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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흔적/핫이슈

나는 ‘일본의 영웅들’에게 박수를 칠 수 없었다

[핫이슈] 무책임한 정부와 기업 때문에 ‘죽음’으로 내몰리는 사람들

‘이름 없는 59세 원전 기술자’가 후쿠시마 원전에 긴급 수리요원으로 자원했다고 합니다. 방사능 유출 우려 때문에 사람들의 탈출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데 ‘59세 원전 기술자’는 정반대의 길을 택했습니다. 이 사람이 지금 ‘일본의 영웅’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17일) 중앙일보가 1면에서 전한 내용입니다.

‘일본의 영웅들’에게 감동을 받으면서도 박수 칠 수 없는 이유

폭발사고 이후 원전에서 철수했던 도호쿠(東北) 엔터프라이즈의 회사 직원 3명도 안전지대에서 다시 원전으로 달려갔다고 합니다. 일본 정부는 지난 16일 이들 자원자를 중심으로 108명을 원전 현장에 추가 투입했다는군요. 17일에는 경찰 기동대와 자위대도 투입된다고 합니다. 뉴욕타임스는 ‘일본을 대참사로부터 지키고 있는 영웅’이라고 이들을 소개했습니다. 오늘(17일) 조선일보가 3면에서 전하고 있습니다.

신원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50명의 도쿄전력 근로자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후쿠시마 50’ 혹은 ‘결사대 50’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50명의 영웅들’은 방사능 피폭 위험을 감수하고 후쿠시마 원전 복구를 위해 현재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은 오늘(17일) 동아일보가 4면에서 전하고 있습니다.

이 이름 없는 ‘일본의 영웅들’이 일본과 세계에 또 한번의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들의 헌신적 행위에 감동을 받으면서도 박수를 칠 수가 없습니다. 이들이 목숨을 내걸고 원전을 복구해야 하는 상황 이면에, 사태를 이 지경으로 악화시킨 무책임한 정부와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시했던 기업의 책임이 교묘하게 가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2년 전 국제사회의 경고 무시했던 일본 정부

물론 이번 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피해는 인간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 성격이 짙습니다. 하지만 ‘이런 자연재해에 따른 원전피해 우려’는 이미 2년 전 국제사회에서 제기가 됐습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2년 전 “(일본의) 원전시설이 지진 충격에 취약할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일본 정부는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국일보는 이런 점을 거론하며 “오랜 원전 건설의 노하우에 대한 일본 정부의 ‘오만’이 화를 키웠다”고 비판합니다.

만약 2년 전 국제사회의 충고를 일본 정부가 심각히 검토하고 대책을 마련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지금 상황에서 가정이 어리석긴 합니다만, 적어도 지금과 같은 ‘최악의 상황’은 피했을 지도 모릅니다.

정부 못지 않게 도쿄전력의 책임론도 거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17일) 경향신문 이주영 기자가 ‘기자메모’에서 지적한 내용인데요, 좀 길게 인용합니다.

“일본은 현재 54기의 원전을 가동 중이며 모두 도쿄전력·도호쿠전력·규슈전력 등의 민간 기업들이 운영을 맡고 있다. 30년 전부터 추진해온 공기업 민영화에 따른 것이다. 문제의 후쿠시마 원전도 도쿄전력에서 운영 중이다 … 하지만 국가비상사태에 이를 수 있는 원전 폭발이 발생한 뒤 1시간이 지나도록 국무총리실엔 도쿄전력의 아무런 보고가 없었다 … 도쿄전력은 15일 수차례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쏟아지는 질문에 ‘구체적인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 시장원리상 민간 기업은 수익을 우선하고, 이익이 없는 것엔 소홀하게 마련이다. 그간 계속된 후쿠시마 원전의 안전성 경고를 무시하고, 사고 후에도 파장 축소에 기운 듯한 모습에서 그런 무책임을 본다.”

정리하면 정부의 무능과 민간기업 도쿄전력의 이윤논리 우선이 지금과 같은 참사를 키웠다는 지적인 셈입니다.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한 기업 때문에 ‘죽음’으로 내몰리는 사람들

그런데 이런 ‘무능한 정부’와 ‘무책임한 기업’들이 지금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고 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원전 안전성과 관련해 일본 정부는 계속해서 말을 바꿨고, 도쿄전력 역시 사건을 은폐하는 데만 급급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상황은 계속 악화됐죠.

아마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죽음을 각오하고 피해 복구에 뛰어든 이름 없는 ‘일본의 영웅들’이 더 빛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리고 앞으로도 이들의 ‘영웅적 행위’에 박수를 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무능한 정부와 무책임한 기업들 때문에 ‘그들 개인’이 짊어져야 할 가혹한 운명이 너무 슬프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냉정한 평가일 수도 있습니다. 가혹한 주장이라는 반론도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들 영웅들’이 무책임한 정부와 기업 때문에 ‘죽음’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들을 ‘영웅들’이라고 치켜세우는 많은 언론과 정부가 불편합니다. 이들의 헌신적 행동을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죽음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을 ‘영웅’으로 대접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진(위)=2011년 3월17일 중앙일보 1면>
<사진(두번째)=2011년 3월17일 한국일보 1면>
<사진(세번째)=2011년 3월17일 경향신문 6면>
<사진(네번째)=2011년 3월17일 동아일보 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