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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흔적/핫이슈

‘정부 훈장’ 받아야 언론에서 주목하는 ‘청소노동자’

[핫이슈] 농성 중인 대학 청소노동자 상황은 외면하나

어지간해선 방송뉴스에 잘 등장하지 않는 청소노동자들이 22일 방송뉴스에 등장했습니다. 한 군데가 아니라 KBS MBC SBS - 이렇게 방송3사 메인뉴스에 ‘나란히’ 말이죠. 방송3사 메인뉴스에만 등장한 게 아닙니다. 오늘 동아·조선일보 등 보수신문에도 관련 기사가 있더군요. 특히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청소노동자’를 ‘영웅’으로 추켜세우기까지 했습니다.

특이하고 이례적인 현상이라 주목해서 봤는데 좀 씁쓸하더군요. 그래서 오늘은 이 얘기를 한번 해볼까 합니다.

방송3사와 보수신문이 주목한 청소노동자는 인천공항 ‘환경미화원’ 노귀남 씨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노귀남 씨는 환경 미화원 최초로 동탑산업훈장을 받게 됐더군요. 노 씨의 동료 엄애자 씨도 대통령표창 수상자가 됐다고 합니다. ‘청소노동자’가 그것도 한꺼번에 2명이나 정부 훈장을 받게 됐으니 언론이 주목할 만도 하죠.

훈장이 아니라 청소노동자들의 ‘상황’을 주목해야

“매일 밤 10시부터 다음 날 아침 7시까지 바닥에 왁스를 칠하고 에스컬레이터 손잡이를 닦고, 통로의 이물질을 제거하는” 이들의 노동을, 정부가 이렇게나마 노고를 인정해주고 언론이 뉴스를 내보내주는 걸 높게 평가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런 부분은 충분히 인정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뉴스를 보면서 좀 씁쓸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방송사와 보수언론이 주목한 건 ‘청소노동자’가 아니라 ‘정부 훈장’이 아닐까 - 이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훈장을 받아야만 방송뉴스에 등장할 수 있는 ‘그들’의 상황 그래서 보수신문으로부터 ‘영웅’ 대접을 받을 수 있는 현실이 서글프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왜 이렇게 세상을 삐딱하게 보냐고 반문할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럴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청소노동자들의 처우는 훈장을 받는다고 개선되는 게 아니라 노동조건 개선이나 임금인상을 통해 이뤄지는 거라고.

방송사들과 보수언론들이 진정으로 청소노동자들의 ‘노고’를 생각했다면, 이 내용을 전하면서 지금 ‘한국의 청소노동자들’이 어떤 노동조건과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지까지 언급했어야 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정부 훈장’ 받은 것에만 그친 뉴스는 반쪽자리라는 얘기입니다.

연세대와 이화여대, 고려대 청소노동자 농성은 외면하는 언론들

사례가 있습니다. 노귀남 씨와 엄애자 씨가 정부 훈장을 받기로 한 지금, 연세대와 이화여대, 고려대 청소노동자들은 ‘생활임금’을 요구하며 파업 중입니다. 그런데 이들 대학 청소노동자들의 파업 소식은 방송뉴스는 물론 보수신문에서 잘 다뤄지지 않습니다. 아니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들 청소노동자들이 어떤 상황에서 일을 할까요. ‘새벽부터 10시간 노동에 손에 쥐는 건 월 85만원’이라고 합니다. ‘아껴 써도 남는 게 없다’는 이들은 지금 “시급 860원 올려 달라”며 파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용역업체는 이들의 요구를 거부했고, 대학 당국은 용역업체와 청소노동자들이 해결할 문제라고 팔짱을 끼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런대 정부는 물론이고 대다수 언론이 이를 주목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놀라운 일도 아닙니다. 지금은 협상이 타결된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이 부당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장기간 농성을 벌였을 때도 대다수 언론이 침묵으로 일관했기 때문입니다. 일부 언론과 일부 시사프로그램을 제외하곤 거의 모든 언론이 청소노동자들을 외면했죠. 이런 점에서 보면 언론이 청소노동자들의 상황을 외면하고 침묵하는 게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훈장 받는 청소노동자들이 방송뉴스와 보수신문에 등장한 걸 씁쓸히 여겼던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농성 중인 대학 청소노동자 상황은 외면하면서 ‘훈장 받는’ 청소노동자들만 주목하는 언론이라 … 앞서도 언급했지만 방송사와 보수언론이 주목한 건 ‘청소노동자’가 아니라 ‘정부 훈장’이란 생각이 점점 확고해 지는 것 같습니다.

<사진(위)=2011년 3월23일 동아일보 사설>
<사진(중간)=2011년 3월22일 KBS '뉴스9'>
<사진(아래)=2011년 3월16일 경향신문 1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