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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흔적/곰돌카페

김구라의 가장 큰 적은 ‘점잖은’ 김구라다

[캡처에세이] MBC 복귀한 김구라, ‘쫄지 말고’ 그냥 가라

“MBC를 욕하진 않았다. 하지만 한 개인에 대한 섭섭함은 있었다.”

12일 MBC <라디오스타>에 복귀한 방송인 김구라 씨가 한 말이다. 김 씨가 말한 ‘한 개인’이 누굴까. 김재철 전 MBC사장을 말한다. 이날 게스트로 출연한 김신영 씨가 “여러 차례 복귀가 무산되면서 MBC에 욱하는 마음이 있었을 텐데 MBC 욕하지 않았나”라고 묻자 이렇게 답한 것.

김구라 씨는 지난해 4월 종군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성매매 여성에 비유한 과거 인터넷 방송 발언이 알려지면서 그동안 출연했던 방송프로그램에서 모두 하차했다. 김 씨는 파문 발생 이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쉼터인 나눔의 집을 방문, 할머니들에게 사과했고 진정성을 인정받아 지난해 9월 케이블과 종편 등 방송에 복귀했다. 지난 4월에는 KBS 2TV <이야기쇼 두드림>에 출연했고 5월에는 SBS <화신>에 모습을 드러내며 지상파에도 복귀했다.

 

하지만 MBC 복귀만큼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김 전 사장이 MBC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지난해 10월 김구라 씨의 방송출연에 부정적 의견을 밝혔기 때문이다. 당시 김 전 사장은 방송문화진흥회에 출석해 “강호동 복귀는 괜찮지만 김구라는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김구라 씨의 MBC 복귀무산에 김 전 사장의 의지가 반영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 이유다.

12일 <라디오스타>에서 김구라 씨의 ‘김재철 사장 관련 발언’을 주목했던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사실 김 씨의 이날 발언은 용기가 필요한 부분이었다. 김재철 전 사장 체제에서 ‘잘 나갔던 사람들’이 아직 MBC에 건재하고 있는 데다 최근 김 전 사장을 라디오에서 풍자했다는 이유로 담당PD가 징계까지 당하는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구라 씨는 지난 4월 자신이 출연하고 있던 JTBC <썰전>에서 김재철 전 MBC 사장 사퇴와 관련해 속내를 우회적으로 내비친 바 있다. 이날 김 씨는 “김재철 전 사장 사퇴 후 문자가 빗발쳤다”면서 “축하한다, 잘됐네 등의 문자가 이어졌다”고 말했다. 김 씨는 “조만간 뭐 (MBC에) 제 자리가 있지 않을까요”라며 MBC 복귀에 대한 희망을 슬쩍 피력하기도 했다.

 

사실 당시만 해도 김구라 씨의 MBC복귀 가능성을 예견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김구라 본인 스스로도 “이제 MBC는 물건너 갔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던가. 더구나 ‘김재철 시즌2’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김종국 사장이 MBC 새로운 사령탑으로 들어선 데다 김구라 방송복귀에 반대한 간부들이 여전히 MBC에 건재하고 있다. 하지만 김구라 씨 얘기처럼 “사람 인생은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는 법”이다. 어쨌든 그는 MBC에 복귀했고, 복귀한 첫 방송에서 ‘민감한 사안’을 익살스럽게 언급하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지금 지나고 보니 세상 일이 내 마음 같지가 않다.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깨달음을 가르쳐 준 분이 김재철 전 사장님이다.”

“MBC를 욕하진 않았다. 하지만 한 개인에 대한 섭섭함은 있었다”라는 발언 뒤에 김구라 씨가 덧붙인 말이다. <라디오스타>가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점을 감안한 나름의 전략이겠지만, ‘자신의 솔직함’(김재철 섭섭하다)과 ‘전략’(깨달음을 준 김재철 전 사장)을 MBC 복귀 방송에서 예능적으로 적절히 배합한 그의 ‘끼’가 놀라울 뿐이다.

지상파에서 ‘정치풍자’를 기대하는 건 무리겠지만, 왠지 김구라가 있는 <라디오스타>에선 가능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적절한 수위조절을 하겠지만 그래도 날카로움이 사라진, 김구라 씨 표현처럼 ‘공무원 예능처럼’ 된 현재 지상파 예능은 위기임에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지금 지상파에게 필요한 건 ‘김구라식 예능’이 아닐까 싶다. 김구라의 가장 큰 적은 ‘점잖은’ 김구라다.

 

<기사 전문보기>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00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