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과거흔적/핫이슈

‘조중동 방송’보다 방송의 ‘조중동화’가 더 걱정

[핫이슈] ‘조중동 종편’ 출범에 대한 단상 (1)

종합편성 방송채널에 조선․중앙․동아일보와 매일경제신문이, 보도전문채널에는 연합뉴스가 선정됐습니다. 선정된 언론사를 제외하고 대다수 언론 보도는 부정적입니다. ‘종편 사업자 퍼주기 선정’이라는 지적도 있고 ‘조중동 방송’ 출현으로 방송의 보수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광고시장을 고려하지 않은 무더기 종편 허가로 방송사들이 생존을 건 출혈경쟁을 벌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종편과 지상파, 케이블 간 출혈경쟁은 방송의 상업화․선정성 논란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미디어 생태계’가 파괴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과연 ‘조중동 방송’만 문제일까

맞습니다. ‘조중동 종편 출현’은 한국 미디어 시장에 순기능보다 역기능을 더 많이 초래할 가능성이 큽니다. 많은 전문가들도 이런 분석에 힘을 싣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특정정파의 이익과 재벌과 소수 특권층의 기득권 대변 역할에 따른 여론 독과점 심화로 여론의 다양성이 훼손될 것”이라는 염려가 가장 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종편 사업자 선정 이후 제기되는 이런 염려들을 접하면서 조금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조중동 종편’에 대한 걱정보다 현재 지상파 방송의 ‘조중동스러운 행태’를 더 염려했다고나 할까요.

물론 조중동이 지금까지 보여준 보도행태는 문제가 많습니다. 혹자는 조중동의 ‘극우 보수논조’가 가장 문제라고 얘기하더군요. 그들의 논조가 지상파 방송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가진 종편에 그대로 옮겨져 오면 ‘거대 보수방송 미디어군’이 생겨날 거라는 우려인 셈이지요.

타당한 지적입니다. 그런데 저는 조중동의 경우 ‘극우 보수논조’가 아니라 ‘기회주의적 속성’이 더 큰 문제라고 봅니다. 자사의 이해관계에 따라 논조를 달리하는 이중적 행태 말이죠. 종편 사업자가 선정되기 전까지 조중동이 주요 현안에 대해 어떤 보도행태를 보였는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들은 종편 사업자 선정을 고려해가면서 철저히 ‘저울질’ 하는 행태를 보였습니다. 이들은 극우 보수라는 이념이 자사의 이해관계에 걸림돌이 된다 싶으면 과감히 버리고 ‘진보 개혁’으로 탈바꿈도 가능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방송3사 보도행태, ‘조중동’과 얼마나 다른가


조중동의 방송진출, 걱정되는 게 많죠. 하지만 저는 ‘조중동 종편’보다 방송의 ‘조중동스러운 행태’가 더 걱정입니다. 툭 까놓고 말해 미디어법이나 4대강, 천안함 사건 등에서 KBS MBC SBS가 어떤 보도행태를 보였나요. 저는 방송3사가 조중동과 그렇게 차별화 된 보도를 보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KBS를 제외하고 MBC와 SBS는 조중동만큼 ‘적극적 의제설정’을 통해 정권의 입맛에 맞는 보도를 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의도적 외면이나 축소 보도 등을 통해 정권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는 모습은 자주 보였습니다. 적극적이진 않았지만 주요 현안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면서 이슈화하는데 주저했다는 말이죠.

이 차이에 나름 의미부여를 하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향력 면에 있어 조중동 못지않은 ‘파워’를 가진 지상파 방송사들이 주요 현안에 대해 침묵하거나 외면한다는 건, 조중동 ‘왜곡보도’ 이상의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우린(지상파 언론인들) 조중동처럼 왜곡보도는 하지 않는다”는 식의 항변이 더 이상 설득력을 갖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조중동 방송’이 ‘조중동스러운 방송’과 경쟁할 때

이런 이유 때문에 저는 ‘조중동 방송’ 출현보다 ‘조중동스러운 방송’이 ‘조중동 방송’과 경쟁하는 그런 상황이 더 우려가 됩니다.

조중동의 여론시장에 대한 영향력은 막강하지만 ‘조중동 종편’이 지상파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누릴 거라는 전망은 아직 전망일 뿐입니다. ‘조중동 방송’의 제작능력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고, 조중동이 방송을 통해 제공하는 콘텐츠가 시청자들의 공감을 일으킬 거라는 주장 역시 검증된 게 아닙니다. 신문에서의 영향력이 곧바로 방송에서 이어질 거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다만 MB정부의 ‘조중동 종편’에 대한 각종 특혜 등을 고려했을 때 그 가능성을 조금 높게 보는 정도일 뿐입니다.


사실 저는 ‘조중동 방송’이 탄생하면 영향력이 아니라 방송판 아니 미디어판 자체를 ‘지저분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한국의 신문 시장을 혼탁시킨 주범들이 제한된 광고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온갖 특혜를 정부에게 요구할 가능성이 높고, 이 과정에서 방송사끼리의 생존을 건 혈투가 진행이 되겠지요. 이 과정에서 그나마 상식적인 보도태도를 보인 마이너 신문사들은 생존 자체가 어렵게 될 것이고, 그런 상황이 장기간 지속되면 한국 언론의 신뢰성은 거의 바닥 수준으로 떨어질 겁니다.

방송3사의 ‘조중동화’를 경계해야

제가 주목하는 건, 이 과정에서 방송3사가 어떻게 대응할까 하는 점입니다. ‘조중동 방송’이 출범하기 전인 지금의 방송3사를 한번 보세요. KBS는 ‘관영 보도와 프로그램’을 남발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고, MBC는 경쟁력 있는 시사프로그램을 폐지하면서 우려를 낳더니 뉴스가 연성화 됐다는 비난에 직면해 있습니다. 장기적인 계획과 전망에 따른 프로그램 발굴이 아니라 단기적인 성과에만 집착한 나머지 예능과 드라마도 침체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죠.

KBS와 MBC가 워낙 논란과 이슈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SBS 보도와 프로그램이 논란의 전면에 등장하진 않았지만, SBS 역시 이들과 크게 차이가 난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지금 SBS가 드라마와 예능에서 나름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종편이 등장할 경우 상황이 달라질 테니까요. 종편 등장으로 최대 이득을 보는 사람은 스타 연예인과 스타 작가들일 텐데 이들을 SBS가 모두 ‘잡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런데 SBS만 그럴까요. 방송3사 뉴스와 시사교양 프로그램이 지금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많은데, 이런 상황에서 드라마와 예능에서 지상파와 종편, 케이블 간 무한혈투가 벌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방송3사가 ‘조중동 방송’보다 더 ‘조중동스럽게’ 변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제가 ‘조중동 방송’보다 ‘조중동스러운 방송’을 더 걱정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미지(위) : 경향신문 2011년 1월3일 3면>
<이미지(중간) : 한국일보 2011년 1월3일 7면>
<이미지(아래) : 국민일보 2011년 1월3일 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