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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흔적/핫이슈

‘삼성 이건희 보도’와 ‘반값 등록금 보도’의 닮은 점

[핫이슈] 구조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는 건드리지 않는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말했다. “삼성그룹 전체에 부정부패가 퍼져 있다.” 향후 감사 기능 강화를 통해 삼성 내부 비리와 부정부패를 근절하겠다는 방침도 시사했다.

이 회장 발언이 공개된 후 한국 사회는 ‘이건희 회장 의중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삼성 내부는 물론 재계와 언론, 학계 등에서 이 회장 발언 의미를 읽어내느라 바빴다. 이 과정에서 확인된 것 하나. 한국에서 삼성에 대한 프레임은 이건희로 시작해서 이건희로 끝난다는 점이다. 삼성은 그 다음이다.

‘삼성 이건희 보도’와 ‘반값 등록금 보도’의 닮은 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 대한 언론의 프레임 작동방식은 묘하게 반값 등록금 보도와 닮아 있다. 대다수 언론이 이 회장 발언에 대한 주목도와 비중을 높이면서 삼성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처럼 보도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일종의 공통된 법칙이 있는데 그건 핵심은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 조선·중앙일보가 등록금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적절히 해소하면서 복지논쟁으로 논의가 확산되지 않도록 사학재단을 정조준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사실 이건희 회장의 부정부패 척결 발언은 이전부터 제기돼 왔던 내용이다. ‘삼성에 덜 종속된’ 일부 언론과 시민사회단체들이 그동안 줄기차게 정부나 기업에 요구해 온 내용이란 얘기다. 이 회장이 말한 부정부패가 뭘까. 하청업체로부터 접대와 향응은 물론 납품단가의 일부를 커미션으로 돌려받는 관행 등을 말한다. 이런 저런 내용을 걷어내고 간단히 요약하면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불공정 거래 관행을 개선하겠다는 말과 같다.

삼성과 이건희 회장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사안 자체만 본다면 이번 발언을 부정적으로 평가할 필요는 없다. 솔직한 내 생각은 그렇다. 자체 감사결과를 대외적으로 공개하며 부정부패를 근절하겠다는데 그걸 굳이 비난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탈법과 불법을 저지른 불공정 사회의 장본인이 이건희 회장이라는 지적, 이른바 ‘이건희 회장 자격론’도 맞는 말이긴 하다. 그런데 ‘그 장본인’이 앞으로 부정부패를 뿌리 뽑겠다고 선언을 했다면 그건 권장할 일이지 말릴 사안은 아니다.

‘삼성 프레임’이 작동하는 방식 - 이건희로 시작해 이건희로 끝난다

문제는 언론의 호들갑과 과잉평가다. 아직 이 회장 발언 외에 구체적인 조치가 나온 게 없고 아무것도 실행된 게 없다. 발언 자체를 폄하할 필요는 없지만 필요 이상 의미부여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한국의 많은 삼성 종속언론’은 발언 몇 마디로 이건희 회장을 개혁 전도사로 추켜세우더니 ‘졸지에’ 삼성직원들을 ‘개혁대상’으로 만든다. 오너의 부패척결 선언 하나로 삼성은 한국에서 윤리의식이 가장 확립된 최고의 기업이 되고, 나머지 기업들은 삼성을 본받아야만 되는 신세로 전락된다. 

이런 ‘삼성 프레임’이 갖는 폐해는 의외로 심각하다. 이 회장의 ‘선언’을 ‘실행’으로 만들고 ‘감시 대상’을 ‘개혁 주체’로 둔갑시키기 때문이다. 이 회장의 선언이 제대로 실행될 지는 아직 미지수. 때문에 실행 여부에 대한 언론의 감시는 필수적이다. 이건희 회장의 ‘부패척결’ 선언이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불공정 거래 관행을 개선시키는 방향으로 연결되는지도 면밀히 살펴야 한다. 발언은 긍정적으로 평가하되 제대로 실행하는 지 여부에 대한 감시가 필요하단 얘기다.

그런데 한국 언론이 작동시키는 ‘삼성 프레임’에서는 이 부분을 절대 주목할 수 없다. 삼성 내부비리나 문제점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만, 삼성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은 이건희 회장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언론이라면 삼성의 이런 기업문화를 문제 삼고 비판해야겠지만 상당수 언론은 이걸 ‘삼성 프레임’으로 설정한다. 이러니 삼성 관련 보도가 이건희 회장에서 시작되고 이건희 회장으로 끝나는 것이다.

구조적인 문제와 본질적인 사안은 절대 짚지 않는다

사실 이 회장의 발언을 이 정도로 주목했으면 그동안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불공정 거래 관행이 어느 정도 심각한 지를 다루는 기사가 나와 줘야 한다. 삼성 협력업체들에 대한 기획취재를 통해 ‘그들’이 이번 선언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앞으로의 전망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조명하는 기사도 나와야 한다.

삼성과 이건희 회장이 아닌 중소기업과 협력업체의 시각에서 이번 선언을 되짚어보는 기사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대다수 언론은 절대 이런 보도를 내보내지 않는다. 이건희로 시작해 이건희로 끝난다. 마치 조선·중앙일보가 ‘반값 등록금’ 보도에서 사학재단 책임론을 주장하면서도 본질적인 사학개혁이나 족벌체제로 운영되는 사학재단의 비리를 조명한 적이 거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구조적인 문제와 본질적인 사안은 절대 짚지 않는다 - ‘삼성 이건희 보도’와 ‘반값 등록금 보도’의 닮은 점이다. ‘삼성 이건희 보도’에서 언론이 설정한 프레임에 속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진(위)=동아일보 6월10일자 1면>
<사진(중간)=동아일보 6월9일자 2면>
<사진(아래)=조선일보 6월13일자 3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