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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흔적/핫이슈

야당 후보에 대한 ‘폭력사건’이 스케치 기사?

점점 노골화 되는 방송3사의 ‘친박-반문-비안’ 프레임 구도 


야당 대선후보에게 물병이 날아들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취재기자와 야당 당직자가 물병을 맞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야당 대선후보에게 의자를 던지려다가 경호원들로부터 제지를 당했습니다. 한 남성은 야당 대선후보를 향해 물을 뿌렸고, 해당 후보는 안경에 물방울이 튀기도 했습니다. 


위 상황은 14일 서울 용산구 효창동에서 열린 ‘이북 5도민 체육대회’ 현장에서 발생한 ‘사건’을 거칠게 정리한 것입니다. 봉변을 당한 사람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였고, 문 후보에게 폭력을 시도한 사람은 ‘이북 5도민 체육대회’에 참석한 일부 이북 도민들이었습니다. 


‘일부 이북도민’의 폭력 시도 … 기자와 야당 당직자 부상


< 오마이뉴스>가 보도한 내용을 보면 당시 상황은 말 그대로 ‘살벌’했던 것 같습니다. 말이 ‘살벌’이지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야당 대선후보에 대한 폭력을 시도한 ‘사건’이라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특정 대선후보에 대한 반대 입장표명이나 단순 야유가 아니라 명확히 물리적 폭력을 시도했기 때문입니다. < 오마이뉴스>가 보도한 내용을 일부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가 봉변을 당했다. 14일 서울 용산구 효창동에서 열린 ‘이북 5도민 체육대회’에 참석한 문 후보는 일부 이북 도민들에게 물세례를 받았다. 문 후보는 관중석으로부터 날아온 물병을 황급히 피하기도 했다. 또, 한 이북도민은 문 후보를 향해 의자를 던지려다가 경호원들로부터 제지를 당했다 … 특히 평안도와 강원도 지역 이북도민들이 모인 관중석에 앉은 일부 참석자들이 문 후보를 향해 물병을 투척했다. 이 과정에서 기자와 당직자가 물병을 맞는 사고가 발생했다. 한 남성은 문 후보를 향해 물을 뿌렸고, 문 후보 안경에 물방울이 튀기도 했다. 관중석에서는 ‘문재인이 어디라고 와’라며 고함을 질렀고, 이에 대해 ‘잘한다’며 부추기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물론 이런 ‘물리적 폭력’을 시도한 건 일부 이북도민들입니다. < 오마이뉴스>가 보도한 것처럼 “(문 후보에 대한) 비난 여론이 모든 이북도민들의 의중을 반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현장에서 ‘일부 이북도민들’이 상당히 심각한 수준의 폭력을 문재인 후보에게 시도했다는 것이고, 문 후보에게 ‘불상사’가 발생하진 않았지만 이 과정에서 일부 기자와 당직자가 부상을 당했다는 점입니다. 


문재인 후보나 민주통합당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문제 삼지 않고 그냥 넘어가려는 것 같습니다. 이해합니다. 문재인과 안철수 후보를 향해 ‘친북-종북세력’이라 공격하는 일부 이북 도민들의 과격한 생태를 문제 삼아봤자, 대선을 앞두고 불필요한 논쟁에만 휩쓸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언론의 경우는 좀 달라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문 후보나 민주통합당은 이번 사건을 개의치 않고 넘어갈 순 있어도, 언론은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짚고 ‘일부 이북도민들’의 빗나간 행태를 정확히 지적하고 비판하는 게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특정 대선후보에 대한 폭력시도는 민주주의 근간을 훼손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야당 후보에 대한 폭력사건을 현장 스케치 기사로 대신한 KBS MBC SBS


그런데 저는 이번 사건을 보도한 방송3사의 14일 메인뉴스를 보면서 한편으론 어이가 없고 또 한편으론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유력 야당 대선후보에 대한 폭력 사건이 여야 대선 후보 3명의 하루 스케치 기사로 ‘대체’됐기 때문입니다. 폭력이나 봉변이라는 단어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방송3사가 선택한 용어는 ‘야유’ ‘물병투척’ ‘거센 항의’ 등이었습니다. 


특히 SBS < 8뉴스>가 가장 심각했습니다. 당시 상황을 적절하게 반영하지도 않았고, 문재인 후보에 대한 폭력 사건 자체를 ‘왜곡되게’ 전달했습니다. 영상도 편파적이었고, 앵커멘트와 기자 리포트 내용 역시 왜곡보도에 가까웠습니다. 한번 보시죠. 


(SBS 8뉴스) ‘휴일 잊은 표심잡기’ 중에서

(앵커 멘트) 

“대선후보들은 휴일에도 쉴 틈이 없죠. 세 후보 모두 표심잡기에 바쁜 하루를 보냈습니다.” 


