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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흔적/핫이슈

아나운서들이 강용석 의원 때문에 ‘비디오’ 찍은 이유

[핫이슈] ‘성희롱’ 강용석 재판은 현재진행형이다

한국아나운서연합회 소속 아나운서들이 오늘(12일) 성희롱 발언으로 불구속 기소된 강용석 의원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합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강 의원은 지난해 7월 16일, 서울 홍익대 인근 고기 집에서 아나운서를 희망하는 한 여대생에게 “아나운서는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할 수 있겠냐” 등의 발언을 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지난해에 발생한 일이라 대충 마무리 된 거 아니냐, 이렇게 반문을 하실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강용석 의원 성희롱 발언 재판은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강 의원은 한나라당에서만 제명됐을 뿐 의원직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지난해 11월23일에는 기자회견을 통해 국회 복귀를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강용석 의원이 제기한 ‘부동의’ 신청

그런데 저는 최근 ‘놀라운 얘기’를 하나 들었습니다. 강용석 의원 때문에 200여명에 가까운 아나운서들이 일제히 ‘비디오’를 찍었다는 겁니다. 아니 웬 비디오? 처음엔 약간 어리둥절했는데 자세한 내막을 듣고 보니 좀 어이가 없더군요. 이번 소송과 관련해 강용석 의원이 제기한 ‘부동의’ 신청 때문에 ‘아나운서 비디오 소동’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부동의’ 신청은 한 마디로 이런 겁니다. 이번 소송에 관련된 사람들 가운데 강용석 의원 본인과 변호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고소인과 증인 모두)을 믿을 수 없으니 모두 법정에 나와서 증언을 하라는 거죠. 이번 소송에 아나운서연합회 소속 회원들 200여명 정도가 ‘동참’했으니 이들이 모두 법정에 나와 ‘자신은 강용석 의원 성희롱 사건에 대한 고소를 아나운서연합회장에게 위임했다’고 증언을 하라는 얘기입니다.

강용석 의원이 변호사 출신입니다. 법을 잘 알고 있는 ‘분’이라는 얘기죠. 법을 잘 아는 사람이 법을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 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아닐까 싶네요. 아나운서연합회가 “변호사 출신인 강 의원이 국회의원직 유지를 위해 소송을 지연시키는 시간끌기를 하고 있다”고 맹비난한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강용석 의원 ‘부동의’ 신청에 아나운서들 ‘비디오’로 반격

바쁜 아나운서들이 소송 때문에 일일이 법정에 나와 증언을 할까. 이런 의문을 가진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그런데 한국의 아나운서들. 절대 만만히 보시면 안 됩니다. 강 의원의 ‘부동의’ 신청에 아나운서들이 ‘비디오’를 통해 반격을 가했기 때문입니다.

‘비디오’를 통한 반격? 소송에 참여한 아나운서연합회 소속 아나운서들이 ‘자신은 강용석 의원 성희롱 사건에 대한 고소를 아나운서연합회장에게 위임했다’는 발언을 모두 비디오로 찍어 법정 증거로 제출을 한 것이죠. 대략 이런 내용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2011년 1월 (해당일)입니다. 저는 (소속)방송 (이름) 아나운서입니다. 강용석 의원 발언으로 인하여 제가 받은 모욕감, 명예훼손 및 정신적 고통 등에 대하여 형사고소 및 민사소송의 제기를 성세정 연합회장과 송평수 변호사에게 위임하였음을 확인합니다.”

이런 내용을 200여명에 달하는 전국의 아나운서들이 일제히 비디오로 녹화해서 강용석 의원의 ‘부동의’ 신청에 반격을 가한 겁니다. 이마 아나운서들이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강 의원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 같은데, 어찌됐든 아나운서들의 그 ‘집념과 용기’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한편으로 씁쓸한 생각이 듭니다.

국회의원이 자신의 행위에 대해 ‘사과’를 하고 ‘책임’을 지는 모습보다는 어떻게든 ‘시간벌기’를 통해 상황을 회피하려는 방법을 쓰는 것 같아서 말이죠. ‘부동의’ 신청만 해도 그렇습니다. 강용석 의원 때문에 아나운서들이 ‘비디오’까지 찍어야 하는 현실 - 이게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지 않나요. 홍익대 청소노동자들 해고사태와 관련해 중재는 못할망정, 일국의 국회의원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습니다.

<이미지(위)=중앙일보 2010년 7월20일자 20면>
<이미지(아래)=강용석 의원 (c)강용석 의원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