭘…

[숫자로 본 한 주간] 서민들의 소외감을 ‘당신들’은 모른다

이번 한 주는 ‘200’을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숫자로 한번 뽑아 봤습니다.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이 삼화저축은행 사외이사로 3년7개월간 재직하면서 받은 월급이 200만원입니다. 오늘은 이 ‘200만원’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 한번 조명해 보고자 합니다.

정 수석은 사외이사로 3년7개월 동안 재직하면서 3년 동안 국회의원 신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국회에 신고하지 않았습니다. 국회 윤리실천규범에 따르면 국회의원이 보수를 받는 다른 직을 겸할 경우에 기업체의 명칭과 임무를 국회의장에게 신고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정진석 수석이 윤리규범을 어겼다는 얘기죠.

몇 천만 원씩 받고 일한 게 아니다? 200만원을 3년 간 받으면 …

하지만 정 수석은 “그때는 바빠서 크게 신경을 안 썼던 것 같다”면서 “몇 천만 원씩 받고 일한 것도 아니지 않으냐”고 해명했습니다. 이 해명이 언론에 소개되면서 논란을 증폭시켰습니다. 200만원씩 3년 동안 매달 받아도 7200만원입니다. ‘몇 천 만원’ 맞습니다. 정 수석이 이를 계산 못했을 리는 없지요.

제가 볼 때 의미가 달랐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몇 천 만원씩 받고 일한 게 아니지 않냐’는 정 수석의 해명은 ‘한 달에 몇 천 만원 씩’ 받고 일한 게 아니지 않느냐, 이 말인 것 같습니다.

지금 저축은행 사태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서민들을 생각하면 무책임한 발언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국회 윤리규범 위반도 문제지만 인식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삼화저축은행은 불법대출과 부실운영으로 지난 1월 영업이 정지됐습니다. 부실경영에 대해 사외 이사 책임론이 충분히 불거질 수 있는 상황이죠.

특히 정진석 수석은 국회의원 신분으로 겸직을 한 데다 지금은 청와대 정무수석이기 때문에 책임이 더 클 수 있죠. 그런데 정 수석은 “임원들이 책임 있는 거지, 사외이사가 무엇을 알겠느냐”고 해명했습니다. 대주주의 전횡을 막고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는 게 사외이사의 역할인데 최소한의 도의적인 사과표명도 하지 않고 있는 건 심각한 문제입니다.

문제는 이것이 정진석 정무수석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허준영 코레일 사장의 경우 강원도민저축은행 사외이사로 2008년 11월부터 2009년 3월까지 5개월 동안 재직하면서 5000만 원 정도를 받았습니다. 현재 강원도민저축은행은 영업정지 중인 상태거든요. 최소한의 도의적 책임을 느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허 사장은 “강원도민저축은행 모기업인 시큐어넷 회장으로 근무한 대가로 받은 급여일 뿐 로비활동을 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별 문제 없다는 얘기죠. 참고로 강원도민저축은행에는 전직 국회의원과, 전직 국정원 1차장도 사외이사를 맡았는데 이들의 급여는 200-300백만 정도였다고 합니다.

도의적인 사과도 하지 않는 ‘뻔뻔한’ MB정부 당국자들

법적인 문제는 없는 걸까요.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의 경우 정치자금법 위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법조계 일각과 시민단체들은 만약 회의도 한번 참가하지 않고 정 수석이 국회의원 신분으로 돈을 받은 것이라면 정치자금법 위반이라는 지적합니다. 경영진의 업무상 횡령 공범 가능성도 있다고 합니다.

문제는 검찰입니다. 검찰은 정 수석의 정치자금법 위반 가능성 등에 대해 당장 수사할 뜻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법조계 일각과 시민단체가 이번 사건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온도차가 나는 태도입니다.

사실 저는 법적 문제 이전에 정부 당국자로서 최소한의 책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그들’의 태도를 가장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저축은행의 방만경영과 비리, 여기에 고위공직자들이 연루가 된 것이 드러나면서 서민들의 공분을 자아내고 있는 상황이잖아요. 특히 삼화저축은행은 정진석 수석이 사외이사로 선임된 지 한 달 뒤에, 담보 상환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339억원을 불법 대출해준 게 드러나기도 했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사외이사로서 제대로 역할도 하지 않은 채 한 달에 200만원 씩 받았다면 적절한 처신이 분명 아닙니다. 이 부분에 대한 사과와 책임의식은 사실 공직자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덕목’인데, 유감스럽게도 MB정부의 당국자들은 계속 ‘별 문제 아니다’라는 입장만 거듭 밝히고 있습니다.

한 달에 200만원도 받지 못한 채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서민들의 소외감을 ‘이런 분들’이 과연 체감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남은 MB정부의 임기가 한국 사회에 불행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 - 저만의 생각일까요.

<사진(위)=2011년 5월18일 MBC '뉴스데스크'>
<사진(아래)=경향신문 2011년 5월18일자 8면>

※ 이 글은 2011년 5월21일 오전 6시10분부터 7시 사이에 CBS FM(98.1MHz) ‘좋은 아침 최정원입니다’에서 방송된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