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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흔적/이주의 방송, 무엇을 말했나

예능의 ‘시사화’ 기자들의 ‘예능화’

[이주의 방송, 무엇을 말했나] 예능분야 (1월1일∼1월7일)

2012년 예능의 특징은 정치와 결합하는 양상을 보인다는 겁니다. 박근혜, 문재인, 강용석 등 정치인들이 새해부터 잇달아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올해 총선과 대선이 예정돼 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정치인들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은 일단 주목할 현상임에는 분명한 듯 보입니다.

‘정치인들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어떻게 볼 것인가 - 각 자의 생각과 입장에 따라 다양한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겠지요. 그런데 저는 ‘정치인의 예능 출연’이라는 관점보다 ‘예능의 시사화’라는 관점에서 이번 현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능의 시사화’ 이미 오래 전부터

사실 ‘예능의 시사화’는 갑자기 등장한 현상이 아닙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아왔다는 얘기입니다. 대표적인 게 KBS <개그콘서트>입니다. MB정부 등장 이후 뉴스와 시사교양 프로그램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평가가 많았죠. 정부·여당에 편향적인 보도행태를 보인 것은 물론이고 4대강 문제를 비롯해 정부 비판적인 아이템은 누락되기 일쑤였습니다.

그런데 보도나 시사교양 프로그램에 등장하지 않았던 정부비판·사회고발 아이템이 <개그콘서트>를 비롯한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KBS <뉴스9>는 외면하면서 <개그콘서트>에 열광했죠. 일각에선 뉴스보다 예능이 훨씬 정부 비판적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MBC <무한도전>도 <개그콘서트>와 비슷한 평가를 받았습니다. MBC <뉴스데스크>가 MB정부의 실정과 정부·여당 비리에 대해 침묵할 때 <무한도전>은 특유의 풍자와 해학으로 이를 통렬하게 비판했지요. MB정부 하에서 가장 정부 비판적인 프로그램은 <무한도전>이라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였습니다. ‘예능의 시사화’는 이미 오래 전부터 나타난, 아니 MB정부 들어 뉴스와 시사교양이 제 역할을 못하면서 나타난 특징적인 현상이었습니다.

SNS 열풍과 ‘2040 세대’의 정치화가 빚어낸 ‘예능의 정치화’

예능과 정치가 결합되는 최근 양상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2010년부터 각종 선거에서 나타난 ‘2040 세대’의 정치화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결합되면서 선거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게 되었습니다. 정치권이 이를 그냥 지나칠 리가 있겠습니까. ‘2040 세대’와의 소통에 거의 '올인'하다시피 하는 게 요즘 정치권의 풍경입니다.

‘2040 세대’와의 소통에 있어 예능은 필수적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들 세대는 ‘MB스러운’ 뉴스와 시사교양을 더 이상 주목하지 않습니다. 기성세대를 조롱하고 정치권을 풍자하며 뉴스보다 할 말을 하는 ‘예능’에 훨씬 더 애정을 보인다는 얘기입니다. 심각한 표정으로 정부·여당에 할 말 제대로 못하는 시사 프로그램보다는, 유쾌하면서도 폼 잡지 않는 채 ‘권력에 쫄지 마’라고 외치는 <나는 꼼수다>에 열광한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총선과 대선을 치러야 하는 정치인 입장에서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보다는 예능을 택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지 않을까요. 지금 정치권에서 ‘쇄신’과 ‘인적청산’이 최대 화두로 떠오른 상황을 감안하면 ‘2040세대’와의 소통은 생존문제와 직결돼 있습니다. 이들의 마음을 어떻게 사로잡을 수 있느냐 - 이것이 향후 총선·대선 승리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죠.

‘예능의 정치화’가 던지는 메시지 … 기자들의 반성

일부 언론에선 ‘예능과 정치와의 결합’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듯 합니다. 순간적인 인기몰이를 위한 정치쇼라는 거죠. 이해합니다. 그런 측면이 전혀 없다고 단정할 순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우려보다 ‘예능의 정치화’가 기존 언론에 던지는 메시지를 ‘읽는 것’이 우선해야 한다고 봅니다. '예능과 정치의 결합'에 젊은 세대가 열광하는 건, 기존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이 저널리즘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능의 시사화’ ‘예능과 정치의 결합’에 대해 이런 저런 평가를 하기 전에 왜 ‘2040세대’가 시사보다 예능에 열광하는지 먼저 헤아려야 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혹자는 MB정부 들어 기자들이 뉴스에서 '예능인'이 됐다고 혹평하기도 합니다. 너무 지나친 비판 아니냐는 반론도 있을 수 있지만 저널리즘 원칙보다 '형식적인 변화'에만 주력한 결과인건 아닌지 자성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적어도 양심있는 언론인이라면 예능을 탓하기 전에, MB정부하에서 뉴스나 시사교양이 예능보다 못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기자와 PD들의 뼈저린 반성이 필요한 시점입니다.