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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흔적/핫이슈

조선 오보, SBS ‘장자연 오보’와 비교해보니

요즘 대다수 언론의 관심은 ‘고모씨 성폭행 사건’에 집중돼 있습니다.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했을 때 어느 정도 이해가는 측면도 있지만, 언론이 너무 이 문제에 ‘올인’해 있는 건 아닌지 우려가 되기도 합니다.

특히 피해자 가족의 사생활 보호는 안중에도 없는 듯한 ‘마구잡이식’ 언론보도를 보면 우려를 넘어 분노마저 자아내게 만듭니다. 이들이 쏟아내는 보도가 ‘성폭행 방지를 목적으로’ 하는 것인지 아니면 ‘성폭행 보도를 빙자해 흥미를 유발하는 게’ 목적인지 아리송하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현재 언론보도가 피해자나 가족의 인권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방송3사, ‘암묵적 합의’라도 한 듯 조선일보 오보 다루지 않아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최근 들어 ‘언론자성론’이 조금씩 제기되고 있다는 겁니다. 이미 중앙일보(9월3일)가 피해자와 가족 인권에 무심한 경찰과 언론을 질타했고, SBS도 지난 3일 <8뉴스> 클로징 멘트를 통해 ‘고모씨 성폭행 사건’ 방송보도의 선정성을 우회적으로 비판했습니다. 여전히 많은 언론이 선정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개선이 되고 있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흥미위주 보도가 조금씩 개선되고 있는 건 긍정적으로 평가해줘야겠지만, 제가 보기에 이번 ‘고모씨 성폭행 사건’ 언론보도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게 한 가지 있습니다. 당연히(!) 보도해야 하는, 아니 보도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아이템인데도 방송사들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침묵하고 있는 사안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조선일보 오보’ 문제입니다.

‘조선일보 오보’는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기 때문에 여기서 구체적인 내용을 다시 언급하진 않겠습니다. 다만 분명한 건, ‘조선일보 오보’를 통해 언론이 자성해야 할 부분은 없는지 살펴보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겁니다. 언론의 흉악범 얼굴공개가 가지는 부작용에 대해 논의하는 것 또한 반드시 필요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KBS MBC SBS 등 방송3사는 이 사안에 대해 일제히 침묵했습니다. ‘조선일보 오보’ 문제 자체를 다루지 않았을 뿐더러 이 사건을 계기로 무엇을 반성해야 하고 어떤 문제를 공론화시켜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었습니다. 마치 방송뉴스에서 조선일보는 다루지 않기로 ‘암묵적 합의’라도 한 것처럼 방송3사는 이 문제 자체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동아·조선일보의 ‘흉악범 얼굴공개’ 공론화 시켜야 

 

한겨레가 지난 3일 사설에서 지적했듯이 ‘조선일보 오보’는 “국민의 알권리를 빌미로 흉악범 사진을 일삼아 공개해온 ‘범죄 상업주의’와 무리한 특종 경쟁이 빚어낸 참사”라고 보는 게 온당합니다. 때문에 “이번 오보 사태를 계기로 피의자 얼굴 공개가 과연 알권리에 해당하는지, 범죄 예방에 실질적인 효과가 있는지 등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이뤄져야” 하는 게 다음 순서일 겁니다.

하지만 경향신문과 한겨레를 비롯해 오마이뉴스·프레시안·미디어오늘 등 일부 인터넷언론만 ‘조선일보 오보’를 주목했습니다. 이른바 주류언론 대부분은 이 사안 자체를 다루지 않았고 때문에 당연히(!) 수반되어야 하는 언론의 자성도 없었습니다. 흉악범 얼굴공개가 가지는 부작용에 대한 논의? 없었습니다.

조선일보 오보에 대한 한국 주류언론의 침묵도 문제지만 저를 더 씁쓸하게 만들었던 건 조선일보 평기자들의 반응이었습니다.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9월4일까지 조선일보 내부에서 평기자들이 이번 오보 사건과 관련해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물론 조선일보 평기자들이 이번 오보와 관련해 아무 반응이 없다고 단정할 일은 아닙니다. 앞으로 조선일보가 내놓는 후속대책에 따라 평기자들의 반응이 달라질 수도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자신들이 소속된 언론사에서 대형오보 사건이 발생한 지 4일이나 지났는데 아직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상황, 솔직히 잘 이해가 가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조선일보가 이 문제에 미진하게 대응할 경우 누구보다 심각하게 문제제기 해야 할 ‘당사자들’이 바로 평기자들이기 때문입니다. 

