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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흔적/숫자로 본 한 주간

명절은 여전히 여성들에게 불평등하다

[숫자로 본 한 주간] 명절이 여성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이유

이번 설 명절, 잘 보내셨나요? 혹시 ‘명절 증후군’에 고생은 안하셨는지. 아마 많은 분들이 이래저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겁니다. 그래서 이번 한 주는 ‘38.7’을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숫자로 뽑아 봤습니다. ‘38.7’이 명절 스트레스와 무슨 상관이냐? 이렇게 질문하실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요, 38.7이라는 숫자는 여성들의 ‘명절 스트레스’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오늘은 대한민국 여성들의 ‘명절 증후군’ ‘명절 스트레스’에 대해서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직장 바꾸는 것보다 더 심한 ‘명절 스트레스’

충남대 병원 김종성·정진규 가정의학과 교수가 최근 기혼여성의 명절스트레스를 점수로 발표했는데,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두 교수는 2009년과 2010년 충남대 종합건강증진센터를 찾은 기혼여성 100명을 대상으로 스트레스 항목을 제시해 주관적으로 점수를 매기도록 했습니다.


제시된 항목 중 가장 큰 스트레스는 자식이나 배우자의 죽음(100점)이었습니다. 이혼이 73점이었고, 부부 별거는 63점, 가족 건강 변화의 경우는 44점이었습니다. 직장전환은 36점, 부부싸움 횟수의 증가는 35점, 이사 20점, 수면 습관의 변화 16점, 휴가 13점, 크리스마스 12점, 사소한 법률 위반이 11점으로 조사됐습니다.

그런데 기혼여성들의 명절스트레스가 38.7점으로 나왔습니다. 이 수치는 직장변화(36점), 부부싸움 증가(35점), 이사(20점), 수면 습관의 변화(16점)보다 높게 나온 겁니다. 그러니까 직장 바꾸는 것보다 명절 스트레스가 더 높다는 말입니다. 명절 스트레스를 받느니 차라리 부부싸움 많이 하는 게 낫다, 거칠게 말하면 이렇게도 정리가 됩니다.

38.7점이라는 점수는 평균치거든요. 이 말은 개인의 특성이나 환경에 따라 스트레스 수치도 다르게 나타난다는 얘기입니다. 실제로 어떤 여성은 명절스트레스가 거의 0점으로 나온 경우도 있었지만, 어떤 분은 75점까지 수치가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75점은 이혼(73점)보다 높은 점수입니다. 그만큼 여성들이 명절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엄청나다는 걸 이번 조사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명절이 여성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이유

우리는 여기서 정말 심각하게 한번 고민을 해봐야 합니다. 왜 이렇게 명절이 여성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걸까요.

기본적으로 명절이 평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성들에게 불평등하다는 얘기죠. 한국 사회가 급격하게 변화해도, 가족에 대한 생각이 급속도로 바뀌어도, 명절만 되면 전통적인 가부장 문화가 ‘득세’를 하는 곳이 한국입니다.

이번 설 연휴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음식 하는 거, 대부분 여자들 몫입니다. 남자는 어디를 가더라도 손님 대접을 받고 끊임없이 먹고 마시죠. 그런데 여성은 어디를 가더라도 인사가 끝나면 부엌으로 가서 손님 치를 준비를 해야 합니다. 먹고 마신 다음에 치우는 거라도 남자가 도와주면 그나마 다행인데 이렇게 하는 남자 별로 없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여성 입장에선 엄청난 스트레스죠.


1990년대 후반부터 여성계가 남성 중심의 명절문화를 개선하자는 평등 명절 캠페인을 벌여왔는데 아직 멀었습니다. 남성들이 변화를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명절 때 ‘이게 내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남자는 아마 거의 없을 겁니다. 대부분 ‘여성들의 일’이라고 생각을 할 겁니다. 이른바 ‘일부 깨어있는 남성’이라 해도 “(자신이) 어머니와 와이프를 도와준다”라고 생각하지 “명절 때 장보고 음식 준비하는 일이,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죠.

실제 여성가족부가 최근 실시한 ‘제2차 가족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여성들의 명절 스트레스가 심할 수밖에 없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명절에 주로 일하는 사람으로 ‘어머니, 딸, 며느리 등 여성들이 주로 한다’는 응답이 62.3%로 조사됐습니다. ‘남자, 여자 모두 같이 한다’는 응답은 4.9%에 불과했습니다. 저도 남자지만 참 여성분들에게 면목이 없네요.

명절 때 장보고 음식하는 걸 ‘자신의 일’이라고 여기는 남자가 있을까

현 단계 한국 남성들의 ‘수준’과 각종 조사들을 고려했을 때, 단기간에 남성들의 의식변화를 기대하는 건 무리인 것 같습니다. 이 말은 여성들에게 불평등한 명절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여성들의 명절 스트레스 해소는 가능성이 낮다는 얘기입니다. 사회가 바뀌면 그만큼 명절에 대한 생각도 바뀌어야 하는데 ‘명절’과 ‘명절 노동’에 대한 남성들의 생각 변화는 매우 더딘 게 현실입니다.

물론 기혼여성들이 취미활동을 한다든가, 이런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일시적으로 낮출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명절만 되면 ‘득세하는’ 가부장 문화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여성들의 ‘명절 스트레스’는 계속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예전 같으면 여성들이 그냥 참고 넘어갔는데, 문제는 사회가 변화면서 여성들이 그냥 참는 경우가 없다는 거죠. ‘명절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지 않으면 조만간 ‘사회문제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말입니다. 남성분들, 분발합시다.

※ 이 글은 2011년 2월5일 오전 6시10분부터 7시 사이에 CBS FM(98.1MHz) ‘좋은 아침 최정원입니다’에서 방송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