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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흔적/핫이슈

외교부, 귀국권고 할 만큼 일본 위험하지 않다는데 …

[핫이슈] 늦기 전에 귀국 권고 조치를 내려야 한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 위험성이 커지면서 각국 정부가 일본 내 자국민들의 탈출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국내외 언론 보도를 종합해보면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호주, 뉴질랜드를 비롯해 중국, 인도, 필리핀 등 아시아 국가들도 전세기 등을 동원해 자국민 소개에 나서거나 출국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러시아도 외교관 가족들을 철수시킬 예정입니다.

특히 미국은 일본과의 ‘동맹 관계’를 고려해 그동안 자국민 대피에 적극적이지 않았는데, 후쿠시마 원전 위험이 심각해지자 대피시키는 쪽으로 판단을 바꾼 듯 보입니다. 패트릭 케네디 국무부 관리 담당차관은 “전세기까지 동원해 일본 내 미국인들의 출국을 지원할 것”이라고 언급했는데, 이는 사실상 소개령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입니다.

세계 각 국은 자국민 대피령 내리는데 한국 외교부 “위험 상황 아니다”

세계 각 국이 이처럼 자국민들을 대피시키는 이유가 뭘까요. 방사선 누출에 대한 우려 때문입니다. 그만큼 안전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일단 ‘안전한 곳’으로 대피를 시키고 있는 것이죠.

일본 지진·해일로 인한 피해자들을 구출하기 위해 투입됐던 각국 구조대들도 방사선에 대한 위험 때문에 철수하고 있습니다. 일본 현지에 취재활동을 해왔던 국내 지상파 방송사들도 최소한의 인원만 남기고 철수했죠. 이들이 이렇게 철수하는 이유는 그만큼 일본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을 지키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냉정히 말해 상황이 그렇게 낙관적이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상황이 이러면 ‘우리’ 정부도 발빠른 대처를 해야 할 터인데, 놀랍게도(!) 아직 ‘우리’ 정부는 일본 현지 교민들에게 ‘귀국권고 조치’를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18일) 동아일보 보도(8면)에 따르면 오히려 일본에 머물고 있는 현지 기업 직원이나 유학생들이 정부에 귀국권고 조치를 내려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귀국하고 싶지만 생업과 학업이 걸린 문제라 쉽게 자리를 뜰 수 없어” 한국 정부의 조치를 일단 기다리고 있다고 하네요. 정부의 귀국권고 발표가 일본에서 취업비자로 일하는 많은 한국인에게 꼭 필요한 조치라는 게 이들의 설명입니다.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해야 자국민 대피령을 내리겠다는 건가

왜 ‘우리’ 정부는 아직 귀국권고 조치를 내리지 않고 있는 걸까요. 외교부는 “아직 귀국권고를 발표할 정도로 위험한 상황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더군요. “조금 더 지켜보다 상황이 더욱 악화되거나 일본에 대해 여행금지 경보가 내려지면 귀국권고를 시작할 것”이라는 게 ‘우리’ 정부의 생각입니다.

솔직히 말해 좀 화가 나기도 하고 답답하다고 느꼈지만 일정 부분 정부의 입장이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일본을 떠나라”는 자국민 대피령이나 귀국권고 조치는 일본과 ‘동맹국’인 ‘우리’ 정부 입장에서 쉬운 결정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일본을 더욱 고립시킬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가 자국민에 대한 안전문제를 안이하게 접근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가 됩니다. “상황이 더욱 악화되면 귀국권고 조치를 내리겠다”는 외교부의 입장을 좀 다르게 받아들이면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해야 자국민 대피령을 내리겠다”는 쪽으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악화된 상황’이나 ‘극단적인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다들 짐작하실 겁니다.

방사선에 대한 우려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래서 저는 “지금 일본 상황이 위험하지 않다”는 ‘우리’ 정부에 묻고 싶습니다. 지금 자국민들에게 일본 대피령을 내린 다른 나라 정부들이 오버하는 것인지를. 일본 상황이 대피령을 내릴 정도로 심각하지 않은데 세계 각 국 정부들이 호들갑을 떠는 것인지.

아닐 겁니다. 물론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위험도 평가와 관련해 미국·프랑스와 일본 정부 간에 입장 차가 존재합니다. 미국과 프랑스는 ‘위험하다’는 것이고, 일본은 ‘그 정도는 아니다’라는 거죠.

하지만 저는 ‘위험하지 않다’는 일본 정부의 발표가 더 타당성이 있다고 해도(이번 경우에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것이 원전과 방사능에 관련된 것이라면, 일단 자국민 안전 차원에서 ‘대피’시키는 게 적절한 조치라고 생각됩니다. 안전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에선 일단 대피시키는 게 우선이지 “상황이 더욱 악화되면 귀국권고 조치를 내리겠다”는 말을 할 때는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사진(위)=2011년 3월18일 경향신문 1면>
<사진(중간)=2011년 3월18일 동아일보 8면>
<사진(아래)=2011년 3월18일 중앙일보 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