‘SBS 장자연 가짜편지’ 오보 때 조선일보는 어떤 입장이었나

 

민변 언론위원장인 김준현 변호사는 지난 4일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한 사람의 인생을 파괴한 이 사건은 조선일보가 문을 닫아야 할 만큼 큰 사건”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무리한 특종욕심이 평범한 시민을 흉악범으로 둔갑시켰고, 한 사람의 인생에 지워지지 않을 오점을 남겼다는 점에서 조선일보 책임은 막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조선일보가 이번 오보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느냐, 이런 반론을 제기하는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조선일보 사과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과가 적절하고 온당했는지에 대해선 별도의 논의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선뜻 이해가 안 가시는 분들을 위해 ‘비교 자료’ 하나를 제시하겠습니다. 지난 2011년 3월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SBS의 ‘장자연 오보’ 사건을 기억하는지요. SBS가 이른바 ‘장자연 편지’를 입수해 보도하면서 ‘장자연 사건 재수사’ 요구로까지 파문이 확산된 이 사건은, 하지만 SBS가 근거로 제시한 편지가 결국 장씨와 전혀 관계없는 전모 씨의 위작으로 결론이 나면서 오보로 기록된 사건입니다.

당시 SBS보도가 오보로 판명나긴 했지만 ‘장자연 사건’에 대한 경찰의 부실수사 논란이 불거지면서 재수사 요구가 거세게 일었습니다. 특히 ‘조선일보 사주 일가’와 관련된 부분까지 언급되면서 상당한 파문이 일었지요.

‘SBS 장자연 오보’에 대해 조선일보는 어떤 입장을 보였을까요. 1면 사이드 톱(2011년 3월17일자)으로 SBS 오보사건을 전한 조선일보는 12면과 13면 전면을 할애해 이 문제를 집중 조명했습니다. SBS가 앵커멘트를 통해 오보를 시인, 사과한 것을 두고 조선일보는 ‘형식적 유감’ ‘무책임한 SBS’와 같은 단어를 사용하며 SBS를 맹렬히 비난했습니다.

 

‘SBS 장자연 오보’가 경영진 문 닫을 사안이면 이번 조선일보 오보는 …

조선일보는 2011년 3월17일자 13면 <“선진국 언론이라면 경영진 사퇴할 일”>이라는 기사에서 한 언론학자 말을 인용, “영국이나 일본에서는 이 정도 초대형 오보를 내면 해당 방송사가 대국민사과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경영진이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보도했습니다.

‘그랬던’ 조선일보가 자신들이 저지른 ‘고모씨 성폭행 사건’과 관련한 초대형 오보 사건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나요. “한 사람의 인생을 파괴한 이 사건은 조선일보가 문을 닫아야 할 만큼 큰 사건”이지만 조선일보는 지금까지 ‘짤막한’ 사과문 하나 내보낸 것이 전부입니다.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조선일보 오보 사건의 피해자 A씨는 “피해보상금보다 중요한 것은 오보에 대한 진정한 사과”라는 의견을 밝히고 있지만, 아직 이에 대한 조선일보 측의 공식입장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SBS 장자연 오보’에 대해선 경영진 사퇴까지 운운했던 조선일보가 정작 자신들의 초대형 오보 사건에 대해선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겁니다.

허긴 조선일보만 탓할 일은 아닙니다. ‘SBS 장자연 오보’ 사건 때는 수많은 매체들이 온갖 보도들을 쏟아내며 ‘SBS 책임론’을 거론했지만, 이번 조선일보 오보의 경우 극히 일부 매체만 조선일보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SBS 장자연 보도’는 오보로 판명나긴 했지만 경찰 부실수사에 대한 문제제기와 진실규명이라는 최소한의 ‘공익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조선일보 오보는 그런 공익적인 목적보다는 ‘범죄 상업주의’에 편승한 유력 언론의 무리한 특종 경쟁이 빚은 참사라는 시각이 우세합니다. 그 과정에서 멀쩡한 시민을 흉악범으로 둔갑시켜 놓았던 것이구요.

'죄질‘로 따지면 조선일보 오보가 더 ’나쁜 죄질‘에 속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대다수 언론은 이상할 정도로 조선일보 오보에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조선일보는 성역인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