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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흔적/핫이슈

복잡한 ‘BBK 논란’ 쉽게 이해하기

[핫이슈] 언론의 ‘BBK 침묵동맹’ 어떻게 봐야 할까

요즘 ‘BBK 논란’이 새롭게 불거지고 있지요. 많은 분들이 복잡해서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간단 명료하고 쉽게 정리 좀 해달라는 분들이 많습니다. 사실 굵은 뼈대만 추리면 매우 간단한 사안인데 ‘복잡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언론 때문입니다.

일단 언론이 제대로 된 보도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새로운 의혹이 추가로 제기되고 관련자들의 증언도 이어지고 있지만, 이른바 조중동과 방송3사를 비롯한 대다수 언론이 이 내용을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에리카 김씨와 관련된 ‘검찰발’ 기사는 또 꾸준히 보도합니다. 이런 상황이 혼재되면서 ‘기획입국’ ‘편지조작’ 이런 단어들이 섞입니다. 그러다보니 독자들 입장에선 정리가 잘 되지 않는 겁니다.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김경준씨 기획입국’이란 …

BBK 의혹을 제기한 김경준씨의 기획입국 문제부터 정리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김경준씨 기획입국’은 2007년 대선 직전 한나라당이 제기한 내용입니다. 당시 참여정부의 청와대와 집권 여당인 민주당이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에게 타격을 입히려는 목적으로 김경준씨를 기획 입국시켰다는 주장입니다. 

한나라당은 이 같은 의혹을 제기하면서 편지 한 장을 증거로 제시했습니다. ‘김경준 씨와 미국에서 1년간 수감생활을 함께한 신경화씨가 쓴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 편지엔 “자네(김경준 씨)가 ‘큰집’(참여정부 청와대)하고 어떤 약속을 했건 우리만 이용당하는 것”이란 구절이 포함돼 있습니다.

한나라당이 제시한 이 편지내용을 바탕으로 하면, 당시 청와대(참여정부)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게 타격을 입히기 위해 BBK 의혹을 제기한 김경준 씨를 기획입국 시켰다는 얘기가 됩니다. 2007년 11월에 공개된 이 편지는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최근 제기된 새로운 의혹 - 한나라당이 제시한 편지가 조작됐다?

그런데 최근 새로운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한나라당이 김경준씨의 ‘기획입국설’을 폭로하며 물증으로 내세웠던, 핵심증거나 마찬가지였던 이 편지가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세계일보가 지난 10일 단독으로 보도한 내용인데요, 검찰은 이 같은 정황을 포착해 내사하고도 형사처벌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경향신문이 지난 10일 보도한 내용도 있습니다. 김경준 씨의 ‘기획입국설’을 뒷받침한 수감 동료 신경화 씨가 쓴 편지가, 이명박 대통령 가족과 측근의 개입 하에 조작됐다는 겁니다. 편지의 원래 작성자로 알려진 신경화씨의 동생 신명씨(50·치과의사)가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했는데 “형이 보낸 것으로 알려진 편지는 사실 내가 작성한 것”이라며 이 같이 언급했습니다.

세계일보와 경향신문이 보도한 내용을 추리면? 김경준 씨를 기획입국 시킨 건, 당시 참여정부와 민주당이 아니라 한나라당과 이명박 대선 캠프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김경준 씨를 기획입국 시킨 주인공이 바뀌게 되는 셈이죠.

더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한나라당의 ‘편지조작’ 의혹

세계일보는 어제(21일) ‘편지 조작’을 지시한 사람이 서울 소재 K대학 교직원 Y씨라고 보도했습니다. Y씨가 이명박 대선 후보 캠프 측에 이 편지를 전달했고, 얼마 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 “노무현 정권이 이명박 후보를 흠집 낼 목적으로 김경준 씨를 기획입국시킨 증거”라며 편지를 공개했다는 것이죠. 당시 검찰이 이 사실을 알고 Y씨를 소환조사까지 했는데 “대선 후 여야 합의로 고소·고발이 취소된 사안이라 무혐의 처분했다”고 합니다.

일개 대학 직원이 이런 일을? 상식적으로 봐도 이상한 일이죠. 그래서 세계일보는 ‘윗선’ 없으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며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오늘(22일) 경향신문도 추가적인 의혹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한나라당이 제시한 ‘BBK 편지’가 날조되는 과정에 현 여권이 깊숙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편지를 실제 작성한 신명씨(50·치과의사)와 그의 지인 양모씨, 이명박 당시 대통령후보 특보, 이 대통령 가족으로 이어지는 커넥션이 있다는 겁니다.

이 모든 의혹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김경준 씨를 기획입국 시킨 건 참여정부와 민주당이 아니라 한나라당과 이명박 대선 캠프였다는 것이고 △한나라당이 증거로 제시한 편지 역시 조작됐으며 △이 편지가 조작되는 과정에 현 여권이 깊숙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메가톤급’ 사안을 대다수 언론은 침묵하고 있습니다. 어제(21일)와 오늘(22일) 추가적으로 새로운 의혹이 계속 쏟아지는 데도, ‘다른 언론’은 그냥 모르쇠로 일관합니다. ‘고 장자연씨 편지’가 위작이라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 결과를 ‘대서특필’한 것과 많은 면에서 대조적입니다.

‘새로운 BBK 의혹’에 침묵하는 대다수 언론

‘BBK 편지조작’은, 조작된 편지를 본인(신명씨)이 직접 썼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검찰이 관련 내용을 수사까지 했는데 언론은 이 모든 의혹을 그냥 지나치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 언론이 얼마나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지가 단적으로 드러나는 사안이 바로 이 ‘BBK 편지조작’ 논란입니다.

침묵만으로도 충분히 비난 받을 소지가 있는데 오늘(22일) 동아일보는 생뚱맞은(?) 기사를 내보내더군요. 동아는 오늘(22일) 1면에서 에리카 김 씨가 검찰 조사에서 “2007년 대선 직전 민주당측으로부터 한국으로 와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게 불리한 증언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거부한 것으로 진술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새롭게 제기된 의혹은 침묵하고, ‘검찰발’ 기사를 바탕으로 ‘예전 버전’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는 셈입니다. 언론이 이 지경이니, 김경준씨 누나인 에리카 김씨가 갑자기 귀국해서 검찰 조사를 받고, 검찰이 사실상 무혐의로 이 사건을 종결시켰는데도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겁니다.

언론의 ‘BBK 침묵동맹’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사진(위)=2011년 3월22일 동아일보 1면>
<사진(두번째)=2011년 3월10일 경향신문 1면>
<사진(세번째)=2011년 3월21일 세계일보 11면>
<사진(네번째)=2011년 3월22일 경향신문 1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