(기자 리포트) 

“내일(15일)부터 전국 순회 '국민행보' 투어에 들어가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유일한 휴일 일정으로 이북 5도민 체육대회를 찾았습니다. ‘투철한 안보를 바탕으로 평화통일을 이루겠다’며 실향민들의 표심을 공략했습니다.” 



“문재인, 안철수 후보도 이북 5도민 체육대회에 참석했지만 야유가 나오거나 물병이 날아들어 환영을 받은 박근혜 후보와 대조를 이뤘습니다.” 



물론 이북 도민들이 박근혜 후보에게 호의를 보인 반면 상대적으로 문재인-안철수 후보에게 ‘격한 반응’을 보인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사실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이북 도민들은 안보 문제에 있어 반공에 가까운 노선을 표방해 왔고, 이를 바탕으로 보수적인 투표 행태를 보여 왔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이번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게 가장 적극적인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게 당연할 수밖에 없는 거지요. 


적어도 언론이라면 당시 현장에서 발생한 상황을 “문재인, 안철수 후보도 이북 5도민 체육대회에 참석했지만 야유가 나오거나 물병이 날아들어 환영을 받은 박근혜 후보와 대조를 이뤘다”는 식으로 보도하면 곤란하다는 얘기입니다. 안보나 대북 문제에 있어 ‘상당히 보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이북 도민 행사에서 환영을 받는 건 당연히(!) 박근혜 후보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언론이 주목하고 문제 삼아야 할 것은 자신들의 입장과 배치 또는 상반된다고 해서 특정 대선후보에게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려한 일부 이북도민들의 빗나간 행태입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여야를 막론하고 특정 대선후보에 대한 폭력시도는 민주주의 근간을 훼손하는 일이고, 일부 이북도민들의 문재인 후보에 대한 빗나간 행태는 분명 비판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방송3사는 이들의 엇나간 행태에 대해선 철저히 침묵합니다. 비판해야 할 대상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문재인 후보를 중심에 놓은 채 ‘물병이 날아들었다’ ‘환영을 받은 박근혜 후보와 대조를 보였다’는 식으로 보도합니다. 이건 명백한 사실 왜곡이면서 박근혜 후보에게 치우친 편파보도입니다. 


만약 진보단체 행사에서 박근혜 후보가 봉변을 당했다면 … 


한심한 건, SBS < 8뉴스>만이 아닙니다. 14일 KBS < 뉴스9> MBC < 뉴스데스크> 모두 ‘문재인 후보에 대한 폭력 사건’을 ‘대선 후보 3인 하루 동정기사’로 대체했습니다. 박근혜 후보에게 압도적으로 우호적일 수밖에 없는 행사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는데, 별일 없었다는 식으로 보도합니다. KBS MBC 보도 내용을 일부 요약합니다. 


(KBS 뉴스9) ‘투철한 안보, 무상교육, 재벌 개혁’ 중에서 

“박근혜 후보는 이북 5도민회 관계자들과 만나 투철한 안보로 평화 통일을 이루는데 앞장서서 열심히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또, 평화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문재인, 안철수 후보는 일부 참석자들의 야유를 받았고 문 후보는 특히 물병 투척을 받기도 했습니다.” 




(MBC 뉴스데스크) ‘통합행보 정책발표’ 중에서 

“대선후보 3명이 시간차를 두고 참석한 이북 5도민 체육대회에서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는 일부 참가자들로부터 대북관과 관련해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습니다.” 




만약 이북 도민들의 행사가 아닌 진보적인 단체 행사에서, 아니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행사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면 방송3사의 보도태도는 어땠을까요. 지금처럼 동정이나 스케치 기사로 처리하면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넘어갔을까요.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방송3사가 지금까지 보인 행태를 보면, 저는 별도 리포트로 주요하게 이 문제를 집중 보도했을 거라는 데 ‘한 표’를 던지고 싶습니다. 


이번 보도를 보면서 가장 우려스러운 건, 방송사들의 ‘친박-반문-비안’ 프레임 구도가 점점 강화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의 근거 없는 NLL 주장과 말 바꾸기에 대해 침묵하는 것도 그렇고, 2008년 태광실업 세무조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겨냥한 동영상이 공개됐는데도 이와 관련한 보도는 KBS를 제외하곤 찾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이번 문재인 후보 폭력사태에 대한 ‘왜곡보도’까지 …. 


점점 노골화 되는 방송3사의 ‘친박-반문-비안’ 보도행태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신문을 통해 조중동을 보는 독자는 점점 줄어들지만, 방송뉴스를 보는 ‘중도층’과 ‘무당파층’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조중동의 왜곡보도도 문제지만 방송3사의 ‘편파보도’가 더 위험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