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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흔적/숫자로 본 한 주간

이집트 상황, ‘남의 나라’ 일로만 치부해선 안 된다

[숫자로 본 한주간] 이집트 사망자 365명과 한국의 민주주의

이번 한 주는 ‘365’라는 숫자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봤습니다.

‘365’는 이집트 민주화 시위로 사망한 민간인 희생자 수를 말합니다. 지난달 말 시작돼 18일 동안 계속된 이집트 민주화 시위로 최소 365명이 사망했다고 이집트 보건부가 발표를 했는데요, 이 수치에는 경찰 사망자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잠정 집계인 데다 민간인만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앞으로 사망자 수는 더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18일 동안 365명이 사망한 이집트 …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

30년 동안 이집트를 통치하던 무바라크가 하야했고, 시민들의 혁명이 승리한 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이집트 시민들의 희생이 적지 않았습니다. 특히 이집트 시민혁명은5`8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민주화라는 험난한 과정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민혁명은 성공했지만 현재 이집트는 군이 전권을 장악한 상황입니다. 군이 민정이양을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구체적인 방법과 시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여전히 이집트 상황이 불안정하다는 거죠. 이 말은 얼마든지 지금보다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고, 앞으로 희생자가 더 나올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 - 이 말이 어떻게 해서 나오게 됐는지 많은 분들이 체감적으로 느꼈을 겁니다. 우리에게도 이집트 시민혁명과 비슷한 민주화 시위가 많았죠. 4·19민주항쟁, 5·18광주민주화운동, 87년 6월항쟁 등등. 아마 이집트 시위를 보면서 한국의 ‘지난 과거’를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이집트 시위를 보면서 우리의 ‘지난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생각했습니다. 이집트 시민혁명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집트 시민혁명이 가능했던 이유가 뭘까요. 많은 분들이 장기간 지속되어 온 무바라크의 강압통치와 정치적 억압에서 원인을 찾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점 외에도 이집트의 경제난이 근원에 자리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집트의 경우 1인당 GDP가 약 2,000달러 수준에 불과합니다. 실업률도 상당히 높습니다. 이집트의 많은 청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도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죠. 결국 경제난과 생활고에 대한 불만이 정치적 억압과 결합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고, SNS와 같은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시민들의 힘이 조직화되면서 시민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죠.

이집트 시민혁명이 가능했던 이유 - 지금 우리의 ‘상황’과 유사하다


그런데 지금 우리 상황을 한번 보죠. 물가 급등하고 있죠, 전세대란은 언제 끝날 지 기약하기 힘듭니다. 대학생들의 취업률은 또 증가하고 있죠. 여기에 또 구제역 파동 때문에 농민들 시름은 깊어만 갑니다. 한마디로 민생 현안이 계속 쌓이면서 서민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는 얘기죠. 하지만 정부의 실효성 있는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 정치적인 자유는 어떠냐. 우리의 상황과 이집트 상황을 단순비교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최소한의 절차적 민주주의를 확립한 사회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월등히 낫다, 이렇게 자신 있게 얘기는 못할 것 같습니다. 유엔이 최근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가 크게 후퇴했다”고 평가했기 때문입니다. 유엔은 이런 내용의 보고서를 오는 6월 유엔에서 발표할 예정입니다.

물론 경제난 지속 그리고 표현의 자유 위축과 같은 상황들이 이집트와 유사한 측면이 있긴 하지만 단순비교를 통해 두 나라의 상황이 비슷하다 - 이렇게 단정 지을 수는 없겠지요. 물가 급등과 전세대란 등으로 지금 서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지만 각종 경제지표는 한국이 이집트보다 훨씬 앞서고 있거든요. 민주주의와 정치적 자유라는 측면에서 봐도 우리가 이집트보다는 분명 앞서 있습니다.


이집트 상황 - ‘남의 나라’ 일로만 치부해선 안 된다

다만 이집트의 상황을 ‘남의 나라’ 일로만 치부해선 안 될 것 같습니다. 최근 우리의 상황을 보면 경제난과 민주주의의 후퇴 조짐이 분명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한국의 표현의 자유가 후퇴했다’는 유엔 보고서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퇴보하고 있다는 걸 국제사회가 공인을 했다는 얘기잖아요.

때문에 이집트 반정부 시위로 365명이 사망했다는 사실에서 우리가 느껴야 하는 건, 민주주의는 완결된 상태가 아니라 지키고 보전하는 게 더 힘들다는 점인지도 모릅니다. 집권 4년차를 맞는 이명박 정부에게 이 부분을 강조해서 들려주고 싶습니다.

※ 이 글은 2011년 2월19일 오전 6시10분부터 7시 사이에 CBS FM(98.1MHz) ‘좋은 아침 최정원입니다’에서 방송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