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3사,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자 뒤늦게 ‘호들갑’ 보도
정부가 8일 경북 구미 불산가스 누출사고 현장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뒷북대응’ ‘늑장대응’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지난달 27일 사고가 발생한 직후부터 지금까지 정부는 특별한 대책 없이 허둥지둥 하는 모습을 보였고, 결국 피해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피난 행렬을 떠나기까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8일과 9일 주요 언론들이 정부의 늑장대응을 일제히 비판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언론의 이런 모습을 보는 게 불편합니다. 특히 방송3사가 구미 불산누출 사고와 관련해 정부의 뒤늦은 대책마련을 뒷북대응이라며 강도 높게 지적하는 걸 보면 쓴 웃음이 나옵니다. 구미 불산누출 사고와 관련해 언론 특히 방송3사 또한 정부의 태도와 그렇게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늑장대응’을 했다면 방송뉴스는 ‘늑장보도’를 했다는 얘기입니다. 오늘(9일) 뉴스브리핑은 구미 불산누출 사고와 관련한 방송3사 보도를 점검해 보고자 합니다.
피해 발생한 지 열흘 째 되던 날 KBS ‘뉴스9’ 탑 기사로 등장
구미국가산업단지 제4단지 공장에서 불산가스 유출사고가 발생한 건 9월27일입니다. 하지만 정부가 범정부 차원의 차관회의를 열고, 정부합동조사단 파견을 결정한 것은 지난 4일입니다. 사고가 발생한 지 일주일이 지난 뒤에야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는 얘기죠. 정부가 이번 사건을 얼마나 안이하고 무책임하게 대응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부가 이렇게 불산가스 유출사고를 ‘나 몰라라’ 하는 피해지역 주민들은 어떤 상황에 놓였을까요. 8일 < 연합뉴스>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피해 주민은 크게 늘어났고, 농작물은 고사했으며, 가축은 이상 증세를 보였습니다.”
한심스러운 건 “피해 규모가 확산되며 2차ㆍ3차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도 정부가 피해 규모를 축소했다” 점입니다. 지난 4일 공장근로자, 주민, 경찰 등 1천여 명이 병원을 다녀왔지만, 정부는 가스누출 공장 직원 5명이 사망했고, 18명이 경상을 입었다고만 발표했습니다. 사망자 5명, 입원 7명을 포함해 이미 치료를 받은 환자가 3천명을 넘어선 상황에서 나온 정부 발표가 이렇습니다. 구미 불산누출 사고와 관련해 ‘정부’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그럼 언론 특히 방송뉴스는 어땠을까요. 방송뉴스도 정부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고가 발생한 지 열흘째가 되어서야 KBS < 뉴스9>에 탑 기사로 등장한 게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정부가 구미 사고현장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한 8일, 방송3사는 메인뉴스에서 탑 기사로 일제히 보도했지만 이전까지 ‘구미 불산가스 누출 사고’는 지역에서 발생한 수많은 사건 사고 가운데 하나였을 뿐입니다. 방송3사의 뒤늦은 ‘정부 질타’를 제가 불편해 하는 이유입니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기까지 방송은 구미를 사실상 외면했다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방송도 문제지만 조중동과 같은 수구언론이 방송보다 더 심하게 구미 불산가스 누출을 외면하지 않았느냐고. 맞습니다. 조중동은 거의 외면하는 수준의 보도태도를 보였고, 대다수 언론이 정부가 피해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기 전까지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일부 언론을 제외하곤 대다수 언론이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지상파 방송3사가 져야하는 책임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피해지역 주민들이 피해상황과 정부대책 등을 접할 수 있는 창구가 신문이나 인터넷보다는 방송이 절대적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사고발생 직후 방송뉴스가 제대로 된 보도를 통해 피해상황을 면밀히 보도하고, 정부의 안이한 대응을 강도 높게 질타했다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악화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KBS MBC SBS 방송3사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지역에서 발생한 수많은 사건 사고 가운데 하나로 ‘구미 불산가수 누출사고’를 전했을 뿐입니다. 정말 그랬느냐구요? 한번 보시죠. 방송사들이 이번 사고를 어떻게 보도했는지.
9월27일(목) 사고 발생 당일 |
불산가스 누출사고가 서울 주변이나 수도권에서 발생했다면 …
피해주민 환자수가 9백 명을 넘어서고, 정부가 구미 피해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한다(10월4일)고 했을 때도 방송사들은 이번 사건을 주요하게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하루 만에 피해지역 주민 1천여 명이 병원을 찾았을 때(10월5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주민들이 집단 이주를 시작했을 때(10월6일)에야 비로소 ‘잠깐’ 탑 기사로 등장했지만(KBS < 뉴스9>) 피해환자가 3천 명을 넘어서고 3차 피해가 우려되는 시점(10월7일)에선 다시 ‘사건 사고기사’로 돌아갔습니다.
불산가스 누출사고의 심각성을 방송사들이 몰랐던 걸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미 방송사들이 전한 리포트에 이번 사고가 얼마나 심각한 지가 언급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불산은 독성이 강한 자극성 액체이고, 피부에 닿거나 공기 중에서 흡입해도 치명적일 수 있다”(10월4일 SBS < 8뉴스>)는 보도까지 나올 만큼 이번 사고의 심각성에 대해선 방송사들 또한 알고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상황의 심각성에 비해 방송사들의 보도태도는 안이했습니다. 아니 한심했습니다. 피부에 닿거나 공기 중에 흡입해도 치명적일 수 있는 사고가 발생했고, 피해환자가 3천 명을 넘어선 상황에서도 메인뉴스 머리기사로 등장한 건 단 한 번 뿐입니다. 정부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자 그제서야 방송3사는 일제히 메인뉴스 탑 기사로 다룹니다. 뒤늦은 호들갑이자 ‘뒷북보도’의 전형입니다.
저는 방송사들의 이런 보도태도를 볼 때마다 완고한‘서울 중심주의’의 폐해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혹자는 구미 지역이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지지기반이어서 언론이 주요하게 보도하지 않았다 - 이렇게 ‘정치적인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만, 저는 그것보다는 언론의 ‘서울 중심주의’가 낳은 폐해라는 해석에 더 방점을 찍고 싶습니다. 만약 불산가스 누출사고가 서울 주변이나 수도권에서 발생했더라도 언론이 이런 식의 태도를 보였을까요. 저는 가능성 ‘제로’라고 봅니다.
피해주민들에 대한 실태 및 역학조사, 제대로 되고 있는지 감시하는 건 언론의 역할
마지막으로 하나 덧붙일까 합니다. 언론보도 특히 방송뉴스의 경우 현재 피해 지역 상황전달에만 치중하고 있는데 피해지역 주변 실태조사, 주민들에 대한 역학조사를 비롯해 생태계 조사에 대한 관심 쪽으로 초점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자(9일) 경향신문을 보면 “불산 노출 주민과 소방관들의 외상후증후군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런 부분에 대해 정부가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는 지에 대해 구체적인 점검이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정부가 피해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한 날 메인뉴스에서 탑 기사로 다뤘으니 ‘할 일 다했다는 식’의 태도를 보여선 곤란합니다. 이번 사태에 대한 철저한 책임 소재 규명과 엄중한 문책을 요구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점검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KBS MBC SBS … 방송사들이 과연 잘 할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보인 태도를 보면 영 … 믿음과 신뢰가 가지 않습니다. 제 솔직한 심정이 그렇습니다.
구미 불산가스 누출에 ‘정부’도 없었고 ‘언론’도 없었다 - 제발 이런 오명을 남기진 말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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