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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흔적/매체기고

‘안철수 논의’ 이제 다양해져야 한다

격주간 출판전문지 <기획회의> 319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최근 국회를 출입하고 있는 모 방송사 기자를 만났다.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던 중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얘기가 나왔다. 한국 사회에서 ‘안철수 열풍’이 갖는 의미 - 뭐 이런 얘기를 나눴다면 좋았겠지만 우리의 ‘안철수 담론’은 철저히 저차원적이면서 현실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출마할 생각이 있으면 명확히 출마한다고 밝혔으면 좋겠어요. 아 … 정말 안철수 교수 쫓아다니는 게 너무 힘들어.” (모 방송사 기자)

“그 정도에요? 최근 언론담당을 채용했다는 보도도 있던데 …” (필자)

“별 도움이 안 돼요. 어쨌든 대선 유력주자인데, 주요 일정도 파악하기 힘들어요.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도 배포하지 않으니까. 그러다보니 일일이 일정을 파악해서 쫓아다녀야 하거든요. 시간 낭비도 너무 많고, 비효율적이에요.” (모 방송사 기자)

아! 오해는 하지 마시길. 여기에서 언급한 모 방송사 기자는 ‘그렇고 그런 기자’가 아니다. 나름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굳이 분류하자면 ‘개혁적 성향’으로 분류되는 기자다.  

새삼 ‘시시한 잡담’을 서두로 꺼낸 이유는 우리 사회 안철수 원장을 둘러싼 논의가 얼마나 단순하고 획일화 되어 있는 지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일반인이나 나름 전문직으로 평가받는 기자나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나 안철수 원장에 대한 논의수준은 거기서 거기라는, 정확히 말해 별반 수준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왜일까.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안철수 열풍’이 발생한 이후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안 원장을 둘러싼 논의는 다양하게 진행돼 왔지만,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대부분 감성적인 논의 아니면 정치공학 위주였다. 

전자가 SNS에서 트위터리안들 사이에 형성된 논의방식이었다면, 후자는 기존 매체들이 안철수 열풍을 논하는 방식이었다. 특히 주류언론의 안철수 열풍 진단은 4·11 총선 전이나 후나 대부분 ‘박근혜 대세론’에 얼마나 위협적인가 하는 따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안철수 원장과 관련해 엄청난 보도가 쏟아지면서 다양한 분석들이 존재하는 것 같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무척 단순하다. 놀라지 마시라! 안철수 원장 관련기사의 대부분은 대선주자 여론조사가 차지하고 있다. 정리하면 이렇다. ‘풍요 속 빈곤.’

때문에 4월 총선 여파가 마무리된 지금 시점에서 안철수 열풍에 대한 논의와 진단은 이제 질적인 변화를 꾀할 필요가 있다. 감성적인 분석은 좀 더 현실적으로, 정치공학적 진단은 이제 ‘그들만의 리그’에서 벗어나 일상적인 삶의 영역으로 뒤바뀔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기획회의>가 마련한 ‘안철수를 바라보는 49가지 시선’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안철수 현상이 선풍적으로 일어났지만 논의의 다양성이 확보되지 못한 데에는 외부의 책임만 있는 건 아니다. 안철수 본인에게도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는 얘기다.

안철수 원장은 그 열풍의 강도에 비해 검증의 영역에서 ‘특별대우’를 받아왔다. 이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4월 총선을 승리로 장식한 보수진영이 ‘출마 할 건지 안할 건지 밝히라’는 식의 협박성 발언을 지지할 생각은 없지만, 유력한 대선후보로 거론되고 있다면 그에 합당한 태도와 입장을 밝히는 게 온당한 태도다. 비록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대권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안 원장은 애매하다. 위에서 언급한 모 방송사 기자의 하소연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그에게 쏟아지는 과도한 관심에 비해 안 원장은 ‘세상 밖으로’ 내놓은 게 별로 없다. 그의 대선출마 여부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정치권과 주류매체는 일단 논외로 하자. 그런 것과 상관없이 한국사회 구성원이라면 안철수에게 기대하는 역할이 있다. 직접 안철수 입을 통해 그런 역할에 대해 듣고 싶은 열망이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는 SNS에서 자주 통용되는 ‘짧은 문장’과 같은 화법만 구사한다. 그러다보니 그의 어록을 가지고 대다수 매체들이 ‘소설과 흡사한 기사’를 양산하고 있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측근이나 관계자 입을 빌어 전하는 언론의 보도태도도 문제지만, 모호한 입장을 계속 고수하는 안 원장의 태도도 논란의 여지는 있다.

대선 출마에 대한 입장만 해도 그렇다.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면 ‘심사숙고해서 조만간 결정하겠다’는 입장만 밝혀도 불필요한 억측과 소문의 비중은 줄어들 것이다. 기자들 입장에서가 아니라 그의 역할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기대자’의 입장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만약 출마를 한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책과 비전, 철학을 놓고 시시비비를 따지는 건 반드시 필요한 일 아닌가. 그래야 우리 사회에서 진행되는 ‘안철수를 둘러싼 논의’가 지금보다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올라갈 수 있다. 명심하자. 그는 2012년 5월 기준으로 한국의 유력한 대선 주자 가운데 한 명이다.

물론 모든 책임을 안철수 원장에게 돌릴 순 없다. 안철수 열풍을 만든 건 우리 사회의 2030세대를 비롯한 변화를 갈망하는 ‘비주류세력’이었지만 ‘안철수 대통령’이라는 이미지에만 초점을 맞추고 다른 논의자체를 외면해 온 건 다름 아닌 주류 언론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잠재력이 민주당 유력 대권주자를 넘어 박근혜 대세론까지 흔들 기세를 보이자 언론의 초점은 ‘박근혜 vs 안철수’ ‘박근혜 vs 안철수 vs 문재인’ 구도로 국한됐다. 열풍의 근원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그리고 이 열풍이 일시적인 바람에 그치지 않으려면 제도권 내에서 어떤 방식의 논의가 필요한 지 따위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어찌됐든 한 가지 분명한 건 ‘안철수 열풍’ 자체가 가진 힘이다. 안철수의 등장은 그의 대선 출마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 사회 변화와 관련해 밀도 깊게 논의돼야 할 주제라는 얘기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 열풍을 둘러싼 우리 사회 논의지형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데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안철수 논의는 이제 감성과 공학이 아닌 우리 삶의 일상적 영역으로 내려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