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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흔적/숫자로 본 한 주간

‘군사정권 찬양 = 한미FTA 미화’는 본질적으로 같다

[숫자로 본 한 주간] 언론은 ‘취재봉쇄’에 대해 왜 침묵하는 걸까

이번 한 주는 ‘4’를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숫자로 뽑아 봤습니다.

한나라당이 지난 22일 한미FTA 비준동의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강행처리했죠. 일부 언론은 ‘날치기’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고, 일부는 ‘단독처리’라고 보도하기도 합니다. 분명한 건, 야당과 시민단체 반발 속에 한나라당에 의해 강행처리가 됐다는 겁니다.

‘4’는 한나라당이 한미FTA 비준동의안을 처리하는데 소요된 시간을 말합니다. 4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는데요, 오늘은 ‘4분’만에 통과한 한미FTA 비준동의안‘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 얘기해 보고자 합니다.

한미FTA로 한국 경제 비상한다는 조중동

한미FTA 협상이 타결된 게 2007년 4월입니다. 정확히 4년 7개월을 끌어왔는데 한미FTA 비준 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데는 4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정의화 국회부의장이 11월22일 오후 4시24분 국회 본회의 개의를 선언했고, 곧바로 비준안 직권 상정이 이뤄졌습니다. 제안 설명 없이 표결이 진행됐고 4분 뒤인 4시28분, 재석 170명 중 151명의 찬성으로 가결됐습니다. 이어 14개 한·미 FTA 이행법안도 30여분 만에 모두 가결됐습니다. 속전속결로 처리를 했습니다.

사실 한미FTA를 둘러싼 논란은 쉽게 정리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사안 자체가 워낙 복잡한 데다 찬성과 반대 입장도 명확하게 나뉘기 때문입니다. 한미FTA를 보도하는 언론들도 자신들의 입장에 따라 FTA에 대한 평가가 극단적으로 나뉘고 있지 않습니까. FTA에 대한 평가가 나뉘는 것까지는 이해(?)를 하는데 일부 언론의 보도태도는 지나치게 장밋빛 전망으로만 흐르고 있어 논란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신중하게 판단해야 될 사안을 지나치게 단정적으로 보도하거나 FTA가 발효되면 한국 경제에 새 지평이 열린다는 식의 보도가 대표적입니다. 아직 발효도 되지 않았고 경제적 효과에 대해선 전문가들의 평가도 엇갈리는데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신문은 확신에 찬 어조로 ‘한국경제 비상한다’고 주장합니다. 이건 아니죠.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 군사정권 찬양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대체 뭐하는 건지 … 언론으로서 최소한의 기본은 지켰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일부 언론의 이 같은 대책 없는 FTA 찬양보다 더 큰 문제는 비준동의안이 처리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취재봉쇄와 국민 알권리 ‘침해’에 대해 침묵하는 언론 … 존재 이유가 있을까

이번에 한나라당이 한미FTA 비준동의안을 비공개로 처리하지 않았습니까. 기자들의 국회 본회의 방청석 출입을 막은 채 비공개로 진행을 했는데, 여기에 대해 문제를 지적하는 언론이 소수에 불과합니다.

비공개에 항의하는 이들과 몸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방청석으로 향하는 유리 출입문이 깨지는 상황이 발생하니 국회가 그제서야 방청석을 공개했죠. 혹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나마 YTN이 이 상황을 뚫고 중계를 해서 국민의 알 권리는 충족되지 않았냐고. 그런데 이번 사안은 그렇게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단순히 비공개로 처리한 게 문제가 아닐 뿐더러 언론의 취재제한과 국민의 알 권리가 침해당하는 상황이 발생했는데 언론이 이 문제를 거의 비판하지 않고 있죠. 여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사실 이번 한미FTA 비준동의안 비공개는 상당히 이례적입니다. 옛 신한국당이 1996년 12월 노동법을 새벽에 기습 날치기 처리한 적이 있는 데요 그때에도 <연합뉴스> 기자에게는 알렸습니다. 그래서 국회 본회의장 상황이 언론에 알려지도록 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아예 취재자체를 봉쇄시키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습니까. 사상초유의 이례적인 취재봉쇄 시도가 이뤄진 셈인데 언론은 이런 부분에 대해 별다른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국회 본회의를 비공개로 하는데 법적으론 문제가 없습니다. 국회법 75조에 비공개 관련 조항이 있거든요. 본회의는 공개하도록 돼 있지만 △의장이 제의하거나 △의원 10인 이상의 연서에 의한 동의로 본회의의 의결이 있거나 △의장이 국가의 안전보장을 위해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협의하면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세 가지 요건 중 한 가지만 충족되면 비공개로 본회의를 진행할 수 있는 거죠. 문제는 이런 국회법 조항이 온당한 지 언론에서 따져보는 건 별개의 문제라는 거죠.

남용될 경우 언론의 자유는 물론 국민의 알권리가 침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공개 여부를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여당이 자의적으로 판단해 남용할 경우 어떻게 될까요. 문제가 심각해 지겠지요.

비공개로 의결된 국회 본회의에는 기자석의 출입이 금지되고, 의사 속기록도, 표결결과에 따른 찬반의원 명단도 알려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은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된다는 거죠. 이번에 비공개 시도가 결과적으로 무산되긴 했지만, 실제 한나라당이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비공개 시도를 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국회 본회의 비공개가 가진 문제점도 외면하는 언론

한미FTA 비준동의안이 4분 만에 통과된 것도 문제지만, 이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문제점들에 대해 언론이 침묵하고 있는 게 정말 심각한 문제죠. 전문가들은 국회 본회의를 비공개할 수 있는 사안을 엄격히 제한해 남용 소지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정작 언론에선 이런 목소리를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오로지 한미FTA 반대 세력에 대한 흠집내기에 올인하고 FTA가 가져올 장밋빛 미래를 찬양(?) 하는 데만 바쁩니다. 그런데 한미FTA를 일방적으로 찬양하는 지금 언론의 모습을 보면서 예전의 ‘전두환 군사정권을 찬양했던’ 언론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예전엔 강요에 의해서 그랬고, 지금은 자발적이라는 차이가 있지 않냐구요? 글쎄요 과연 ‘전두환 찬양’이 강요에 의해서만 그런 것일까요. 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사진(위)=경향신문 2011년 11월23일자 1면>
<사진(중간)=한겨레 2011년 11월23일자 3면>
<사진(아래)=경향신문 2011년 11월23일자 3면>

※ 이 글은 2011년 11월26일 오전 6시10분부터 7시 사이에 CBS FM(98.1MHz) ‘좋은 아침 김윤주입니다’에서 방송된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