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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흔적/숫자로 본 한 주간

롯데호텔 19층에서 시작된 MB정부 레임덕

[숫자로 본 한 주간] 정보기관의 정보가 샐 때 레임덕은 시작된다

이번 한 주는 ‘19’를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숫자로 한번 뽑아 봤습니다.

‘19’는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단이 머물렀던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 19층을 말합니다. 이번 주 최대 핫이슈였죠.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단 숙소에 무단침입해 논란을 일으켰는데, 오늘은 롯데호텔 19층에서 발생한 이 사건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얘기해 보고자 합니다.

국제·외교적으로 톡톡히 망신 당한 대한민국


사실 이번 사건은 외교적 결례에다가 어리숙한 첩보활동까지 겹쳐서 국제적으로 대한민국이 망신을 톡톡히 당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국제적’으로 보면 망신인데, ‘국내적’으로 보면 조금 복잡해집니다. 이번 사건의 의미를 살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번 사건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사건을 좀 다르게 볼 수 있는데, 제가 볼 땐 인도네시안 특사단 무단침입 사건의 핵심은 국정원이 왜 이런 무리수를 둔 걸까로 모아져야 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한국 정부와 인도네시아는 T-50 고등훈련기 수출과 관련해 비교적 무난한 협상을 진행 중이었기 때문입니다. 협상 전략 파악을 위해 국정원이 이렇게 무리수를 둘 필요가 없었다는 얘기죠. 그런데 무리수를 두면서 ‘나라 망신’을 자초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걸 파악하려면 국외가 아니라 ‘국내 상황’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첩보전’이 아니라 ‘권력투쟁’에서 벌어진 해프닝 


여러 정황들이 있습니다. 먼저 국정원과 국방부 간 알력설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T-50의 수출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죠. 때문에 정보기관들이 서로 공을 세우기 위해 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이번 사건이 불거졌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일부에선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번 사건이 이렇게 외부에 공개된 건 아직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런 해석도 있죠. 그래서 등장한 게 ‘내부 권력투쟁설’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신임을 받으며 승승장구 해온 원세훈 국정원장을 흔들기 위해 누군가 일부러 이 사건을 외부에 흘렸다는 거죠. 원세훈 원장에 불만을 가져온 국정원 내부 세력과 여권 일부 인사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MB정부에 우호적이었던 조선일보가 이 사안을 단독보도하면서 이슈화 시켰는데 이 점도 유심히 살펴야 할 부분입니다. 이 사안을 외부에 흘린 쪽이 조선일보와 모종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진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어찌됐든 이번 사건이 외부에 낱낱이 공개됐다는 건 그만큼 여권 내부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권레임덕은 ‘정보레임덕’에서 시작된다


‘정보레임덕’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입니다. 사실 이번 사건은 허술한 첩보활동도 논란거리지만, 뒷수습에 더 문제가 많았습니다. ‘첩보 활동’ -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실패한 첩보활동이 외부에 구체적으로 공개가 됐다는 점입니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과 국방부, 경찰이 공조를 해도 모자랄 판인데 전혀 공조가 안됐죠.

보안이 최우선인 정보기관끼리 알력다툼을 벌이고 그것도 모자라 정보가 샌다? 이것이 의미하는 건 한 가지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레임덕이 시작됐다는 거죠.

롯데호텔 19층에서 벌어진 사건을 ‘단순한’ 첩보 활동 실패로 볼 수 없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소공동 롯데호텔은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자 시절 자주 이용했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는데요, 이 호텔 19층에서 발생한 이번 사건이 자신의 레임덕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 수도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됐습니다. 집권 4년차가 시작되는 시점에 말이죠.

※ 이 글은 2011년 2월26일 오전 6시10분부터 7시 사이에 CBS FM(98.1MHz) ‘좋은 아침 최정원입니다’에서 방송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