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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흔적/숫자로 본 한 주간

조선일보가 ‘토털 블랙아웃’ 위기감을 강조한 이유

[숫자로 본 한 주간] 예비전력 ‘0’보다 정부의 ‘위기대응’ 능력 ‘0’이 두렵다

이번 한 주는 ‘0’을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숫자로 뽑아 봤습니다.

강제 정전이 일어났던 지난 15일 예비전력이 ‘0’ 상태로 내려가 대정전 직전까지 간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오늘은 예비전력 ‘0’와 정부의 위기대응 능력에 대한 문제점에 대해서 얘기해 보고자 합니다.

정부가 처음엔 예비전력이 처음에 343만kw라고 했죠. 그런데 말을 계속 바꾸고 있습니다. 애초 전력거래소는 예비전력이 343만kw라고 발표했죠. 그런데 논란이 불거지니까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 예비전력이 24만kw였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지난 21일 국회 지식경제위 김영환 위원장이 “지난 15일 예비전력이 ‘0’인 상황이 수십 분간 이어졌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니까 전력거래소가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말을 계속 바꾸는 정부 … 예비전력이 얼마인지 몰랐다

문제는 예비전력이 ‘0’인 상황이 20번 정도 있었고, 시간을 모두 합하면 총 100분 정도 됐다는 겁니다. 김영환 위원장은 “예비전력 ‘0’인 상태가 46분 동안 지속되기도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전력거래소가 이 같은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당시 예비전력이 정확히 얼마나 남아 있었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정부가 과연 제대로 대처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과 불안감이 커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전국적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이라는 대재앙이 초래되기 직전까지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블랙아웃’ 상태가 되면 어떤 상황이 될까요.

저도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 될지 ‘감’이 잘 오지 않았는데 지난 21일 조선일보가 2개면에 걸쳐서 자세한 상황을 소개했습니다. 블랙아웃이 발생하면 수돗물 공급이 최소 2-3일 끊깁니다. 가스 공급도 중단되고, 자동차 연료 공급도 중단됩니다. 주유소 주유기가 기름 탱크에서 기름을 퍼 올리기 위해서는 전기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도로기능이 마비돼 교통은 완전 두절 상태로 빠지게 되고, 고층빌딩 전기시설도 모두 정지가 됩니다.

고층빌딩 시설 같은 경우 비상용 발전기가 있지만 비상 발전용 전력은 전산 서버와 비상용 엘리베이터, 복도·비상구 유도등, 소방장치 등에만 전달됩니다. 그나마 발전가능 시간도 4~5시간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후엔 전력공급이 중단됩니다. 백화점·대형마트도 마찬가지입니다. 비행기·철도도 중단됩니다. 인천공항은 블랙아웃과 동시에 비상용 발전기 82대가 가동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비상용 발전기에 사용할 수 있는 연료는 8시간 분량 정도입니다. 치안은 통제불능 상태에 빠지게 되고, 응급환자는 치료받기가 불가능해집니다. 한마디로 최소 2-3일, 길게는 일주일 정도 ‘원시시대’로 돌아간다는 얘기죠.

‘토털 블랙아웃’의 심각성 - 낙하산 출신들은 과연 알고 있었을까

그런 상황이 지난주에 초래될 수도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한마디로 소름 돋는 상황이죠. 문제는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정부의 능력이 총체적 부실에 직면해 있다는 겁니다. 왜 이렇게 됐느냐? 낙하산 인사가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주무부서인 지식경제부 전력지휘라인 중 전기와 관련한 전문가는 없습니다. 주무부서만 그런 게 아니고, 한국전력의 상임이사 7명 중 5명이 TK(대구·경북)와 한나라당 출신입니다. 한나라당과 TK출신일 수도 있죠. 문제는 전문가가 없다는 점입니다. 11개 한전 자회사의 경영진 및 감사 22명 중 17명이 현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한나라당, TK, 고려대 출신입니다. 역시 전문가는 없습니다. 정전사태 이후 정부가 책임을 두고 공방을 벌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비전문가들이 많다보니 전국적 ‘블랙아웃’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얘기죠. 문제는 앞으로 괜찮을까 하는 것이죠. 물론 이번 사태를 계기로 원자력과 화력 중심의 에너지원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에 대한 대책마련도 서둘러야 합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시간이 너무 많이 듭니다. 당장 이번 겨울 ‘토털 블랙아웃’이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근본적인 대책마련’을 주문하는 건, 자칫 비생산적인 논의로 흐를 수도 있습니다.

물론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원전건설을 해야한다는 식의 해법을 주장하는 건 반대합니다. ‘대정전 상황’이 되면 어떻게 되는지 자세히 소개한 조선일보가 현실적인 해법으로 원전건설을 주장하고 나선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저는 ‘원전 건설’을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조선일보가 ‘대정전 상황’의 심각성과 위기의식을 부풀린 게(?) 아닌가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

정부도 오는 2024년까지 원자력발전소 14기, 석탄화력발전소 15기, 액화천연가스(LNG) 복합화력발전소 19기, 수력·양수발전소 2기를 더 짓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원전이나 화력발전소를 지을 마땅한 부지도 없고, 더구나 원전은 ‘일본 원전사태’에서도 확인됐듯이 대자연 앞에선 안정성이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환경을 파괴한다며 반대 여론도 높습니다. 비용도 수조원이 소요되기 때문에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원전은 욕망에 충실한 우리 자신의 또 다른 모습 … 원전 추가건설에 반대하는 이유

조선일보와 정부는 ‘전기가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원전 건설에 더 방점을 찍고 그 쪽으로 여론몰이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우리에게 재앙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당장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어렵고, 현실적인 해법 마련도 쉽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기를 절약하는 것 외에 달리 현실적인 방법이 없습니다. 허무하다구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물질을 우선으로 하는 자본주의적 생활방식과 소비위주의 삶의 패턴에 익숙해진 우리의 삶을 조금씩이나마 바꾸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불행해질 지도 모릅니다. 그런 점에서 원전은 욕망에 충실한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일 지도 모릅니다.

단기적인 해법은 ‘절전’을 실천하는 것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문제는 정부가 자꾸 국민들에게만 전기를 절약하라고 요구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런 건 정부가 먼저 나서야 합니다. 정부부처가 절약에 소극적이고, 자치단체는 ‘전기 먹는 하마’인 호화 청사 짓느라 정신이 없는데 국민이 절약에 동참할까요. 안 합니다. 일본은 원전 사고 이후 전력 공급이 모자라자 정부가 전력 소비량을 15% 줄였거든요. 그러니까 국민들도 자발적으로 동참해 10%를 줄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야 전기 절약 캠페인이 공감을 얻고 효과도 나는 법입니다. 이번 겨울에 ‘전국적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이라는 끔직한 경험을 하지 않으려면 정부가 절전에 앞장서고 국민들도 생활방식을 절전모드로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당장 쓰지 않는 컴퓨터 전원부터 끄는 습관을 들입시다.

<사진(위)=조선일보 9월22일자 8면>
<사진(두번째)=조선일보 9월21일자 4면>
<사진(세번째)=조선일보 9월23일자 4면>
<사진(마지막)=한겨레 9월22일자 4면>

※ 이 글은 2011년 9월24일 오전 6시10분부터 7시 사이에 CBS FM(98.1MHz) ‘좋은 아침 최정원입니다’에서 방송된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