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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흔적/곰돌카페

우리는 ‘장애인 편견’에서 얼마나 자유로울까

[영화로 세상보기] 영화 ‘도가니’ 열풍에서 생각해봐야 할 것들

고민 끝에 영화 <도가니>를 봤습니다. 먼저 본 사람들이 만류하더군요. 한국이라는 사회, 남자라는 종족. 이런 것들에 대해 회의를 느끼게 만든다면서. 공지영 작가의 소설을 이미 읽었던 터라 주변의 우려를 가볍게(?) ‘무시’했는데 착각이었습니다. 상흔이 오래 갈 것 같습니다.

아내와 함께 영화를 봤습니다. 둘 다 기분이 우울해졌습니다. 많이. 암담했고 슬펐습니다. 공유 씨가 무대 인사 와서 했던 말 - 영화를 보고 나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영화 보고 나서 술 너무 많이 드시지 마세요.” 그랬습니다. 정말 술 한 잔 걸치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그랬습니다.

장애인이 차별받는 사회에서 ‘나’는 얼마나 정의로운가

영화를 보고 나서 많은 분들이 가해자와 ‘공범들’을 비난합니다. 분노합니다. 아동 성범죄 공소시효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부터 광주 인화학교 폐교 요구까지 비난과 분노의 형태는 다양합니다.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과 검사, 관할 교육청과 사법부 그리고 한나라당까지 모두 도마 위에 올려놓고 책임의 유무를 따집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그런데 영화의 어떤 장면을 보면서 저는 ‘멈칫’ 했습니다. 뭐랄까 … 장애인이 차별받는 사회에서 ‘나’는 얼마나 정의로울 수 있는가 - 이런 것들에 생각이 미쳤기 때문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영화를 보는 ‘시선’이 갑자기 180도로 달라지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주인공 공유나 정유미에 감정 이입을 하면서 영화를 봤을 겁니다. 저 역시 그 장면을 보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공유와 정유미의 ‘시선’으로 영화 속 자애학원의 문제점을 바라봤고, 가해자들의 범죄에 분노했으며, 성폭행 당한 장애아동들의 아픔을 어루만졌습니다. ‘나’는 바람직하고 상식적이며 심지어 정의롭기까지 한 ‘모범시민’이니까요.

그런데 이게 혼자만의 착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영화 <도가니>에서 자애학원 교장과 행정실장 못지않게 악역으로 나오는 교사 박보현이 있습니다. 그는 어린 남자아이들을 성폭행하고 무자비한 폭력을 일삼는 정말 ‘쓰레기 같은’ 인간입니다.

우리는 ‘무관심한’ 시민이나 기자가 아니었을까

그런 박 교사가 어린 남자아이를 교무실에서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저는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없더군요. 폭행 장면이 끔찍하기도 했지만 저를 더 기겁하게 만들었던 건, 아무 일 없다는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자기 할 일(?)만 하는 교사들이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솔직한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도가니 열풍’이 불기 전까지 저를 비롯한 우리 자신들의 모습이 그랬으니까요. 몇 초에 불과했지만 지금껏 이 장면이 계속 뇌리를 맴도는 이유입니다.

영화에서는 공유가 박보현 선생의 폭행을 소극적으로 만류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만약 내가 비슷한 상황에 처한다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교사에 포함되지 않을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저는 자신 있게 ‘그렇다’라는 대답을 할 수가 없더군요. 이 장면 이후 저는 주인공 공유에 감정이입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지막 장면도 뇌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가해자에 대한 사법부의 집행유예 판결 이후 ‘억울한 사고’(스포일러 방지용으로 이렇게 표현합니다)를 당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법원 앞에서 가해자 처벌과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장애인·시민단체들의 집회가 열리는데 이때 제 눈에 들어온 건, 물대포를 맞는 시위참가자 뒤에서 이 상황을 담담히 바라보고 있는 시민들이었습니다.

흐릿하게 잡혀서 자세히 봐야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지만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마음 한 편이 무척 아팠습니다. 공유가 ‘죽은 아이’의 영정을 들고, 물대포를 맞으면서 ‘이 아이의 이름을 기억해 달라’고 울부짖을 때, 그 앞에서 지켜만 보고 있던 시민들. 그것은 어쩌면 저 자신의 다른 모습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영화 속 집회현장에서 기자들도 보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언론도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장애인 편견’에서 자유로운가

지금은 이렇게 광주 인화학교에서 벌어진 일에 분노하고 있지만 과거의 나는, 2005년의 나는, 무심했던 시민들 가운데 한 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 중심의 이슈에만 주목하면서 지역의 무자비한 인권침해 사례는 주목하지 않는 ‘서울 사고방식 중심의 기자’였다는 생각도 마음 한 편을 아프게 하더군요 -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난 뒤 지금까지 마음이 계속 불편합니다.

이런 저런 복잡한 상념에 빠져 있는데 오늘자(3일) 경향신문 12면에 이런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사 강요, 왕따 … 장애인에 ‘편견의 사회’>.

‘묻힐 뻔 했던’ 사안이 늦게나마 영화를 통해 재조명되는 ‘도가니 열풍’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 아직 희망은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지적장애 2급 아들을 둔 같은 아파트단지의 장애인 가족에게 강제 이사를 강요하는 사회가 우리 사회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장애인 편견’에서 자유로운 걸까요. 장애인이 차별받는 사회에서 우리는 얼마나 정의로울 수 있는 걸까요. 영화 <도가니>는 제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이미지(위/중간)=영화 '도가니'>
<이미지 (아래)=경향신문 2011년 10월3일자 1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